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인터뷰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별명은 ‘재벌 저격수’다. 20년 가까이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며 재벌의 문제점을 파헤쳐 왔다. 그는 별명에 대해 “거부한다고 뗄 수 있겠나”라며 “저에 대한 포상이기도 하니 감사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벌 개혁이 우리 사회의 과제로 부상한 지 30년이 됐지만 공정거래법에 숫자로 표현되는 사전 규제를 밀어붙이다 보니 실패했다”며 “상법·금융법·세법·형법 등이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통합될 수 있는 개혁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조식 재벌개혁’이 범정부 차원에서 입체적으로 논의되고 있다는 의미다. 다음은 김 위원장과의 문답.
재벌 2·3세는 그룹 안팎 소통 집중 #일상 경영은 전문인에게 맡겨야 #LG, 재벌 성공적 롤모델에 근접 #일찌감치 지주회사로 방향 전환 #삼성, 지주회사가 만능 아니지만 #현 체제 유지·보완 땐 비용 커질 것 #‘재벌 저격수’ 거부한다고 뗄 수 있나 #포상이라 여기고 감사하게 수용
- 한국 재벌의 문제는.
- “사실 재벌 기업도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 있다. 지배구조 문제만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비즈니스 리스크가 매우 크다. 삼성전자처럼 영업이익 신기록을 경신하는 기업이 많지 않다. 한국 경제 전체가 산업구조 개편을 해야 할 상황이고, 기업도 고민이 깊다. 즉 한국 재벌그룹의 문제를 거칠게 요약하자면 사업 모델에서도, 지배구조 측면에서도 큰 위험을 안고 있다.”
- 기업의 일반적 리스크 아닌가.
- “한국 경제의 성장 과정을 돌아보면 요즘 같은 때가 또 있었나 싶다.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때만 해도 어떤 문제를 해결하면 다시 도약할 수 있겠다는 방향성은 확실했다. 지금은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불확실하다. 누군가는 판단을 내리고 결정하며 책임져야 하는데 그런 의사결정 구조를 가진 기업이 많지 않다. 그룹을 이어받은 2·3세가 망설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다.”
- 결국 지배구조가 문제인가.
- “30년 전의 재벌은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작은 기업이었다. 그때는 그룹 전체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총수가 다 파악하고 시킬 수 있었다. 지금은 안 된다. 모든 걸 보고받고 지시하는 CEO형 리더십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 내부 에너지를 모으는 코디네이션(조정) 기능, 외부 이해관계자와의 커뮤니케이션(소통) 기능이 필요한 이유다. 지금 2·3세는 CEO가 아니라 그룹 전체를 조정·조율하는 이사회 의장으로 변화하는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 경영에서 물러나라는 얘긴가.
- “전혀 아니다. 이는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배당받는 주주로 물러나라는 얘기가 아니다. 일상적인 경영은 CEO에게 맡기고, 더 큰 그림에 집중하라는 거다. 그걸 이사회 의장이라고 부르든, 회장이라고 부르든 중요하지 않다.”
- 성공적인 롤 모델이 있나.
- “LG는 20년 전에 약 3년 정도 걸려서 지주회사 전환을 했다. 일찌감치 지주회사로 전환 방향을 정했고, 그 취지도 잘 살렸다. 구글도 전체 그룹 비즈니스를 조율하는 지주회사를 만들었다. 스웨덴 발렌베리 그룹도 4대째 경영권을 승계하지만 가문은 개별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다.”
- 삼성은 지주회사 전환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 “20년 전 LG보다 더 큰 어려움이 있을 거다. 모르는 바도 아니고, 지주회사가 만능인 것도 아니다. 지주회사 전환을 결단할 수도 있고, 지금 구조를 조금 수정해 갈 수도 있다. 다만 유지·보완하는 방향으로 간다면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에 따른 법률 리스크와 사회적 비난은 감수해야 한다. 시간이 갈수록 비용은 커진다.”
- 김상조식 재벌 개혁은 무엇인가.
- “크게는 세 가지다. 하나는 현행법을 엄정하게 집행하는 것이다. 더는 불법이 용납되지 않는다는 시그널을 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두 번째는 이런 시그널에 부합하게 기업이 변화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세 번째, 그러고도 안 되는 부분이 있다면 법 개정을 통해 사각지대를 메워야 한다. 이걸 이번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안에 담으려고 한 거다.”
- 효과적으로 작동할까.
