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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교육’과 ‘위원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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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남중 기자 중앙일보
김남중 논설위원

김남중 논설위원

2005년 5월 교육계 사람들이 모인 점심식사 자리에서다. 설동근 당시 부산시 교육감이 두 시간 내내 수저도 들지 않은 채 열변을 토했다. 부산 교육 혁신 사례를 일일이 소개하면서다. 교실 수업을 뜯어고치고 학교 벽을 허무는 내용이 수두룩했다. ‘무학년제 수업’ ‘온라인 독서인증제’ ‘학부모 가르치미’ ‘이웃 학교 간 공동수업제’ ‘병원 학교’ 등이 그 일부다. 교사 출신으로 10년간 부산 교육을 이끈 설 교육감에게 ‘부산발 교육혁명’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닐 만했다. 그해 8월 노무현 대통령은 그에게 대통령 직속 교육혁신위원회(혁신위) 위원장 자리를 맡긴다. 부산발 교육혁명의 ‘전국화’를 주문한 셈이다.

설 교육감에 앞서 초대 혁신위원장을 맡은 이가 학교 교육 혁신의 롤모델로 꼽히는 거창고의 전성은 교장이다. 교육대통령을 자임한 노 대통령은 당선되자마자 그를 불렀다. 첫 대면 자리에서 전 교장은 네 시간 동안 ‘교육의 길’을 놓고 열변을 토했다. 시골학교 교장이 교육개혁의 지휘봉을 잡게 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주도한 교육 혁신은 부정적인 평가 쪽으로 기운다. “아무 것도 못 했으니까 평가할 게 없다”는 게 전 교장 술회다. 혁신위와 교육부 간 알력이 문제였다. 혁신위가 정책 아이디어를 내면 교육부가 발을 거는 식이었다. ‘교육부 슬림화’ ‘교육 분권’ 같은 장기 혁신안은 시도조차 안 됐고, 다음 정부로 이어지지도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전 교장에게 “선생의 말대로 교육개혁을 했으면 학생들이 좀 더 행복해졌을 텐데 그 방향으로 과감하게 나가지 못했다”고 했다.(『왜 학교는 불행한가』, 전성은)

위원회 성격의 교육정책 자문기구는 전두환 정부의 교육개혁심의회가 시초다. 이후 교육정책자문회의(노태우)-교육개혁위원회(김영삼)-새교육공동체위원회(김대중)-혁신위(노무현)-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이명박)로 이어졌다. ‘5·31 교육개혁’이란 족적을 남긴 교육개혁위원회를 빼면 제 기능들을 하지 못했다. 정치권에 휘둘리고 장식품에 불과했다는 평가다.

어제 국회 대정부질문에 데뷔한 유은혜 신임 교육부 장관의 취임 일성이 위원회 만들기다. 이번엔 ‘미래교육위원회’와 ‘국가교육위원회’다. 벌써부터 “또 위원회냐”는 소리가 들린다. 정권의 장식품 여부는 위원회 성격에 달렸다. ‘초정권적이고 독립적인 상시기구’로서의 국가교육위원회가 교육계의 숙원이다. 그래야 백년지대계가 가능한 까닭이다. 이는 ‘교육부 폐지’와 맞물린다. 위원회 만들기에 유 장관이 직을 걸지 지켜볼 일이다.

김남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