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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나대면 맞는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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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4호 35면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수업시간에 번쩍 손을 든 여학생의 사진이 있다. 대전시교육청이 9월 초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이다. ‘질문을 많이 하자’ 캠페인일까? 놀랍게도 “학교 폭력 예방법” 이미지다. 사진에 붙은 설명은 “지나치게 자기 뜻대로만 하려거나 잘난 척하지 않기”다. 한마디로 ‘나대면 맞는다’란 소리 아닌가. ‘학교폭력을 피해자 책임으로 돌리느냐’라는 비난이 빗발치면서 대전시교육청은 게시물을 내리고 사과문을 올렸다. 그럼에도, 손을 들고 질문, 혹은 발언 요청하는 것을 ‘주먹을 부르는 잘난 척’으로 보는 발상과 그런 발상을 교육청에서 했다는 게 여전히 충격적이다.

요즘은 노벨상 발표 시즌이고, ‘한국은 왜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없나’라는 논의가 쏟아지는 시즌이기도 하다. 물론 노벨상 수상자 수만이 학문연구 수준의 척도가 아니라는 지적도 맞다. 하지만 ‘노벨상 무(無)’와 더불어 언제나 지적되어온 한국의 교육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주입식으로 정답을 강요하고 질문을 장려하지 않는 조용한 교실이 얼마나 창의성과 다양성을 짓밟는지의 문제 말이다.

그 시작이 입시 위주 교육 때문인지, 더 거슬러 올라가 조선시대의 사문난적(斯文亂賊) 박해와 ‘모난 돌이 정 맞는’ 획일 집단주의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질문하고 자기 의견 말하는 학생이 ‘잘난 척’이 되는 한국 문화의 비극을 나는 여러 세대로부터 들어왔다. 50대 수필가 김상득은 고등학교 때 교사에게 “W는 모양이 더블브이인데 왜 더블유라고 읽나요?”라고 정말 궁금해서 물었다가, 화가 난 (대체 왜?) 교사에게 주먹으로 얼굴을 맞았다고 한다.

예전 기자 후배 하나는 외국에서 살다 고등학교 때 한국에 왔는데, 학원에서 시험 점수에 따라 체벌하겠다는 소리에 손을 들고 이의를 말했다가, 주변 아이들에게 ‘이상하고 나대는 애’로 찍혔다고 한다. “난 친구들이 ‘동감!’하며 함께 일어설 줄 알았는데 말이에요.” 이제 30대인 그 후배는 영국으로 건너가 뉴미디어 홍보 쪽으로 유명 기업들이 탐내는 인재가 되어 있다. 더 아랫세대는 나을까? 지금 20대인 기자 후배는 중학교 때 최악의 욕이 ‘나댄다’였다고 한다. 이런 문화에서 창의성이 뛰어난 인재는 둘째 치고, 스스로 사고하며 사회 부조리에 의문을 갖고 침묵하지 않는 자유민주사회 시민이나 될 수 있을까? 교육청까지 학교폭력 예방이랍시고 “잘난 척하지 않기”라는 나라에서?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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