익안대군 영정 18년 만에 제자리로

중앙일보

입력 2018.10.11 00:02

업데이트 2018.10.1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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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조선 태조 이성계의 셋째 아들인 익안대군의 영정. 조선 전기 공신 초상화의 형식을 나타내고 있어 사료의 가치가 높다. [사진 문화재청]

조선 태조 이성계의 셋째 아들인 익안대군의 영정. 조선 전기 공신 초상화의 형식을 나타내고 있어 사료의 가치가 높다. [사진 문화재청]

그림 속 남성은 조선시대 관리들이 착용하는 모자인 사모를 쓰고 붉은색 관복을 입고 있다. 금판에 꽃무늬가 그려진 관대를 허리에 두르고, 손은 관복 안에 넣고, 발은 족좌대 위에 올려놓았다. 비단 바탕에 섬세한 화필로 채색된 이 초상화의 주인공은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셋째 아들 방의(芳毅,1360~1404)다.

도난 뒤 일본 갔다가 다시 국내로
소장자 설득해 전주이씨에 반환
조선 초기 초상화 양식 보여줘

2000년 1월 충남 논산에서 도난당한 익안대군의 영정(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29호)이 18년 만에 전주 이씨 종중의 품으로 돌아갔다. 문화재청은 당시 도난당한 영정을 회수해 10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반환식을 열고 전주 이씨 종중에게 전달했다.

도난당하기 전 이 영정은 논산 전주이씨 종중이 영정각 안에 보관해왔다. 브로커는 절도범으로부터 영정을 산 뒤 일본으로 밀반출하고 다시 사들이는 수법으로 국내로 들여왔다. 한상진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장은 “영정이 국내에 있다는 첩보를 지난해 입수하고 1년간 수사를 벌이고 소장자를 설득한 끝에 영정을 회수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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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안대군은 태조 이성계와 신의황후 사이에 태어난 셋째 아들로, 조선 제2대 임금 정종(방과)의 동생이자 제3대 임금 태종(방원)의 형이다.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동생 이방원을 도와 정도전 세력을 제거해 이방원이 실권을 장악한 뒤 방원, 방간(태조의 넷째 아들)과 함께 개국공신으로 추록(追錄)됐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그에 대해 “성질이 온후하고 화미(華美)한 것을 일삼지 아니하였고, 손님이 이르면 술자리를 베풀어 문득 취하여도 시사(時事)는 말하지 아니하였다”라고 기록돼 있다. 성품이 검소하고 과묵하다는 뜻이다.

영정은 조선 도화서(그림을 담당하던 관청) 화원인 장득만이 원본을 참고해 영조 10년(1734)께 새로 그린 이모본(移摸本)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인 정진희 감정관은 “이 영정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 공신 초상화의 형식을 보여준다”며 “태조의 어진과 용모를 비교할 수 있고, 형제인 정종과 태종의 모습을 유추해볼 수 있어 사료의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도난당한 문화재를 오랜 시일이 흐른 뒤에도 회수할 수 있도록 2007년 문화재보호법에 선의취득 배제 조항을 신설해 실질적으로 공소시효를 연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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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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