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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수술 뒤 생존확률 7% 류현진···그를 구한 특급무기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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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2013년 LA 다저스와 6년 계약을 맺은 류현진. 올해가 계약 마지막 해다. [AP=연합뉴스]

2013년 LA 다저스와 6년 계약을 맺은 류현진. 올해가 계약 마지막 해다. [AP=연합뉴스]

6년.

호기롭게, 그리고 당당하게 세계 최고 무대에 뛰어든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31·LA 다저스)의 첫 번째 도전이 마무리됐다. 류현진은 지난 29일 열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전(6이닝 1실점)을 끝으로 올해 정규시즌 등판을 마쳤다. 다저스와 6년 계약이 끝나는 류현진에겐 이제 포스트시즌만 남았다.

2006년부터 2012년까지 7년간 한국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에서 뛰며 98승(52패)을 거둔 류현진은 2012년 말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경쟁 입찰)을 통해 다저스에 입단했다. 6시즌 동안 97경기에 등판한 그는 40승 28패, 평균자책점 3.20을 기록했다. 부상으로 신음한 2015년(등판기록 없음)과 2016년(1경기)을 제외하고, 4년 동안 연평균 10승을 올렸다.

전문가들은 류현진의 장점으로 강한 멘털과 뛰어난 적응력을 꼽는다. 류현진은 마운드 위에서 좀처럼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선수 생명이 끝날 뻔한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도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상대와 상황에 따라 수시로 전략을 달리하는 영리함도 갖췄다. 실수를 인정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마치 매년 새로운 무기를 장착해 강해지는 '변신 로봇' 같았다. 류현진이 다저스에서 보낸 파란만장했던 6년을 데이터를 통해 되돌아봤다.

2013년 : 포심 패스트볼(직구) + 체인지업  

2013년 4월 8일,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두 번째 등판이던 피츠버그 파이리츠전에서 6과 3분의 1이닝 2실점으로 데뷔 첫 승을 따냈다. 이후 승승장구한 류현진은 그해 192이닝을 던져 14승 8패, 평균자책점 3.00으로 시즌을 마쳤다. 2013년 류현진은 직구(54.2%)와 체인지업(22.3%)의 구사 비율이 76.5%였다.

미국 야구통계사이트 팬그래프닷컴 기준 류현진의 체인지업 구종 가치는 20.2로 콜 헤멀스(28.9)에 이어 전체 2위였다. 구종 가치는 투수가 특정 구종 덕분에 한 시즌 동안 얼마나 실점을 줄였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류현진은 체인지업이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건 제구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위력적인 직구 또한 체인지업을 빛나게 했다. 직구 구종 가치는 5.9로 전체 26위였다. 체인지업은 직구와 똑같은 투구폼으로 던지지만 구속이 시속 20㎞ 정도 차이가 난다. 두 구종의 구속 차이가 클수록 타자의 타이밍을 훔치기 쉽다.

2014년 : 고속 슬라이더  

2014년 류현진은 전반기에만 10승(5패)을 올리며 기세를 이어갔다. 하지만 체인지업이 2013년만 못했다. 2013년과 비교하면 직구 구속에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체인지업의 구속은 평균 시속 4㎞ 정도 빨라졌다. 2014년 류현진의 체인지업 피안타율은 2013년 0.164에서 0.321로 두 배 가까이 뛰었다.

류현진은 팀 동료 클레이턴 커쇼가 던지는 슬라이더를 배워 실전에서 활용했다. 시속 140㎞에 이르는 '고속 슬라이더'다. 슬라이더 평균 구속은 2013년 시속 132.7㎞에서 2014년 136.8㎞로 높아졌다. 슬라이더 구사 비율도 2% 정도 늘었다. 2014년 류현진은 152이닝 동안 홈런 8개만을 내줬는데 그해 메이저리그에서 150이닝 이상 던진 투수 가운데 3번째로 적었다. 슬라이더 피장타율은 0.250이었다.

2015~16년 : 부상  

 류현진은 부상으로 신음한 2015~16년을 제외한 4년간 연평균 10승을 기록했다. 구종 습득력이 남다른 류현진은 매년 새로운 구종을 추가하며 성장을 거듭했다. [AP=연합뉴스]

류현진은 부상으로 신음한 2015~16년을 제외한 4년간 연평균 10승을 기록했다. 구종 습득력이 남다른 류현진은 매년 새로운 구종을 추가하며 성장을 거듭했다. [AP=연합뉴스]

류현진은 한화에서 뛸 때 '금강불괴(金剛不壞)'로 통했다. '다이아몬드같이 강한 신체'라는 뜻이다. 한국에서 보낸 7년 동안 류현진은 연평균 181이닝을 던졌다. 미국으로 건너온 뒤에도 2년간 344이닝을 소화했다. 결국 탈이 났다. 류현진은 2015년 스프링캠프에서 왼 어깨 통증을 호소했고 그해 5월 수술대에 올랐다. 어깨 수술을 받은 투수가 정상적으로 다시 마운드에 오를 가능성은 7% 정도로 알려졌다. 2016년 7월, 부상 후 640일 만에 마운드에 올랐지만, 이번엔 팔꿈치가 고장났다.

