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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억 낙찰" 봉 내리치는 순간, 본인 작품 파쇄해버린 화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파쇄되는 뱅크시의 '풍선과 소녀'. [사진 뱅크시 홈페이지]

파쇄되는 뱅크시의 '풍선과 소녀'. [사진 뱅크시 홈페이지]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100만 파운드에 달하는 거액에 낙찰된 그라피티 예술가 뱅크시의 작품이 낙찰봉 소리가 들리자마자 저절로 파쇄됐다. 뱅크시는 액자 속에 파쇄 장치를 하는 동영상을 공개하며 자신이 벌인 일임을 알렸다.

가디언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5일(현지시간) 소더비의 현대미술 판매전에서 뱅크시의 ‘풍선과 소녀’는 전화로 참여한 경매자에게 104만 파운드(약 15억4000만원)에 낙찰됐다.

진행자가 낙찰봉을 내려친 순간 그림이 그려진 캔버스천이 액자 밑으로 내려오며 세로로 잘려나갔다. 소녀가 그려진 그림의 아랫부분은 완전히 파쇄됐고, 액자 안에는 붉은색 풍선이 담긴 그림의 윗부분만 남았다.

논란이 커지자 다음날 뱅크시는 액자에 파쇄기를 설치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을 공개했다. 그는 “몇 년 전, 그림이 경매에 나갈 것을 대비해 액자 안에 몰래 파쇄기를 설치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파괴하려는 충동은 곧 창조의 충동”이라는 피카소의 말을 인용했다.

뱅크시 작품 '멍청이'. [사진 뱅크시 홈페이지]

뱅크시 작품 '멍청이'. [사진 뱅크시 홈페이지]

그는 과거 자신의 작품을 통해 터무니없는 가격에 작품이 판매되는 경매 현장을 비꼬기도 했다. 경매되는 작품에는 ‘난 정말 너 같은 멍청이가 이런 쓰레기를 진짜로 살지 몰랐어’라고 적혀 있다.

영국 출신의 ‘얼굴 없는’ 거리의 화가 뱅크시는 기발한 유머 감각과 신랄한 현실 비판이 담긴 그라피티로 명성을 얻어왔다. 이번 그의 행보 역시 자신만의 방법으로 경매 시스템을 놀린 것으로 보인다. 소더비의 수석디렉터 앨릭스 브란크칙 역시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뱅크시에게 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뱅크시가 대영박물관에 몰래 전시한 작품. [AP=연합뉴스]

뱅크시가 대영박물관에 몰래 전시한 작품. [AP=연합뉴스]

그는 과거 대영박물관에 카트를 밀고 있는 원시인을 그린 벽돌 조각을 몰래 전시하거나 노숙자들이 모이는 곳의 벽에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를 도둑처럼 표현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영국의 브렉시트를 유럽연합 국기에서 별 한 개가 깨지는 모습으로 표현해 화제가 됐다.

유럽연합 국기에서 별 한개를 깨는 모습으로 '브렉시트'를 표현한 뱅크시의 작품. [EPA=연합뉴스]

유럽연합 국기에서 별 한개를 깨는 모습으로 '브렉시트'를 표현한 뱅크시의 작품. [EPA=연합뉴스]

작품에 손상이 가해진 만큼 일반적으로 구매자는 이를 취소할 수 있다. 그러나 뱅크시의 작품이라는 점, 미술계 역사상 희대의 장난이 더해진 작품이라는 점 등으로 인해 오히려 가치가 올라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소더비는 성명을 통해 “낙찰자와 얘기를 하고 있으며 낙찰자 역시 매우 놀랐다고 한다”면서 “다음 조치를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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