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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어찌할까, 음주운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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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권혁주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권혁주 논설위원

권혁주 논설위원

‘세조가 술을 마시다 신숙주와 팔씨름을 했다. 이긴 세조에게 신숙주가 다시 팔씨름을 청했다. 그러곤 세조가 미처 힘을 주기도 전에 왕의 손목을 꺾었다. 임금은 노했지만 신숙주가 크게 취했음을 확인하고는 넘어갔다.’ 조선 중기의 역관 조신이 지은 『소문쇄록』에 나오는 이야기다. 취해서 한 행동에는 임금이 관대했음을 보여주는 일화다.

성종도 비슷했다. 대취해 임금 앞에서 횡설수설했던 신하가 탄핵을 받자 “취중의 말에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라며 용서했다. ‘취해서 한 말은 탓할 수 없기에’ 왕에게 쓴소리를 퍼부어야 하는 사간원은 업무 시간에도 술 마시는 것을 허용했다. 나라에 금주령이 내려도 사간원은 예외였다.

취중 행위에 너그럽기는 예나 이제나 마찬가지다. 실수하고도 “술에 취해서…”라면 대부분 “그럴 수도 있지”다. 일상생활뿐 아니라 법 운용도 그렇다. 취해서 저지른 범죄는 형량을 덜어주는 ‘주취감경(酒醉減輕)’을 적용하고 있다. 음주 범죄를 가중처벌하는 독일·프랑스 등과는 정반대다.

음주운전 사고 처벌도 다른 나라보다 가볍다. 실형을 받는 비율은 8%밖에 안 된다. 음주운전으로 최근 10년간 연평균 약 700명이 사망하고 4만6000명이 다칠 정도로 사회적 손실이 심각한데도 그렇다. 사망 사고에 대해 법은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원칙적으로 10년 이상의 형도 가능하다. 그러나 대법원이 정한 양형 기준은 1~3년이다. 음주운전 사망 사고에 20년 안팎의 징역형을 때리는 미국·일본과 대비된다.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상습 음주운전자가 사망 사고를 냈을 때 징역 10년이 넘는 중형을 검찰이 구형하기도 하지만, 법원이 받아들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 음주운전 처벌이 도마에 올랐다. 지난달 25일 발생한 ‘해운대 음주 사고’가 계기가 됐다. 법조인을 꿈꾸던 젊은이가 군에서 휴가 나왔다가 음주운전 차량에 받혀 뇌사 상태에 빠진 사건이다. 피해자의 친구는 음주운전 사망 사고를 강력히 처벌해 달라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내용은 이렇다. ‘제 친구는 평소 우리나라 법의 형량이 너무 약한 탓에 많은 범법행위가 발생한다며…(중략)…음주운전은 실수가 아닌 살인 행위입니다.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위법이 음주 사고라 하여 가볍게 처벌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글에 동의한 국민이 25만 명을 넘어섰다. 기준인 20만 명을 초과해 이젠 청와대나 정부 관계 부처가 공식 답변을 해야 하게 됐다. 과연 청와대와 정부는 어떤 답변을 내놓을까.

권혁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