2017년은 류현진에게 어느 때보다 중요했다. 시범경기부터 꾸준히 스피드와 이닝을 늘리며 조심스럽게 복귀를 준비했다. 그러나 류현진은 첫 네 차례 등판에서 홈런을 6개나 내주고 모두 패전투수가 됐다. 직구 스피드가 시속 3~4㎞ 정도 떨어졌고, 체인지업의 위력도 함께 감소했다. 2017년 류현진의 직구 구종 가치는 -21.6이었다.

2017년 : 커브, 커터

류현진을 구한 건 느린 커브(평균 시속 116.2㎞)였다. 지난해 류현진의 커브 피안타율은 0.158, 피장타율은 0.316이었다. 2015년 왼 어깨 수술 후 류현진은 직구의 힘과 스피드가 모두 떨어졌다. 구종 습득력이 남다른 류현진은 다양한 구종으로 이를 보완했다. 2017년 후반기 류현진은 컷패스트볼(커터)을 들고 나왔다.

2015년 사이영상을 탄 왼손 투수 댈러스 카이클(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커터를 TV로 보고 배운 류현진은 5월 말부터 실전에서 활용했다. 커터는 두 달 만에 특급 무기가 됐다. 커터와 슬라이더와 비슷하게 횡으로 휘는 구종이다. 슬라이더보다 빠르지만 휘는 폭은 작다. 타자가 직구로 생각하고 치면 빗맞기 쉬운 데다 슬라이더로 보면 타이밍이 늦다. 지난해 류현진은 25경기에서 5승 9패, 평균자책점 3.77을 올리며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커브와 커터의 덕을 봤다.

2018년 : 직구

류현진은 올 시즌을 앞두고 2가지 구종을 추가하겠다고 밝혔다. 첫 번째느 '회전이 많이 되는' 커브였다. 땅볼을 쉽게 유도할 수 있는 투심 패스트볼도 섞어 던졌다. 류현진은 올 시즌 개막하자마자 여섯 차례 등판에서 3승(무패)을 따내며 쾌조의 출발을 보였다.

하지만 지난 5월 3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전 도중 사타구니 부상을 입었다. 예정보다 재활 기간이 길어지면서 석 달 이상 마운드를 비웠다. 부상 복귀 이후에는 투구 패턴에 큰 변화를 줬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투심 대신 지난해 던지기 시작한 커터를 더 가다듬었다. 지난해보다 더 많이 휘고 더 많이 떨어지는 커터를 던진다. 오른손 타자를 상대로 2스트라이크 이후 결정구로 커터를 던지는 비중이 지난해 21%에서 29%로 높아졌다.

기존의 체인지업과 커브도 자유자재로 던졌다. 류현진이 실전에서 던질 수 있는 구종은 8개까지 늘어났다. 떨어지는 변화구에서 휘는 변화구까지 모두 갖췄다. 류현진은 부상 이후 직구 구사 비율을 20% 이상 줄였지만, 오히려 직구의 위력은 커졌다. 올해 직구 피안타율은 0.206으로 매우 낮았다.

다저스와 6년 3600만 달러(약 400억원) 계약 마지막 해인 올해 류현진은 15경기에 선발 등판해 7승 3패, 평균자책점 1.97로 활약했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FA(자유계약) 자격을 얻은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30개 구단과 자유롭게 계약할 수 있다. 부상 경력과 나이 탓에 장기 계약은 어렵겠지만, 올해 연봉(783만 달러) 이상의 단기 계약은 충분할 것이란 전망이다.

포스트시즌에서 활약이 더해진다면 주가는 더 오를 수 있다. 류현진은 2013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디비전시리즈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2014년 세인트루이스와의 디비전시리즈 등 포스트시즌 3경기에 등판해 1승, 평균자책점 2.81을 기록했다.

류현진은 최근 다저스에 남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현지에선 벌써 류현진에게 관심을 보이는 팀의 이름이 나오고 있다. 필라델피아 필리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시애틀 매리너스 등이다. 칼자루는 류현진이 쥐고 있다.

김원 기자, 배여운 데이터분석가 kim.won@joongang.co.kr
디자인 임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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