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카드수수료 인하, 되레 상인들 울려 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더,오래] 파이터치의 50+를 위한 경제학(3)

은퇴 후 퇴직금과 대출금으로 커피숍을 창업한 김 씨는 창업 6개월 만에 최저임금 인상 소식에 아르바이트 직원을 한 명을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중앙포토]

은퇴 후 퇴직금과 대출금으로 커피숍을 창업한 김 씨는 창업 6개월 만에 최저임금 인상 소식에 아르바이트 직원을 한 명을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중앙포토]

대기업에서 25년간 근무한 김 씨는 은퇴 후 일하는 기쁨을 누리겠다며 퇴직금과 대출금을 종잣돈으로 커피숍을 창업했다. 경영학을 전공한 김 씨에게 창업은 오랜 꿈이었고, 인생을 좀 더 주도적으로 살 수 있는 전환점이 되리라 기대했다.

커피숍은 유동인구가 많은 도심지역에 있어 마케팅보다는 원두의 맛과 품질을 차별화하는 게 핵심전략이었다. 원두는 아프리카와 남미에서 직접 수입했고, 고가의 바리스타 학원에 다니면서 직접 커피 만드는 법을 익혔으며, 자신만의 레시피를 연구했다.

창업 초기에는 아르바이트 직원 세 명을 고용해 스스로 개발한 레시피를 전수해 주었다. 바리스타와 캐셔 업무를 교대로 시키며 직무숙련도도 높였다. 적립쿠폰을 만들고 1+1행사도 기획하는 등의 판촉활동을 전개하자 손님이 늘어났고, 차츰 단골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적자를 면치 못했지만, 개점 후 반년 정도 지나자 매출이 늘었고 이익도 기대 이상으로 올렸다. 최저임금 수준인 아르바이트 직원들의 급여도 조만간 인상해야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창업 6개월 만에 청천벽력 같은 최저임금 인상 소식

그러던 어느 날 뉴스에서 최저임금을 두 자릿수로 인상한다는 정책이 발표됐다. 대기업 재무팀에서 익힌 솜씨로 인건비를 합리적으로 책정했던 김 씨에게 이 보도내용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아직 이익이 안정적으로 나지 않는 상황인데도 인상된 최저임금에 따른 인건비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연구원이 최근 503개 소상공인 사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월평균 인건비는 전체 운영비용인 735만원의 약 51.5%로 가장 큰 부담이 되는 비용이었다.

창업 초기 이익이 안정적으로 나지 않는 상황인 자영업자들에게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출처 서울연구원, 제작 유솔]

창업 초기 이익이 안정적으로 나지 않는 상황인 자영업자들에게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출처 서울연구원, 제작 유솔]

그래도 하루아침에 범법자가 될 수 없는 노릇. 김 씨는 아르바이트 직원 한 명을 내보내고 자신의 근로시간을 늘려 이 힘든 상황을 극복해보려고 했다. 그러자 가장 먼저 닥쳐온 문제는 일손 부족이었다. 넷이 하던 일을 셋이 하려니 커피를 만들 때 실수로 인한 손실이 컸고, 주문이 많이 밀려 커피 서비스가 지체됐다.

2교대 근무로 하루에 8시간씩 일하다가 더 오래 근무하니 피로가 누적돼 서비스 수준이 낮아지니 자연스레 이탈하는 손님이 생겨났다. 결국 커피숍은 매출이 감소하더니 결국 적자로 전환됐다.

최저임금 1만원이면 서비스 종사자 일자리 74만개 사라져

인천공항 제2터미널에 설치된 키오스크 메뉴판. 실제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자동화로 직원을 대신에 키오스크를 이용하는 곳이 많아지고 있다. [사진 아워홈]

인천공항 제2터미널에 설치된 키오스크 메뉴판. 실제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자동화로 직원을 대신에 키오스크를 이용하는 곳이 많아지고 있다. [사진 아워홈]

김 씨는 주문을 키오스크로 받는 특단의 조치를 감행하기에 이르렀다. 키오스크가 직원처럼 친절하진 않지만, 주문시간이 줄고 정확도가 높아졌다. 물론 키오스크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노인이나 장애인 손님은 불만을 표했지만.

가끔 키오스크가 고장이 나기도 했으나, 줄어든 주문시간 덕분에 매출은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커피숍 종업원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자동화로 사라질 확률이 높은 직업으로 꼽힌다. 파이터치연구원이 연구한 자료에 따르면 최저임금이 16.4% 인상되면 서비스 종사자 일자리가 약 31만개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최저임금이 1만원까지 인상되면 서비스 종사자 일자리는 무려 74만개나 감소할 수 있다.

김 씨는 정부는 소상공인의 최저임금 인상 부담을 줄이겠다며 올해 말 카드수수료 정책을 변경할 것이란 보도를 접했다. 정부의 의도는 소상공인의 비용부담을 줄이는 것이지만,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사업이 다시 나아진 요즘 카드수수료는 재료비나 인건비 부담에 비하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매출 증대에 도움이 되는 근본적인 정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드수수료 1만원 내리면 커피숍 매출 93만원 줄어

최저임금 인상으로 발생한 문제는 카드수수료 인하와 같은 미봉책이 아니라 바로 최저임금 정책 자체를 개선함으로써 해결해야 한다. [중앙포토]

최저임금 인상으로 발생한 문제는 카드수수료 인하와 같은 미봉책이 아니라 바로 최저임금 정책 자체를 개선함으로써 해결해야 한다. [중앙포토]

현재 카드수수료율 상한은 2007년 이전 4.5%에서 사업자 매출 규모에 따라 0.8~2.3%까지 떨어졌다. 이에 카드사는 부가서비스를 줄이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수수료를 더 줄인다면 카드사는 원가를 보전하기 위해 카드 연회비를 인상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파이터치연구원은 카드수수료를 구성하는 자금조달비용이 카드사용자에게 100% 전가되면 평균 8775원인 카드 연회비가 31만6620원으로 인상되지만, 카드 이용금액이 15조원, 카드수수료가 1조원이 각각 감소해 기업 전체 매출액이 93조원 감소한다고 예상했다. 다시 말해 카드수수료가 1만원 인하되는 대신 커피숍 매출이 무려 93만원이나 감소하는 것이다.

[출처 파이터치연구원, 제작 유솔]

[출처 파이터치연구원, 제작 유솔]

최저임금은 올해 16.4% 인상된 데 이어 내년엔 10.9% 오를 예정이다. 김 씨는 최저임금이 2020년 1만원까지 인상하겠다는 정부의 목표를 접하며, 이러다 조만간 나머지 두 명의 아르바이트 직원마저도 내보내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는 카드수수료 인하와 같은 미봉책이 아니라 바로 최저임금 정책 그 자체를 개선함으로써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570만명에 이르는 자영업자도 김 씨와 유사하거나 그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이들은 최근 고령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에서 은퇴자도 열심히 일하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정부가 정책을 펴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한원석 파이터치연구원 선임연구원 wshan@pi-touch.re.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