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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AG 2연패 전민재가 휴대폰을 꺼내든 이유는?

중앙일보

입력

8일 육상 여자 200m T36 결승에서 전민재 선수가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후 태극기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8일 육상 여자 200m T36 결승에서 전민재 선수가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후 태극기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나이를 잊은 질주였다. 장애인 육상 간판 전민재(41·전북장애인체육회)가 아시안게임 200m 2연패에 성공했다.

전민재는 8일(한국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주경기장에서 열린 2018 인도네시아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육상 여자 200m(스포츠등급 T36) 결선에서 31초08로 결승선을 통과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출발선에 선 전민재는 무서운 속도로 트랙을 누볐다. 40대를 넘겼지만 세계 최정상에도 섰던 전민재는 여전히 빨랐다. 전민재보다 24살 어린 은메달리스트 왕단(중국)의 격차는 무려 2.49초였다. 결승선을 통과한 전민재는 환호를 내지른 뒤 곧바로 트랙 위에 주저앉았다.

8일 열린 육상 여자 200m T36 결승에서 질주하는 전민재. [사진공동취재단]

8일 열린 육상 여자 200m T36 결승에서 질주하는 전민재. [사진공동취재단]

다섯 살 때 원인 모를 뇌염으로 뇌병변 장애를 얻은 전민재는 중학교 2학년이던 2003년 체육 선생님의 권유로 육상을 시작했다. 달리는 게 좋아 논두렁을 달리며 연습했던 그는 대한민국 장애인 체육을 대표하는 '스타'로 우뚝 섰다. 2008년 베이징 패럴림픽 200m 4위, 100m 6위에 그쳤지만 2012년 런던 패럴림픽에서 200m 은메달을 거머쥐었다. 2016년 리우 패럴림픽에서는 2연속 은메달을 획득했다. 장애인 아시안게임에서는 2010년 광저우 대회 100m, 200m 은메달을 땄고, 2014년 인천 대회에서는 100m, 200m 금메달을 휩쓸어 2관왕에 등극했다.

손을 잘 사용하지 못해 발로 글씨를 쓰는 전민재는 늘 '발로 쓴 편지'로 소감을 전한다. 2012년 런던 패럴림픽, 2014년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 2016년 리우 패럴림픽에서 전민재가 준비한 편지는 큰 감동을 선사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는 스마트폰 음성편지로 자신의 각오를 밝혔다. "2위를 목표로 훈련하고 있습니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는 1위 했었는데 정말 기쁘고 행복했어요. 하지만 자카르타아시안게임에서는 아쉽지만 1위는 못할 것 같아요. 세계 1위 중국 선수가 있어서요"라는 각오였다.

200m 결승이 끝난 뒤 휴대폰으로 소감을 밝히고 있는 전민재. [사진 대한장애인체육회]

200m 결승이 끝난 뒤 휴대폰으로 소감을 밝히고 있는 전민재. [사진 대한장애인체육회]

하지만 전민재는 중국 선수를 제치고 기어이 금메달을 따냈다. 2016년 리우 패럴림픽부터 동고동락하고 있는 신순철 육상대표팀 감독은 "조금 숨겨놨다. 일부러 그렇게 말한 것이다. 2위를 목표로 했는데 1등을 하니 기분이 좋다"며 껄껄 웃었다. 금메달을 따낸 전민재는 이번에도 스마트폰으로 소감을 밝혔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공개한 편지에는 '발로 쓴 편지'가 아닌 이유가 담겨있었다. "요즘 발목이 아파서 펜 잡기가 힘들어서 이렇게 핸드폰으로 쓰게 됐는데 양해 부탁드립니다"고 했다.

"올해 훈련연습을 하는 동안 유난히도 더웠던 날씨 탓에 더위와 싸우며 연습을 하려니 많이 힘들었다. 올해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따서 정말 기쁘다.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 항상 옆에서 응원해줘서 고맙고 사랑한다. 사랑하는 우리 조카들 하은, 대성, 예성, 시연, 상우. 이모가 메달 땄어. 너희도 기쁘지? 이모도 너무 기쁘다."

스마트폰으로 전한 전민재의 소감. [사진 대한장애인체육회]

스마트폰으로 전한 전민재의 소감. [사진 대한장애인체육회]

전민재는 장애인육상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당부와 더 많은 훈련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도 했다. "육상은 비인기 종목이고 장애인육상은 더욱 사람들 관심 밖이지만 저희도 똑같이 땀 흘리면서 열심히 훈련받고 있다.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져달라. 대한장애인육상연맹에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내년에는 훈련 기간이 조금 더 길었으면 좋겠다. 아시안게임이 끝나면 또 다시 혼자 운동연습을 해야하는데 혼자 연습하는 건 한계가 있고, 힘들다. 실업팀 선수들은 쉬지않고 운동을 할 수 있으니 부러울 때가 많다. 전라북도에도 장애인 실업팀이 있었으면 좋겠다."

불혹을 넘긴 전민재의 도전은 2년 뒤에도 이어진다. 전민재는 "2020년 도쿄 패럴림픽을 마지막으로 은퇴하려고 한다. 그 때까지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는 말로 준비해 온 소감을 마무리했다. 신 감독은 "아직도 기록이 나오고, 운동을 항상 즐긴다. 아직 몇 년은 더 훈련할 수 있고, 성장 가능성이 있는 선수"라고 말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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