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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부터 악마의 디테일…북ㆍ미 실무협상 비건 VS 최선희

중앙일보

입력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으로 2차 북ㆍ미 정상회담과 풍계리 국제 사찰의 첫 단추는 끼워졌지만, 실질적 진전 여부는 북ㆍ미간 실무라인에 달려있다. 북한에선 최선희 외무성 부상, 미국에선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실무협상 테이블에 앉을 전망이다. 비건-최 라인이 협상의 디테일에서 평행선을 달리면 양측이 공언한 “중대한 진전”(폼페이오 장관)이나 “훌륭한 계획”(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말로만 끝날 수도 있다.

러시아를 방문 중인 최선희 외무성 부상. [연합뉴스]

러시아를 방문 중인 최선희 외무성 부상. [연합뉴스]

협상 개시 자체는 속도감 있게 진행될 전망이다. 미국으로선 중간선거가 다음달 6일(현지시간)이라 북핵 압박외교를 보여줄 필요가 있고, 북한으로서도 연내 종전선언을 얻어내기 위한 상시 채널이 필요하다. 외교 소식통은 9일 최 부상과 비건 대표가 이르면 다음 주 협상을 시작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은 이미 실무 협상 개시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비건 대표는 8일 서울에서 기자들과 만나 “내 카운터파트에게 가능한 한 빨리 보자고 초청장을 보냈다”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비건 대표를 “나의 핵심 보좌(point person)”라고 표현하며 그의 카운터파트는 ‘최선희’라고 이름까지 못박았다. 단 최선희 부상은 공개적으론 묵묵부답이다. 폼페이오 장관과 비건 대표 일행의 방북 시기에 맞춰 평양을 비운 뒤 중ㆍ러로 날아갔다. 미국 페이스에 넘어가지 않겠다는 태도로, 협상 우위를 노리는 모양새다. 북ㆍ미 실무라인의 기싸움은 이미 시작된 셈이다. 최 부상은 9일까지 모스크바에서 북ㆍ중ㆍ러 3자 외교차관급회담에 참가하는 등의 일정을 소화한 뒤 빨라야 이번주 중반 평양에 귀환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함께 평양을 방문했던 스티븐 비건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중국으로 출발하기 전 8일 서울에서 수행기자단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사진 미국 국무부]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함께 평양을 방문했던 스티븐 비건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중국으로 출발하기 전 8일 서울에서 수행기자단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사진 미국 국무부]

대북 소식통들은 핵 협상에서 잔뼈가 굵은 최선희는 만만한 인물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그는 6ㆍ12 1차 북ㆍ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회담 직전까지 미국의 성김 주필리핀 대사와 마주 앉아 실무 협상을 이끌었다. 반면 비건 대표는 의회ㆍ기업 등에선 노련한 협상가로 인정받고 있지만 본격적인 북핵 협상은 처음이다. 비건 대표는 최 부상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매우 경험이 풍부한 협상가”라면서도 “우리 측에도 잘 알려진 인물이며 김(정은) 위원장뿐만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양측 모두에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인물이라고 본다”고 평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7일 당일 방북 때 김정은 위원장과 큰 틀에서 합의했을 뿐 풍계리 및 미사일 엔진 시험장 사찰의 규모와 단계 등 방법론은 공란으로 남겨둔 것으로 관측된다. 이 공란은 최 부상과 비건 대표가 채워야 한다. 여기에 2차 북ㆍ미 정상회담도 두 사람이 다룰 의제다. 북한이 “미국이 상응조치를 취하면”이라는 조건을 달아 실행하겠다고 평양 공동선언에서 공언한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 등도 향후 비건과 최선희가 논의할 사안이다. 미국의 상응조치와 북한 비핵화의 서로 맞물리도록 엮는 게 비건-최 라인의 몫이다. 출발부터 악마의 디테일이 숨어있는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올린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회동 사진. 트럼프 대통령은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4차 방북과 관련, "폼페이오 장관이 오늘 평양에서 김 위원장과 좋은 만남을 가졌다"며 "싱가포르 정상회담 합의에 관해 진전이 이뤄졌다!"고 적었다. [사진 트럼프 대통령 트위터 캡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올린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회동 사진. 트럼프 대통령은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4차 방북과 관련, "폼페이오 장관이 오늘 평양에서 김 위원장과 좋은 만남을 가졌다"며 "싱가포르 정상회담 합의에 관해 진전이 이뤄졌다!"고 적었다. [사진 트럼프 대통령 트위터 캡처]

비건-최 라인이 본격 가동할 장소도 협상 내용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달 오스트리아 빈을 실무협상 장소로 지목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본부가 있는 빈이 완전한 비핵화를 다룰 적소로 판단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폼페이오 장관은 이번에 평양을 다녀온 후 말을 흐렸다. 8일 기자들이 “꼭 빈에서 하지는 않을 수도 있나”라고 묻자 “누가 알겠는가”라며 즉답을 피했다. 북한이 IAEA 본부가 있는 빈을 거부감을 표명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에 따라 북한 대표부가 있는 제3국 또는 판문점이 유력 후보지로 떠오른다. 수뇌부의 승인 및 지시가 없이는 협상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는 북한의 특성상, 신속한 협상 진행을 위해선 시차가 없고 물리적 거리도 가까운 판문점도 거론된다. 6ㆍ12 북ㆍ미 1차 정상회담을 두고 북ㆍ미가 판문점에서 협상을 진행한 것도 이런 배경이 있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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