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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스토리 … 예산 많으면 예술성 떨어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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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제이슨 블룸이 제작한 영화들. 사진은 고전 공포영화의 40년 뒤 이야기를 다룬 새로운 속편 ‘할로윈’.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제이슨 블룸이 제작한 영화들. 사진은 고전 공포영화의 40년 뒤 이야기를 다룬 새로운 속편 ‘할로윈’.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저예산 공포영화로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할리우드 제작자 제이슨 블룸(49)이 올해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를 뜨겁게 달궜다. 7일 영화제에 선보인 신작 ‘할로윈’(감독 데이빗 고든 그린)은 1978년작 같은 제목 공포영화를 계승한 속편. 10대들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감금된 마이클(닉 캐슬 분)이 40년 뒤 정신병원에서 탈출하자, 과거 유일한 생존자였던 로리(제이미 리 커티스 분)가 그와 목숨 건 대결에 나서는 내용이다. 영화가 상영된 1000여 석 규모 극장엔 즐거운 비명과 환호가 가득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온 제이슨 블룸 #저예산 공포물로 이름난 제작자 #늘 정치·사회적 요소 담으려 노력 #‘부산행’ 리메이크 탐났지만 포기

아카데미상 주요 부문 후보에 올라 각본상을 받은 공포영화 ‘겟 아웃’. [각 영화사]

아카데미상 주요 부문 후보에 올라 각본상을 받은 공포영화 ‘겟 아웃’. [각 영화사]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에 나선 블룸은 “한국은 저한테 매우 중요한 나라”라며 “블룸하우스가 제작한 음악영화 ‘위플래쉬’는 한국에서 미국보다 더 크게 흥행했고, 공포영화 ‘겟 아웃’ ‘해피 데스데이’는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 시장 중 한국 흥행 성적이 가장 높았다. 한국에 온 건 두 번째지만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을 직접 만나니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데미언 차젤 감독의 재능을 널리 알린 ‘위플래쉬’. [각 영화사]

데미언 차젤 감독의 재능을 널리 알린 ‘위플래쉬’. [각 영화사]

2000년 문을 연 블룸하우스는 단돈 1만 5000달러의 저예산으로 1만 배 넘는 흥행수입을 벌어들인 ‘파라노말 액티비티’를 시작으로, ‘인시디어스’ ‘23 아이덴티티’ 등 세태 풍자를 가미한 신선한 아이디어로 잇달아 히트작을 배출해왔다. 특히 ‘위플래쉬’의 데미언 차젤, ‘겟 아웃’의 조던 필레 등 개성 강한 신인감독과 독특한 스토리를 발굴하는 블룸의 안목이 빠른 성장 비결로 꼽힌다. 이에 더해 감독의 연출권을 철저히 보장하되, 스타 캐스팅이나 대대적인 개봉이 아니어도 크게 손해 보지 않을 선에서 제작비를 엄격히 관리하는 전략을 펼쳐왔다.

7일 취재진과 만난 블룸은  “사실 ‘할로윈’시리즈는 속편이 10여 편에 달하지만, 블룸하우스가 새롭게 시작하는 ‘할로윈’ 영화란 의미로 오리지널 1편의 40년 뒤 이야기를 다뤘다”고 말했다. 그는 “블룸하우스의 중요한 원칙은 원작자를 반드시 후속작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보통 할리우드 속편 영화 퀄리티가 뚝 떨어지는 건 원작자를 배제하기 때문이다. 이번 프로젝트에선 원작의 존 카펜터 감독을 (프로듀서로) 참여시키는 게 저의 1순위 요구사항이었다”고 전했다.

7일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제이슨 블룸. [연합뉴스]

7일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제이슨 블룸. [연합뉴스]

결국 원작 감독과 제이미 리 커티스 등 원작의 배우가 모두 참여했는데.
“스토리의 힘이다. 블룸하우스는 영화에 사회·정치적 요소를 담으려 항상 노력한다. 보통 공포물이 트라우마로 남을만한 사건을 주로 다루는데 이 영화는 그런 사건을 겪은 주인공이 40년 후 이를 어떻게 극복해나가는지에 주목한다. 마이클이 언젠가 자신을 죽이러 찾아올 거란 공포에 사로잡혀 살고 있는 로리와 그의 딸, 손녀까지 여성 삼대가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남자를 이겨내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주저하던 제이미 리 커티스가 결국 출연을 수락한 것도 로리 캐릭터가 겪은 사건이 이후 40년이란 세월 동안 그와 가족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배우로서 탐험하는 흔치 않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흥행 실패가 없는 제작사로 꼽힌다.
“할리우드의 큰 실수는 컨셉트를 바탕으로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다. 또 고예산 영화를 양산한다. 제작비가 높을수록 영화의 예술적인 면은 줄어든다는 게 제 생각이다. 블룸하우스는 좋은 스토리를 구체적으로 발전시켜 뚜렷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노력한다. 사실 모든 것이 감독에서 시작된다. 영화제에 갈 때마다 영화를 많이 보고 마음에 드는 영화의 감독을 반드시 만나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절대 공포물을 안 할 것 같은 감독과도 협업하려 한다. 알렉산더 페인 감독과 새 작품을 논의 중이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과 언젠가 작업해보는 게 꿈이다.”
구상 중인 새로운 도전이 있다면.
“해외 현지 공포물을 시도하고 있다. 현지 영화에 우리 전략을 합하면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궁금하다. 얼마 전 ‘구울’이란 힌디어 영화를 만들어 넷플릭스에 판매했고, 중국 및 한국 영화사와도 합작 계획을 갖고 있다. 요즘 유일하게 극장에서 잘되는 장르가 히어로물 아니면 공포영화다. 공포물의 전성기가 절정에 달하고 있는데, 이미 수년간 흥행했기 때문에 향후 2년간은 별로 좋지 않은 공포영화가 쏟아져 공포물 시장을 위축시킬 걸로 예상한다. 그럼에도 좋은 공포영화는 관객이 찾아줄 거라 믿는다.”

인상적인 한국배우로 마동석을 꼽은 그는 “‘부산행’은 원작을 넘어서지 못할 것 같아 리메이크를 포기했다”고 했다.

부산=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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