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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도, 아이도 멋지게 키워낼 거예요"…무대 위 미혼모들

중앙일보

입력

1일 서울 명동역 CGV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청소년 미혼한부모 꿈, 현실과 무대'를 주제로 휴먼라이브러리 포럼이 열렸다. 맨 오른쪽부터 최소미(28)씨, 김명지(20)씨, 이샛별(21·가명)씨, 그리고 진행자 로리주희 서울시 성평등활동지원센터장. [사진 CJ나눔재단]

1일 서울 명동역 CGV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청소년 미혼한부모 꿈, 현실과 무대'를 주제로 휴먼라이브러리 포럼이 열렸다. 맨 오른쪽부터 최소미(28)씨, 김명지(20)씨, 이샛별(21·가명)씨, 그리고 진행자 로리주희 서울시 성평등활동지원센터장. [사진 CJ나눔재단]

2016년 11월 초, 임신테스트기 흰 바탕에 두 선이 선명히 물들었다. 임신 5주였다. 병원에서는 2주 후면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했다. 믿기 어려웠지만, 현실이었다.

편견 딛고 뮤지컬 무대 서는 미혼모들 #"더 많은 미혼모들이 세상 밖 나오길"

'학교 생활은 어떻게 하지? 부모님한테는 뭐라고 해? 내 인생은? 내 꿈은?'

이샛별(21·가명)씨는 두려웠다. "내가 책임지겠다"는 아이 아빠의 말에 출산을 결심했지만 그와 그의 가족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씨를 무시했고 이기적으로 변했다. 그렇게 아이 아빠와의 연은 끊어졌다.

"힘들게 이 세상에 태어난 제 아들은 지금 너무나도 예쁘게 자라주고 있습니다. 제일 중요한 진실은 나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는 것, 그래서 기죽을 이유도, 숨어 지내야 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었어요."

요즘 이씨는 본격적으로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첫 시작은 오는 18일부터 사흘 간 CJ아지트 대학로점에서 열리는 뮤지컬 무대에 주연배우로 서는 일이다. CJ나눔재단 후원으로 문화 콘텐츠 기획 제작사 벨라뮤즈와 미혼모협회 인트리가 제작 중인 창작 뮤지컬 '히시태그'(heshe태그)에서다.

히시태그에는 이씨를 포함, 청소년 미혼모 6명이 전문 배우들과 연기 호흡을 맞추고 일부는 스태프로 참여한다. 뮤지컬은 각각의 사연을 지닌 미혼모 5명의 이야기를 옴니버스식으로 전한다. 대본 내용은 모두 이들이 직접 겪은 경험담이라고 한다.

1일 서울 명동역 CGV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열린 '청소년 미혼한부모 꿈, 현실과 무대' 휴먼라이브러리 포럼에서 참석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CJ나눔재단]

1일 서울 명동역 CGV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열린 '청소년 미혼한부모 꿈, 현실과 무대' 휴먼라이브러리 포럼에서 참석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CJ나눔재단]

공연을 앞두고 1일 오후 서울 명동CGV 씨네라이브러리에서는 '청소년 미혼한부모 꿈, 현실과 무대'를 주제로 휴먼라이브러리 포럼이 열렸다. 이번 포럼을 주최한 CJ나눔재단은 청소년 미혼부·모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한 다양한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번 포럼과 뮤지컬도 그 일환이다. 휴먼라이브러리는 종이책 대신 '사람을 빌려주는 도서관'이다. '사람 책'의 책장을 넘기며 편견과 차별의 벽을 낮춘다는 취지다.

이날 포럼에는 이씨와 이번 뮤지컬을 준비하고 있는 미혼모 최소미(28)씨, 김명지(20)씨가 참석했다. 세 사람은 포럼에서 엄마로서의 삶과 각자 갖고 있는 꿈, 그리고 이번 뮤지컬 연습을 하면서 느낀 점 등을 가감 없이 털어놨다. 출산 전 패션디자이너가 꿈이었던 이씨는 이날 직접 디자인 한 구두를 신고 나와 관객들에게 자랑하기도 했다.

19살에 임신을 해 15개월 아이를 키우고 있는 김씨는 "처음 소식을 들은 주위의 반응이 '이제 명지 어떻게 해?' 등 대부분 측은함이었다. 내 인생은 아직 끝난 게 아닌데, 그런 시선들이 참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15개월 아들을 키우고 있는 김명지(20)씨. 그는 사회자가 '최근 가장 행복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묻자 "생계비를 아껴 모은 돈으로 얼마 전 아이 옷을 처음 사서 입혀준 일"이라고 말했다. [사진 CJ나눔재단]

15개월 아들을 키우고 있는 김명지(20)씨. 그는 사회자가 '최근 가장 행복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묻자 "생계비를 아껴 모은 돈으로 얼마 전 아이 옷을 처음 사서 입혀준 일"이라고 말했다. [사진 CJ나눔재단]

직장을 구하는 일 또한 곧잘 벽에 부딪혔다. 최씨는 "당장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하는데 직장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한 번은 '미혼모라고 자랑하지마, 그거 자랑 아니야'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정말 많이 속상했었다"고 말했다.

그만큼 뮤지컬 무대에 자신을 드러내는 건 큰 용기가 필요했다. 이씨는 "남들 앞에 나를 드러내는 것도, 그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도 처음엔 너무 싫었다. '지나가는 행인' 역할이라도 하라는 말에 연습실로 갔는데 다들 너무 열정적이고 분위기가 좋아 왠지 욕심이 났다"고 했다.

최씨는 "뮤지컬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 사귀는 일이 너무 어렵고 우울했는데 연습을 시작하면서 사람들과 만나 소통하는 게 즐거워졌다"며 "지금은 그냥 춤 추고 노래하는 이 시간이 너무 좋아 시간이 빨리가는 게 아쉬울 정도다"고 전했다.

이번 뮤지컬을 연출한 오세혁 감독은 "무대가 낯선 어머니 배우들과 이들의 삶이 낯선 전문 배우들끼리 연습하며 자주 하던 얘기는 '모르면 모른다고 하고 서로 배워나가자'였다"고 밝혔다. 그렇게 출연진과 스태프들은 조금씩 서로에 대한 편견을 걷어내고 있다.

김씨는 "내가 직접 겪었던 아픔들이 뮤지컬 소재로 사용됐는데, 이번 공연을 통해 그 아픔을 멋지게 극복해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며 "나처럼 한부모로 살아가는 많은 여성분들이 주눅들거나 움츠러들지 않고 당당히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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