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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출신은 비밀… 가명 쓰는 위스키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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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5)

다양한 개성의 독립병입위스키들. [사진 김대영]

다양한 개성의 독립병입위스키들. [사진 김대영]

‘독립병입위스키(Independent bottle)’라는 게 있다. 병에 위스키 담는 걸 독립적으로 했단 뜻이다. 위스키 증류소가 직접 파는 위스키가 아니라, 스스로 브랜드를 가진 회사가 판매하는 위스키다. 증류소에서 다 숙성된 위스키를 통째로 사서 팔기도 하고, 갓 나온 위스키 스피릿(투명한 증류원액)을 담은 오크통을 사들여 자사 숙성고에서 오랜 세월 숙성시킨 다음 시중에 내놓기도 한다.

대부분의 독립병입위스키는 출신을 밝힌다. 어느 증류소 위스키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인기 있는 증류소 위스키는 비싸게 팔 수 있다. 그래서 독립병입위스키 회사끼리 인기 증류소 오크통 확보를 위한 경쟁이 벌어진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어떤 독립병입위스키들은 출신을 감추고 가명을 쓴다.

두 종류 위스키를 99대1 비율로 섞는 ‘티스푼 위스키’

세계에서 최초로 싱글몰트 위스키를 출시한 '윌리엄그랜트앤선즈'는 자사의 대표적인 싱글몰트 브랜드인 발베니(Balvenie)와 글렌피딕(Glenfiddich)을 지키고자 했다. 그래서 자사의 위스키를 사들인 독립병입회사가 판매할 때 1%씩 서로 다른 증류소 위스키를 섞도록 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번사이드(Burnsid)'와 '워드헤드(Wardhead)'다. 번사이드에는 99%의 발베니 위스키에 1%의 글렌피딕 위스키를, 워드헤드에는 99%의 글렌피딕 위스키에 1%의 발베니 위스키를 각각 섞는다.

싱글몰트 위스키 '글렌피딕'. 독립병입위스키로 발매될 땐 1%의 발베니 위스키를 섞어 '워드헤드(Wardhead)'란 이름의 블렌디드 몰트가 된다. [사진 김대영]

싱글몰트 위스키 '글렌피딕'. 독립병입위스키로 발매될 땐 1%의 발베니 위스키를 섞어 '워드헤드(Wardhead)'란 이름의 블렌디드 몰트가 된다. [사진 김대영]

이렇게 하면 ‘하나의 증류소에서 나온 위스키’로 상징되는 ‘싱글몰트 위스키’ 표기를 할 수 없다. ‘블렌디드(blended) 몰트’로 분류된다. 자사의 두 싱글몰트 브랜드(글렌피딕과 발베니)와의 경쟁을 자연스레 막는 효과를 낸다. 글렌모렌지(Glenmorangie) 증류소 위스키도 글렌모레이(Glenmoray) 증류소 위스키를 극소량 섞은 ‘웨스트포트(Westport)’라는 이름으로 독립병입 위스키가 발매된다.

이렇게 서로 다른 두 증류소의 위스키를 섞으면서 한 증류소 위스키가 지나치게 적은 경우 ‘티스푼(Tea spoon) 위스키’라고도 부른다. 티스푼 한 숟갈만큼 적은 양의 위스키를 섞었다는 뜻이다.

증류소 이름은 나중에…숫자로만 표기하는 ‘SMWS’

‘SMWS’라는 독립병입위스키 시리즈가 있다. SMWS는 ‘Scotch malt whisky society’의 줄임말인데, 이 위스키 협회가 직접 오크통을 선택해 위스키를 제조한다. 그런데 라벨에 증류소 이름은 찾을 수 없고, ‘72.49’와 같은 숫자만 쓰여 있다.

SMWS는 증류소를 알고 위스키를 마시면 맛에 대한 편견이 생길 거라고 봤다. 그래서 증류소마다 고유의 번호를 매겼다. 일단 편견 없이 마셔보고 정 궁금하면 어느 증류소인지 나중에 확인하라는 것이다. 소수점 앞의 숫자가 증류소 고유번호고, 소수점 뒷자리 숫자는 SMWS가 출시한 그 증류소의 몇 번째 위스키인지 알려준다.

사진 위에 '25.70'이라는 숫자가 있다. 25번 증류소인 로즈뱅크 증류소 위스키로 SMWS에서 70번째 발매한 위스키라는 의미다. [사진 김대영]

사진 위에 '25.70'이라는 숫자가 있다. 25번 증류소인 로즈뱅크 증류소 위스키로 SMWS에서 70번째 발매한 위스키라는 의미다. [사진 김대영]

위스키 업계에 헌신한 이에 대한 경의 표현 ‘윌리엄슨’

라프로익 증류소 위스키는 때로 ‘윌리엄슨(Williamson)’이라는 이름의 독립병입위스키로 판매된다. 이는 라프로익 증류소를 약 40년간 이끈 베시 윌리엄슨에 대한 경의를 표현한 것이다. 그는 20세기 스코틀랜드의 유일한 여성 위스키 증류소 경영자로, 라프로익의 부흥을 이끌었다. 특히 2차 세계대전 당시 증류소가 탄약저장고로 사용된 아픔을 이겨내고 사세를 키워 위스키 글로벌화에 성공했다.

위에 언급한 이름 외에도 위스키 가명은 많다. 낯선 이름에 담긴 이야기를 좇는 것도 위스키를 즐기는 방법이다.

김대영 중앙일보 일본매체팀 대리 kim.dae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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