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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치매 환자 치료에 약물만큼 더불어 사는 포용력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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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승현 대한치매학회 이사장  

치매는 급격한 노인 인구 증가와 함께 환자가 폭발적으로 느는 질병이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1명이 치매 환자다. 정부가 지난해 치매 환자와 가족의 부담을 덜겠다며 ‘치매 국가책임제’를 도입한 이유다. 하지만 국민의 관심이 부쩍 높아진 데 반해 치매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무섭고 두려운 병’이란 편견에 머물러 있다. 이는 치매를 예방·치료하고 치매 친화적 사회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다. 대한치매학회 김승현(한양대병원 신경과 교수) 이사장에게 치매에 대한 오해와 정책의 방향성에 대해 들었다.

무서운 병이란 사회적 편견 #혐오감 불러 예방·치료 방해 #일상생활 능력 향상시켜야

김승현 이사장은 ’환자가 과거를 회상하며 가족과 대화하는 과정이 곧 치료가 되므로 보호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프리랜서 김동하

김승현 이사장은 ’환자가 과거를 회상하며 가족과 대화하는 과정이 곧 치료가 되므로 보호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프리랜서 김동하

 -치매에 대한 대표적인 편견은 무엇인가.

 “노인 인구가 급격히 늘면서 치매가 갑자기 부각돼 병을 제대로 알고 대처할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치매는 유독 무서운 병이란 편견이 강하다. 드라마 등에서 치매를 ‘걸리면 안 되는 비참한 병, 가족을 괴롭히는 병’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치매 예방·치료를 ‘치매와의 전쟁’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편견이 치매에 대한 혐오감을 만들었다. 하지만 치매는 적이 아니다. 치매의 10~20%는 완치가 가능하다. 또 치매로 진단받더라도 약물치료와 생활습관 변화를 통해 질병 진행 속도를 늦춰 일상생활을 10년 이상 이어갈 수 있다. 물론 치매에 걸린 사람은 때론 난폭해지기도 하고, 상점에서 돈을 내지 않고 물건을 가지고 나오기도 한다. 이런 증상을 보통 사람의 잣대로 바라보면 안 된다. 인지 기능이 떨어지고 치매를 앓는 사람이 우리 부모님이 될 수 있다. 또 누구나 나이가 들면 치매에 걸릴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나도 언젠가는 그 사람들처럼 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치매 환자를 품을 수 있는 포용력이 사회에서 자리 잡아야 한다.”

 -치매 치료에서 약물치료는 필수인가.

 “모든 치매 환자에게 약물치료는 기본이다. 퇴행성 변화에 의한 알츠하이머 치매는 인지 기능과 관련 깊은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 분비량을 늘리는 약물치료로 좋아질 수 있다. 반면 두뇌의 전두엽·측두엽 위축 때문에 발생하는 전두측두엽 치매 같은 경우 이런 약물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경우엔 환자의 비정상적인 행동을 조절해줄 수 있는 약물을 함께 쓰는 병용요법으로 치료한다. 신경전달물질 분비만 늘리는 것 이외에 다른 신경보호 약물을 병용하는 것이다. 주변 신경세포들을 살리기 위해 쓰는 몇 종류의 약들이 개발돼 있다. 그런 것들을 어떻게 조합해 쓰느냐가 약물학적 치료다. 약물은 조기에 사용할수록 좋으며 꾸준히 복용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치매 치료에서 약물치료만큼 중요한 것이 환자의 생활 방식을 개선하는 치료(비약물 치료)다.”

 -치매 환자의 생활습관 개선은 어떤 것을 말하나.

 “생활습관 중 첫째로 중요한 것이 운동이다. 일주일에 30분씩 하루 3번, 땀을 흘릴까 말까 하는 정도의 강도가 좋다. 운동을 하면 기억력에 관여하는 뇌 보호 물질이 분비된다는 것이 동물실험과 인체 시험에서 규명됐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사회활동이다. 다른 사람과 많이 대화하고 대인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악기를 다루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 본인이 할 수 있는 취미 활동을 하고 일기를 쓰는 습관도 들여야 한다. 이런 생활습관 개선이 일상생활 수행 능력을 높여준다. 일상생활 수행 능력은 치매 환자가 식사를 하고 화장실에 가며 전화를 쓰고 음식을 장만하거나 돈을 관리하는 것 같은 기본적인 일상생활을 스스로 얼마나 잘하는지 나타내는 지표다. 치매 진단의 필수 요소이면서 환자 보호자의 부담을 예측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환자가 꽃을 좋아하면 꽃 이름을 외우게 하고, TV를 보면 어떤 연예인이 어떤 얘기를 했는지 기억하게 하고, 영화를 봤으면 영화를 회상하며 기억에 남는 대목을 말하게 하는 것들이 일상생활 수행 능력을 높여준다.”

 -생활습관 개선이 치매 예방·치료에 도움이 되는 원리는.

 “망가진 뇌세포가 일을 하지 못하더라도 손상되지 않은 뇌세포를 더 활성화하면 보상 작용을 해 인지 기능을 개선할 수 있다. 살아 있는 부분을 좀 더 활성화시켜 그동안 50 정도의 일을 하던 걸 100까지 할 수 있도록 끌어올리는 것이다. 대한치매학회에서는 치매 환자의 일상생활 능력을 향상시키고 환자와 보호자에게 행복한 외출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취지로 2012년부터 인지 기능 개선에 도움이 되는 비약물 치료의 일종인 ‘일상예찬’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일상예찬 캠페인을 설명해 달라.

 “학회는 국립현대미술관과 협업해 미술을 통한 치매 치료 방법을 만들어가고 있다. 현대미술을 기반으로 치매 인지재활과 미술치료를 실시할 수 있도록 교재를 개발했다. 치매 환자와 보호자에게 현대미술을 친숙하게 알리고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올해는 10월 10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치매 환자와 보호자를 대상으로 한 일상예찬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5주에 걸쳐 매주 수요일에 진행된다. 빨래판·돼지저금통 같이 어르신이 쉽게 접했던 소품을 활용한 작품을 매개로 한다. 환자가 과거를 회상하고 기억을 되짚으면서 가족과 대화하는 과정이 곧 치료가 된다. 외출이 가능한 초기·중기 환자가 보호자와 함께 참여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참여하고 싶은 분은 대한치매학회나 지역 치매지원센터에 문의하면 된다.”

 -정부의 치매 정책이 장기적으로 효과를 내려면.

 “현재는 무차별적인 선별검사로 무조건 치매 검진율만 높이는 정책이 중심이 되고 있다. 이런 일괄적·전국적 정책이 아닌 소규모 농어촌 각각의 지역 특성에 맞는 검진 정책과 프로그램 지원이 필요하다. 사회와 떨어져 있는, 방치된 치매 고위험군을 찾아내고 이들을 대상으로 복지 혜택을 주는 게 맞다. 우울증을 앓거나 거동이 불편해 외출이 힘든 노인, 독거노인 등을 찾아가 치매 검진을 하고 이들이 실질적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정책으로의 개선이 필요하다.”

이민영 기자 lee.m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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