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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강수 논설위원이 간다

하루 한번 15분 면회…MB 구치소엔 측근, 朴앞엔 편지 모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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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조강수
조강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박근혜·이명박의 정반대 미결수 생활

지난 2일 서울구치소 앞 정문에서 시민단체 회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2일 서울구치소 앞 정문에서 시민단체 회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503과 716. ‘미결수’ 박근혜(66) 전 대통령과 이명박(77) 전 대통령의 수인번호다. 보수 정권 9년을 이끌어온 두 전직 대통령은 각각 서울구치소와 서울동부구치소에서 18개월, 6개월째 재판을 받으며 수감 생활 중이다. 김영대 서울구치소 총무과장은 지난 8월 인사 전까지만 해도 동부구치소 보안과장으로 근무했다. 그는 “MB(이명박 전 대통령)가 구속수감될 때부터 업무차 지켜봤는데 그 분은 정상적인 수형생활을 한다. 외부인들이 접견을 많이 오고 운동도 시간이 되면 늘 한다. 여기 와서 보니 BH(※교도관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이 약칭으로 불렀다)도 정해진 시간표를 따라 움직이고 교도관들이 얘기하면 받아들이는 점은 같다. 하지만 스타일은 정반대다. 외부인 접촉을 전혀 않고 있다. 그분 나름의 생각이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10여㎡ 넓이의 공간에 갇힌 두 사람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기 시간을 쓰고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의 미결수 생활을 더듬어 보았다.

구치소 면회 직접 신청했더니 #"잘 알면서 왜 그러세요” 거절 #유영하, "방학기 ‘바람의 파이터’ #고시공부할 때 재밌게 읽은 기억” #MB는 폭염 때 가장 힘들어 해 #딸과 옛 측근들 대부분 면회

“박근혜 전 대통령 면회하러 왔습니다.”

기자가 작성한 박근혜 전 대통령 면회 신청서

기자가 작성한 박근혜 전 대통령 면회 신청서

지난 2일 오전 경기 의왕의 서울구치소. 정·관·재계 고위인사들이 많이 수용돼 ‘범털집합소’로 불리는 곳이다. 민원실과 면회실에선 10~15분 간격으로 일반 면회가 줄줄이 진행되고 있었다. 안내 전광판에는 남성 수용자용 28개 면회실, 여성 수용자용 4개 면회실란에 면회 대상 재소자의 수인번호가 빨간색으로 점멸한다. 접견 신청서의 수용자(수형자) 번호란에 ‘503’을 적고 수용자 성명란에 ‘박근혜’를 쓴 뒤 신청서를 내밀었다. 조용히 서류를 받아든 여성 교도관이 미소를 짓더니 힐끗 쳐다본다. “잘 아시면서~”라고 하고는 신청서를 접어 돌려준다. 짐짓 모르는 척하며 ‘아니 왜요?’라고 묻자 “해당 수용자(박근혜)는 오래전에 모든 면회를 거부한다는 내용의 보고전(報告箋·교도소에서 쪽지로 적어 내는 양식)을 스스로 낸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런 경우가 종종 있느냐’는 질문에 “적지 않다”는 답이 돌아왔다. 면회 뿐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국정농단 사건 재판에서 구속기간 추가 연장에 항의해 ‘보이콧’을 선언한 이후 어떤 재판에도 출석하지 않고 있다. 정치적 재판이고 요식행위에 불과하다고 판단해서다. 지난주 대법원은 박 전 대통령의 구속기간을 2개월 더 연장했다. 이처럼 세상과 단절하고 지내다 보니 추측과 설이 나돈다. 지난달엔 ‘박 전 대통령이 식사도 운동도 하지 않고 몇달 째 독방에 칩거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유일한 소통 창구인 유영하 변호사를 3일 오전 서초동 남정법률사무소에서 만나 근황을 들었다.

서울구치소 민원실의 면회 안내 전광판에 면회 대상자의 빨간색 수인번호들이 점멸하고 있다.

서울구치소 민원실의 면회 안내 전광판에 면회 대상자의 빨간색 수인번호들이 점멸하고 있다.