- “경제 규율 시스템은 사전 규제와 사후 감독 등 여러 제도가 어우러져 함께 가야 한다. 예컨대 금산분리라고 하면 공정거래법상 의결권 제한 등 법을 통한 해법만 생각한다. 최근 ‘시가로 평가해라’ ‘총자산의 몇%를 넘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보험업법을 개정하려는 것도 사전 규제다. 그런데 최근 금산분리를 위해 의미 있는 제도가 마련됐다. 금융위원회가 모범 규준 형태로 만든 금융그룹 통합감독제도다. 앞으로는 이 제도가 금산분리의 기본 인프라로 작동할 것이다. 이 제도의 큰 골격은 세 가지다. 첫째, 자본을 충분히 쌓으라는 것이다. 둘째, 그룹 전체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과제다. 셋째, 금융그룹 전체의 위험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건데 이걸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어떻게 운영되나.
- “금융회사의 위험관리를 어떻게 하겠나? 예를 들어 금융 계열사가 비금융 계열사에 신용 공여를 하거나 지분을 취득하는 건 위험이 전이될 수 있으니 분명 리스크다. 예컨대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보유 문제도 통합감독제도에선 시가로 평가한다. 다만 통합감독제도 시행까지 충분한 경과기간을 둘 예정이어서 삼성 입장에선 급박하게 해결해야 할 강제성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삼성그룹 정도라면 10년 후 한국 사회가 어떻게 변해 있을 건지를 내다보고 선제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 선진국은 1970년대부터 금융그룹 전체의 위험을 수시로 평가하고, 여기에 맞는 사후 규율 시스템을 정착시켜 왔다. 이런 게 금산분리를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적합하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 지속 가능한 개혁이란.
- “지주회사만 보자. 이번 개정안엔 지주회사의 자회사·손자회사 지분 요건을 상장회사는 20%에서 30%, 비상장회사는 40%에서 50%로 강화하는 내용이 있다. 이걸 10%포인트씩 올리면 지주회사의 취지가 살아나고, 올리지 않으면 문제가 그대로일까? 이렇게 숫자에만 의존하는 것이야말로 개혁이 실패하는 길이다.”
- 그럼 무엇이 중요한가?
- “20%밖에 안 가지고 있는데도 어떻게 지주회사 경영이 되느냐를 따져봐야 한다. 지분이 20%밖에 없으면 지주회사 몫의 배당도 적다. 그러면 회사 가치도 떨어진다. 이러니 임대료나 브랜드 사용료 같은 배당 외 수익을 자꾸 찾는다. 우선 브랜드 사용료는 어떤 기준으로 받는지, 컨설팅 수수료는 왜 받는지 등을 정확하게 공시하는 게 출발점이다. 수익의 원천을 주주와 시장에 제대로 설명하고, 일감 몰아주기 같은 게 적발되면 처벌도 해야 한다. 이렇게 편법을 차단해 결국 지분율을 올릴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게 지속 가능한 개혁이다.”
- 기업의 기를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 “‘기업 기 살리기’는 호소력이 강한 표현이다. 동시에 의구심이 있다. 사실 한국에서 기업 기 살리기라고 하면 최상위 기업의 민원 해결이나 애로사항을 풀어주는 걸 뜻한다. 그러나 한국 경제의 장래가 밝아지려면 이름도 모르는 중하위 그룹, 중소·중견 기업이 도전할 수 있는 평평한 운동장, 즉 공정경쟁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런 기 살리기가 더 급하다.”
- 글로벌 ICT 기업의 불공정행위가 도마 위에 올랐다.
- “퀄컴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이고, 애플이나 구글에 관한 사안은 조사를 하고 있다. 조사를 마치고 안건 상정 절차가 진행 중인 내용도 있다. 특히 애플은 올해 내로 심판정에서 다룰 계획이다. 사안이 꽤 많다. 전 세계에서 우리만 조사하는 것도 있다. 플랫폼 경제에서 시장지배력을 남용하는 국내외 기업들에 경쟁법을 엄정히 적용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는 걸 잘 인식하고 있다. 조만간 어떤 형태로든 결과가 나올 거다. 열심히 작업 중이다.”
- 전직 공정위원장 3명이 기소됐고, 37년간 독점했던 전속고발권도 넘겨줄 처지다. 내부 분위기가 좋지 않은데.
- “구성원의 상실감과 좌절을 충분히 이해한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사실 공정위는 재취업할 길이 마땅치 않다. 산하 기관도 없고, 기업을 감시하는 곳에서 기업으로 가는 건 태생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있다. 결국 우리 직원들이 경쟁법 전문가로서 성장하고, 외부에서 인정받고 활동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요즘 밤낮으로 고민한다.”
김상조
1962년 경북 구미 출생.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해 같은 곳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년 가까이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재벌 체제의 문제점과 사회 불평등을 지적하는 목소리를 냈다. 재벌 저격수로 불리지만 합리적인 해법을 고민하는 스타일이란 인물평이 공존한다. 2017년 6월 공정거래위원장에 취임했다.
만난 사람=이상렬 경제에디터
정리=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