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심폐술 뒤 가슴 온통 피멍…지금도 아내에게 미안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서울의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한 말기 암환자가 혈액투석기 등의 연명의료 장치를 달고 있다. [중앙포토]

서울의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한 말기 암환자가 혈액투석기 등의 연명의료 장치를 달고 있다. [중앙포토]

“그냥 두면 편안하게 눈 감을 사람을 심폐소생술 하고 인공호흡기 꽂아서 억지로 숨만 붙들어뒀죠. 일주일도 못 버티고 귀신처럼 끔찍한 모습으로 갔어요.”
경남 사천시에 사는 황모(60)씨는 지난 2월 숨진 아내 정모(56)씨의 마지막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아내는 지난 2008년 유방암 진단을 받은 뒤 수술과 항암치료를 이어갔다. 다 나은 줄 알고 지내다 지난해 갑자기 재발했고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수술을 했지만 병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중환자실에 석달 넘게 입원했다. 황씨는 병원 근처 찜질방에서 자고 오전ㆍ오후 아내를 보살폈다. 틈틈이 사천으로 내려가 고등학생 두 아이를 챙겼다. 결국 병원에서 “더이상 할 게 없다”고 판정했다. 황씨는 올해 초 아내를 사천 근처의 한 병원으로 옮겼다. 한 달여만에 위기 상황이 닥쳤다. 병원에 달려갔더니 끔찍했다.

[존엄사 8개월, 웰다잉 확산 上] #남편이 지켜본 연명의료 고통 #중환자실 넉달 입원 유방암 환자 #심폐소생술 뒤 1주 만에 떠나 #“말도 못하고 얼마나 아팠을까” #병원선 연명의료 중단 설명도 안해

“숨이 넘어가는데 되돌린다고 심폐소생술을 한다고 난리가 났어요. 맥은 겨우 살렸는데, 나중에 보니 가슴팍이 퉁퉁 붓고 피멍이 들었어요. 몰골이 말이 아니었어요. 말도 못하고 얼마나 괴로웠을까 생각하니 너무 미안합니다. 애들도 다른 사람처럼 변한 엄마 모습에 충격을 받았어요."

 아내는 일주일 만에 숨졌다. 하루라도 목욕하지 않으면 잠을 못 잘 정도로 깔끔했던 아내는 생전의 단정하고 고운 모습 대신 각종 의료기기와 수액줄에 휘감긴 채 떠났다. 황씨는 아내와 연명의료 중단에 대해 얘기한 적이 없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같은 걸 알지도 못한다. 아내가 입원한 병원의 의료진 중 누구도 설명하지 않았다.

 황씨는 “의사들은 최선을 다한다고 했겠지만 돌이킬 수 없는건데, 며칠 더 사람을 붙잡아두겠다고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싶어 원망스럽기도 하다”고 털어놨다. 연명의료 중단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그는 “아내를 좀 더 편하게 보내줬을 것 같다. 마지막 모습이 가족에게 너무 큰 충격으로 남았다. 나도 그렇지만 아이들에게 더 그래서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관련기사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 따르면 중환자실에서 연명의료를 하다 숨지는 사람은 한 해 3만~5만명에 달한다. 이들은 정씨처럼 말도 못하고 고통스럽게 세상을 뜬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올 2월 시행한 연명의료 중단 제도를 선택한 2만742명은 대부분 처음부터 인공호흡기를 달지 않거나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고 유보한 사람들"이라면서 "이미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다가 제거한 경우는 흔하지 않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한 해 3만명이 연명의료를 유보하면 인공호흡기를 달고 숨지는 사람(3만~5만명)도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 개원 30주년을 맞은 지난 4일 관람객들이 병원 본관에 마련된 사진전시회를 둘러보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 개원 30주년을 맞은 지난 4일 관람객들이 병원 본관에 마련된 사진전시회를 둘러보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지난달 초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ㆍ완화의료센터에서 만난 자궁암 말기 환자 A(46ㆍ여)씨는 2월 시행한 제도를 활용한 사례다. 10년 전 자궁암 진단을 받은 A씨는 치료 뒤 완치된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지난해 재발과 함께 말기 진단을 받았다. 가족은 “다른 병원에 가보자”고 권유했지만 A씨는 거부했다. 대신 집에서 고등학생 딸(17)과 함께했다. 보름만에 스스로 거동하기 힘들 만큼 쇠약해졌다. 그는 가족에게 “오래 고민했는데 호스피스에 가고 싶다”고 했다. 병원에서 의사의 상담을 받은 뒤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연명의료계획서에 서명했다. A씨 어머니(75)는 “나도 사위도 모두 많이 반대했다. 아직 젊으니까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환자가 울면서 호소했다.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이제 그만 아프고 싶어. 아픈 건 내가 선택한 게 아니니 어쩔 수 없지만 마지막에 갈 때는 평화롭게, 예쁜 모습으로 가고 싶어.” A씨의 어머니는 “저가 그렇게 힘들어하니까 따랐다”고 말했다. A씨는 극심한 통증을 진통제로 조절하며 생의 마지막을 보냈다. 그는 지난달 말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졌다.
특별취재팀 sssh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