지병인 목과 허리 통증이 심해져 밤잠을 설칠 때가 많다는데.
“재판 받으며 목과 허리 디스크가 악화돼 서울성모병원에 가서 주사 신경 치료를 받은 건 맞다. 꼼짝 못 하고 누워 있는 정도는 아니다. 남에게 폐 끼치는 성격이 아니다. 아파도 참고 말을 잘 안 하신다. 걷기 등 운동도 매일 하는지는 모르지만 중단한 건 아니다.”
가장 최근 접견은 언제 했나
“추석 전에 갔고 이틀 전에도 다녀왔다. 이번엔 추석 때 사건 관련해 궁금한 것 반입할 책 얘기 등을 나눴다.”
초창기에 만화책을 탐독한다는 얘기가 많았다. 어떤 책을 주로 읽나.
“내가 고시 공부할 때 재미있게 읽어서 편하게 보시라고 넣어드린 게 방학기의 ‘바람의 파이터’‘감격시대’였다. 대통령이 만화책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그보다 인문학, 미학, 심리학, 철학, 자연과학, 에세이 등 서적을 골고루 셀렉트(선정)해서 넣어드린다. 책을 꼼꼼하게 보시고 굉장히 독서량이 많다. 소설로는 이병주의 ‘지리산’, 박경리의 ‘토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삶을 그린 ‘대망’이 있다. 최근 감명 깊게 읽으셨다는 책이 있는데 제목을 공개하면 작가에게 나쁜 영향이 갈 수 있어서 공개 않겠다. 무게감 있고 울림이 있는 책 위주로 선정해 넣어드린다. 지금까지 총 400권 정도 된다. 구치소에 보유할 수 있는 책은 30권이다.”
작년이나 올해나 외부인 접견 ‘0’다. 면회 거부하는 이유는.
“제가 말씀드리긴 그렇다. 뵐 때마다 박 전 대통령이 대단하다고 느낀다. 이런 상황을 누가 견디겠나. 담대하게 견뎌주시는 게 오히려 감사하다.”
외부 소식을 듣는 다른 통로가 있나
“전국에서 하루 수십통씩 지지자들의 편지가 온다. 건강 걱정하는 얘기와 세상 돌아가는 소식이 담겨 있다. 그런 분들이 참 고맙다. 대통령의 도움을 받아 고위직에 오른 수많은 사람들은 힘들 때 침묵하고 외면했다. 그런데 손 한번 만지거나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국민들이 응원을 한다.”
18개월째 서울구치소 앞에서 천막농성중인 박정숙씨

18개월째 서울구치소 앞에서 천막농성중인 박정숙씨

서울구치소 정문 앞에는 천막이 하나 있고 박정숙(70)씨가 거기 살고 있다. 18개월 전 박 전 대통령 구속 직후 상경했다는 박씨는 “대구에서 분식집을 하다가 그날부로 접고 천막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며 “돈 한 푼 받은 게 없는 깨끗한 여성 대통령을 상대로 정치 보복 그만하고 석방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씨는 면회 사절, 재판 거부에 대해 “법치가 무너졌음을 온몸으로 항거하는 것”이라며 “지난 22일 집회 때 구치소 쪽을 향해 큰 소리로 ‘대통령님 힘내라’라고 외쳤는데 교도관들 말에 따르면 그렇게 소리치면 감방에까지 들린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서울동부구치소의 12층 꼭대기 감방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수용돼 있다. [조강수 기자]

서울동부구치소의 12층 꼭대기 감방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수용돼 있다. [조강수 기자]

곧바로 서울 문정동의 동부구치소로 향했다. 최신 건물인 동부구치소에선 김기춘 전 비서실장, 해양수산부 전직 장·차관과 문고리 3인방 중 이재만·안봉근 등이 수감 생활을 했다. 민원실로 들어가 접견 신청서에 ‘716번 이명박’을 써서 창구에 내밀었다. 이번에도 여성 교도관이 힐끗 쳐다본다. “이분 아는 분이세요? 면회하려면 비서분하고 상의를 해서 같이 오셔야 합니다. 오늘 이미 다른 분이 면회 다녀가셨고요.” 사전에 협의가 안 되면 어렵다는 거였다. MB는 수감 이후 검찰에서 불리한 진술을 한 측근들을 제외하고 정·관계 인사 및 가족들을 꾸준히 만나왔다.

