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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한국 경제에 저성장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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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국 경제가 어둡고 깊은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어제 ‘세계경제 전망’을 통해 올해와 내년 세계 성장률 전망을 각각 종전 3.9%에서 3.7%로 낮췄다. 미·중 무역전쟁 격화와 미국발 금리인상 충격 등으로 세계 경제가 급격히 위축된다는 이유에서다. 그 충격은 경제 규모 대비 무역의존도가 70%에 달하는 한국 경제에 직격탄을 날릴 전망이다.

IMF 2018·2019년 연속 2%대 성장 예고 #정부는 10개월째 “경제 회복”이라며 태평 #노벨상 받은 로머 “소득, 기술로 이어져야”

IMF는 올해 한국의 성장률을 3.0%에서 2.8%로 낮추고 내년에는 2.6%로 내다봤다. 더 큰 문제는 반도체·유화산업 호황이 내년부터는 끝날 조짐을 보이면서 내후년 이후에도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갇히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는 위기감이 없다. 정부 공식 경기 전망인 ‘그린북’은 지난달까지 연 10개월째 “우리 경제가 회복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진단을 유지하고 있다. 한술 더 떠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그제 당·정·청 협의에서 “경제 문제는 언제나 어렵다. 공직 생활 동안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얘길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는 유체이탈식 발언을 내놓아 논란이 되고 있다.

집권여당의 안이한 현실 인식과 달리 한국 경제는 지금 자유낙하하는 중이다. 생산·투자·고용 지표는 모두 빨간불이다. 제조업 설비투자·생산능력지수는 6개월 연속 동반 추락했고, 실업자는 올 들어 8개월째 100만 명 돌파를 유지하고 있다. 이 여파로 경제 활동의 허리 역할을 하는 30~40대 수십만 명이 실업자로 전락했다. 사태가 심각한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성장동력이 약화하면서 지난해 월평균 30만 명이 넘었던 신규 취업자가 지난 8월 3000명 증가에 그친 데 이어 9월에는 마이너스를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탈출구는 기업의 기(氣)를 살리는 것뿐이다. 이를 위해선 기업이 투자를 하고 일자리를 만들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SK하이닉스를 방문해 “일자리는 기업이 만든다”고 말한 그대로다. 그러려면 고용과 투자를 위축시키고 있는 소득주도 성장과 공정경제의 정책방향을 과감하게 수정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부터 지역별·업종별로 차등화해야 할 것이다. 경영권을 흔들어대 기업이 투자에 전념하지 못하게 하는 경제민주화 몰이도 중단해야 한다.

혹여 8대 대기업이 400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내놓았으니 안심해도 된다고 본다면 오산이다. 지금 같은 반(反)기업·반시장 정책 기조가 유지되면 기업들은 정부 눈치만 살피면서 투자하는 시늉만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지속적으로 일자리를 만들어 내려면 적극적인 기술 개발과 혁신이 필요한데, 지금과 같은 분위기에서는 불가능하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성장이론의 대가’ 폴 로머 뉴욕대 교수는 소득주도 성장에 대해 “중요한 것은 늘어난 소득이 기술 습득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일갈했다. 그런 일을 해낼 수 있는 주체는 결국 기업이다. 기업의 기를 살려야 밀려오는 저성장 먹구름도 돌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