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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침몰하는데…반목·갈등으로 얼룩지는 한국 자동차 노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4월 교섭 당시 한국GM 교섭위원들의 모습. [사진 한국GM 노동조합]

지난 4월 교섭 당시 한국GM 교섭위원들의 모습. [사진 한국GM 노동조합]

국내 완성차 제조 현장이 다시 노사 갈등으로 얼룩지고 있다. 추석 연휴를 계기로 소강상태에 접어들 수 있다는 일각의 전망도 소용없었다. 한국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노사갈등이 기름을 붓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군산공장 폐쇄 문제로 상반기 내내 극심한 노사갈등을 겪었던 한국GM 노사는 신설 법인 설립 문제로 또다시 부딪쳤다. 민주노총 한국GM 지부(한국GM 노조)는 8일 대의원선거·간부합동회의를 열고 사측과 ‘전면전’을 선언했다. 한국GM이 오는 19일 주주총회 열고, 한국GM을 생산공장법인(한국GM)과 연구개발(R&D)법인으로 인적분할하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한국GM은 미국 본사가 진행하는 신차 디자인·개발 업무를 한국에서 하려면 법인 신설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한국GM 노조는 이를 “R&D만 남겨 놓고, 한국의 생산 공장을 폐쇄·매각하기 위한 절차”라고 의심한다. 또 “현행법상 신설법인은 기존 단체협약 승계 의무가 없다는 점을 악용해 노조를 분산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한다. 신설법인이 노조를 설립하면 현재 단일 정규직 노조가 2개로 나눠진다.

반면 자동차업계에서는 한국GM 노조가 특별단체교섭을 요구하려고 일종의 '협상 카드'로 신설 법인 문제를 제기했다고 의심한다. 정부와 투자 의향서까지 체결한 상황에서 한국 공장 폐쇄·매각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미 한국GM 노사는 지난 4월 23일 올해 임금 및 단체협상을 타결했다. 하지만 임단협 타결 과정에서 군산공장 폐쇄에 사실상 동의하면서 일부 노조원은 무급휴직을 받아들였다. 12월부터 이들에게 지급하는 생계비의 일부(30개월치 임금의 50%)는 노조원이 갹출해야 한다(노조원 1인당 3~4만원 안팎). 단체협상을 타결하면서 이 비용 보전을 요구할 명분이 사라지자, 한국GM 노조가 신설 법인 문제를 협상 카드로 들고 나왔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개최한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 [연합뉴스]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개최한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 [연합뉴스]

노사불신의 늪에 빠진 건 현대차그룹도 마찬가지다. 민주노총 현대기아차 비정규직지회(비정규직 지회)는 지난달 20일부터 7일까지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을 점거하고 단식·농성을 실시했다. 비정규직 지회가 관청을 점거한 건 노사갈등을 정부가 나서라고 압박하기 위해서다.

점거를 해제하면서 비정규직 노조는 “고용노동부가 현대차 사측과 비정규직 노조의 직접 교섭을 중재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대차 노조는 “비정규직과 직접 교섭하라는 정부 중재는 없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2012년부터 1만1887명의 사내 하도급 근로자 전원을 정규직으로 특별채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측은 사내 하도급 근로자의 채용 관련 사안을 정규직 노조와 협의해 왔다. 비정규직 지회와 직접 교섭할 경우 근로자파견법 위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또 정규직 노조도 비정규직과 직접 교섭을 용인하지 않고 있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개최한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 [연합뉴스]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개최한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 [연합뉴스]

노사 상생형 일자리 창출 모델로 추진 중인 이른바 ‘광주형 일자리’ 역시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노사는 물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합심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노총은 지난 19일 광주형 일자리 관련 협상에 불참하겠다고 선언했다.

르노삼성차 노사도 첨예하게 대립 중이다. 지난 6월부터 16차례 임단협 테이블에 앉았지만 입장 차이가 워낙 커서 지난달 14일부터 한 달 가까이 교섭을 중단했다. 노조는 지난 4일에는 4년 만에 처음으로 파업을 할 정도로 강경하지만, 사측은 수정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한국산 자동차 점유율은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한국 자동차 수출액(234억2800만 달러·26조5500억원)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6.8% 감소했다(1∼7월 기준). 이에 따라 5위(5.6%·2013년)였던 세계 자동차 수출 시장 순위도 8위(4.6%)로 내려앉았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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