기자가 작성한 이명박 전 대통령 면회 신청서

기자가 작성한 이명박 전 대통령 면회 신청서

지난 6개월간 감방 생활은 어땠을까. 가장 힘들었던 건 지난 여름 한 달간 지속된 폭염 때였다고 한다. 강훈 변호사는 “매일 오전 구치소를 찾아 1시간 30분 정도 접견해 왔다”며 “폭염기에 오전 5시 감방 온도가 섭씨 35~36도까지 올라가는 바람에 잠을 못 자 상당히 힘들어하셨다”고 전했다. 동부구치소는 12층짜리 빌딩 5개 동을 연결한 형태고 이 전 대통령은 12층 꼭대기 방에서 지낸다. 옥상 바로 아래라 복사열이 강하게 쬔다. 폭염 때 병사동 복도에는 에어컨이 설치됐다. 감방 안에 설치하면 반감이 있을 수 있으니 복도에 설치해 찬 공기가 감방 안으로 흘러 들어가게 했다. 직전 동부구치소 고위 인사는 “원래 MB는 고령에 환자라서 병사동 수용 대상이지만 특혜 시비 때문에 혜택을 보지 못하고 선풍기만으로 지냈다”고 말했다.

건강은 어떤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구치소 입소 후 몸무게가 7kg 정도 줄었다. 초창기엔 거의 잠을 못 자고 식사를 밥그릇의 3분의 1 정도밖에 안 비웠다. 우리 의무관이 검진해 보니 건강상태가 안 좋아 걱정된다고 했다. 미뤘던 서울대병원 건강검진을 받아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유도 했다. 그래서 지난 8월 재판 휴정기 때 예약하고 검진받았다. 폐와 기관지가 안 좋고 당뇨 질환에 혈압이 높았다. 가끔 식사를 잘 하시라고 권유하면 식사량이 늘긴 했지만 100% 비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
영치금으로 사 먹으면 되지 않는가
“재판받고 늦게 들어오면 밥때를 놓친다. 그럴 때를 대비해 구매물 몇 개 사놓았는데 컵라면 이런 거였다고 들었다.”
구매물품 가격표

구매물품 가격표

전직 대통령이 컵라면을 먹다니
“안타까운 대목이다. 재판은 1심 선고 전까지는 불구속을 원칙으로 하는 게 국격에 맞지 않나 싶다. 그러면 교도소·구치소 환경이 더 좋아질 텐데.”
특이 사항은 없었나
“놀라울 정도로 신앙심이 깊더라. 대부분의 시간을 성경을 보면서 소일했다. 처음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철저히 감시를 했다. 종교적 힘에 의지하는 분이니깐 극단적 선택은 안 하리라고 믿고 한 시름 놨다.”
운동은 어떻게 하나
“미결수는 독거할 경우 하루 1시간 혼자서 운동할 시간을 준다. 그 정도는 쭉 했다. 독거실 밖 20~30평대 실내 운동장에서 뱅뱅 도는 걷기나 12층 복도에 비치된 헬스용 자전거를 활용해 운동했다.”
면회는 정상적으로 했나
“미결수는 하루에 한 번 10분씩 허용이 된다. 일찍 오면 추가로 5분 인센티브를 준다. 영부인과 사위들은 한 번도 안 왔다. 딸 셋이 자주 면회를 오고 아들 시형씨는 1주일에 1번 정도 왔다. 이재오 의원 등 TV에 자주 나왔던 측근들은 한 번씩은 왔다 간 걸로 안다.”
최순실씨도 동부구치소에 수감 중 아닌가
“그렇다. 최씨가 이동할 때 엘리베이터를 타도 누구와 마주치지 않도록 무전기로 연락하며 철저히 관리·감독했다.”

교정 전문가들은 2000년대 초반에 비해 요즘은 수형 생활의 풍속도가 많이 달라졌다고 분석한다. 고위직 출신이라고 특혜를 바라던 시대는 지나갔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고위직 인사들이 들어오는 건 별로 걱정이 안 되는데 제일 힘든 게 조현병 환자들의 급증이라고 한다. 치료가 우선돼야 하는데 무조건 구속부터 시키니 들어오자마자 “헛것이 보인다”거나 “누가 나를 죽이려 한다”고 외치며 재소자들하고 싸움하기 일쑤라는 것이다.

교도관들 사이엔 경험에서 터득한 그 나름의 평가 기준도 있었다. “고위직 인사 중에 수형생활 잘한 사람은 나중에 꼭 재기에 성공한다. 박지원씨 등이 그랬다. 안하무인에 말 안 듣고 규칙 위반하고 특혜 바라던 분들은 출소 이후에 잊혀져갔다.” 교도소나 구치소는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교도관들은 그곳에서의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의 미래가 보인다고 입을 모았다.

글·사진=조강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