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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오 회담 통역관 바꾼 北, 김영철 때문이라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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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오찬을 하고 있다. [미 국무부 제공]

평양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오찬을 하고 있다. [미 국무부 제공]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은 여러가지 면에서 많은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6개월 전 버전 풍계리 다시 꺼내, 영변과 동창리는 언급 없어 #카운터파트 김영철 처음으로 회담에서 배제, 통역관도 교체 #'조만간' 2차 회담 놓고 "중간선거 이전", "이후" 의견 갈려

무엇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고, 어떤 결과에 도달했는지 구체적인 설명을 않고 있는 데다 면담 형태도 지금까지와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3대 포인트를 정리해본다.

①왜 영변도 동창리도 아닌 풍계리인가

미 국무부는 이날 회담 뒤 헤더 나워트 대변인 명의의 발표문을 통해 "김 위원장은 풍계리 핵 실험장이 불가역적으로 해체됐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사찰단(inspectors)의 방문을 초청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지난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서 풍계리 핵실험장을 한국과 미국의 전문가와 언론인들을 초청해 폐쇄 조치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20일 전인 지난 5월 24일 한국과 미국 등 5개국 취재진을 불러 핵실험장 갱도를 폭파했다. 다만 약속했던 전문가들의 참관은 없었다.

이를 두고 당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일부 언론들이 멀리서 폭발을 지켜봤지만 실제로 어떤 조치가 취해졌는지 검증할 국제 참관단이 없었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이 이번에 '풍계리 사찰단' 카드를 꺼내든 것은 "못 믿겠으면 와서 보라"는 차원이기도 하다.

북한은 지난 5월 24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하기 위해 폭파작업을 단행했다.

북한은 지난 5월 24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하기 위해 폭파작업을 단행했다.

다만 이미 지난달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상응하는 조치를 할 경우 영변 핵시설의 영구 폐기 ▶동창리 미사일 엔진실험장과 발사대 폐기 및 참관 수용까지 합의한 마당에 다시 6개월 전 버전인 풍계리로 돌아가는 건 뭔가 미국이 제시한 '상응하는 조치'와 북한 요구가 맞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또 하나는 미 국무부 발표에선 '불가역적으로 해체됐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사찰단'이라고 표현했지만 북한 측 발표에선 이와 관련된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 국무부 발표문만 보면 미국 측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미 전문가들을 동원해 시료 채취까지 하는 것을 상정하는 듯 하나, 북한 측과 어디까지 합의했는지는 미지수다.

②왜 김영철은 회담에서 빠졌나

7일 오전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된 회담에는 북한 측에서 김 위원장,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통역 등 세 명이 나왔다. 미국 측에선 폼페이오와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 앤드루 김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장의 세 명이 참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 올린 지난 7일의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김정은 위원장의 면담 사진. 김정은 위원장 옆에는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국장(가장 오른쪽)과 여성 통역관이 앉았다. [트위터 캡처]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 올린 지난 7일의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김정은 위원장의 면담 사진. 김정은 위원장 옆에는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국장(가장 오른쪽)과 여성 통역관이 앉았다. [트위터 캡처]

지난 5월 폼페이오의 2차 방북 당시 회담 모습. 김정은 위원장의 옆에는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 김주성 통역관(가장 오른쪽 안경 쓴 인물)이 배석했다.

지난 5월 폼페이오의 2차 방북 당시 회담 모습. 김정은 위원장의 옆에는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 김주성 통역관(가장 오른쪽 안경 쓴 인물)이 배석했다.

1, 2차 폼페이오 방북 당시와는 달랐다. 당시는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빠짐없이 김 위원장 바로 옆에 단독 배석했다. 3차 방북 때는 김 위원장이 나서지 않고 김 부위원장이 폼페이오를 직접 상대했다. 그럼 점에서 볼 때 이번 김영철 부위원장의 배석 제외는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그동안 미국 측은 "김 부위원장은 지나치게 강경해 도무지 말이 안 통한다"며 협상 창구를 바꿔줄 것을 요구해왔다고 한다. 따라서 이번 4차 방북 때 김 부위원장 대신 여동생인 김여정을 회담에 배석시킨 것은 미국 측의 이 같은 분위기를 배려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또한 김 위원장으로서도 군 강경파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김 부위원장을 배제한 채 미국과 '솔직하고 깊숙한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 회담에 배석 못한 김 부위원장은 이후 오찬에는 헤드테이블에 앉았다.

평양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오찬을 하고 있다. 가장 오른쪽에 앉은 이가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미 국무부 제공]

평양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오찬을 하고 있다. 가장 오른쪽에 앉은 이가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미 국무부 제공]

흥미로운 건 그동안 김영철이 배석할 때마다 북한 측 통역관으로 배석했던 '1호 통역' 김주성 대신 신원 미상의 여성 통역관이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은 "김영철에게 정보가 가는 걸 차단하기 위해 통역관을 김여정의 측근으로 교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7일 4차 방북한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오찬을 함께 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김 위원장 뒷편의 여성이 이날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북한측 통역관이다. 뒷편으로 멀리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의 모습이 보인다. [미국 국무부]

지난 7일 4차 방북한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오찬을 함께 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김 위원장 뒷편의 여성이 이날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북한측 통역관이다. 뒷편으로 멀리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의 모습이 보인다. [미국 국무부]

③'조속 개최' '조만간'은 언제인가

2차 북·미 정상회담 시기에 대해 폼페이오는 "가급적 이른 시일에 개최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구체적인 협의를 계속하기로 했다"고 했다. 조선중앙통신은 8일 "조만간 2차 조·미(북·미)수뇌회담과 관련한 훌륭한 계획이 마련될 것"이라고 했다. 문맥으로만 보면 아직 2차 정상회담 시기에 대해 확정을 하지 못했고, 비건-최선희 라인의 추후 실무협상을 통해 조율해 나가기로 한 것처럼 보인다. 이 경우 사실상 중간선거(11월 6일) 이전의 회담은 어려운 것 아니냐는 분석이 가능하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북한 방문,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이 임박해 있는 상황에서 10월 중 북·미 회담은 물리적으로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다음달 6일 중간선거에서 민주당과 정권의 운명을 걸고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하는 트럼프에겐 경합 선거구의 공화당 상·하원 후보 지원유세 스케줄이 이달 말 빼곡히 집중돼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다만 역으로 중간선거가 끝나면 11월 내내 미국 내 모든 언론과 국민의 관심이 선거 결과로 몰릴 게 뻔한 상황이라, 여론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길 원하는 트럼프로선 중간선거 이전을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선호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국무회의에서 "폼페이오 장관 방북으로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조기에 열릴 수 있는 분위기와 여건이 조성됐다"고 말한 점도 이 같은 가능성에 무게를 둔 것일 수 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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