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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암호화폐 갈라파고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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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남미 대륙 에콰도르에서 1000㎞ 떨어진 갈라파고스는 살아 있는 자연사박물관이다. 1535년 스페인 성직자 토마스 데 베를랑가가 표류해 이곳을 처음 발견했다. 당시 많은 거북이 살고 있었는데 거북은 스페인어로 갈라파고스로 불렸다. 이 무인도의 명칭이 유래된 배경이다. 1835년 찰스 다윈은 말로만 듣던 갈라파고스에 도착해 모두 19개에 이르는 섬 군락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거북이든 새든 같은 종(種)끼리도 등딱지나 부리 모양이 섬마다 다르다는 점이었다. 다윈이 1859년 『종의 기원』을 펴내며 자연선택을 비롯한 생물 진화론에 불을 붙인 근거가 됐다.

이런 유래를 지닌 갈라파고스가 한국에서는 ‘극단적 규제’ 또는 ‘규제 공화국’의 대명사로 쓰이고 있다. 다른 나라에선 허용되지만 유독 한국에서는 사업을 가로막는 산업 규제가 많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이 일으킨 100대 글로벌 스타트업 중 57개가 한국에서는 규제와 충돌해 시작도 하지 못했을 정도다. 주요 선진국에서는 일상이 된 우버·에어비앤비는 물론이고 원격진료·핀테크·빅데이터 산업이 대표적이다. 4차 산업 시대에선 중국에도 무릎을 꿇게 된 배경이었다.

그 결과 국가 경쟁력이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지만 한국만의 갈라파고스 규제는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규제 혁신의 핵심 법안들인 ‘행정규제기본법’ ‘금융혁신지원법’ 등은 오래전에 제시됐지만 국회 문턱에 걸려 낮잠을 자고 있다. 그마나 지난달 20일 국회 본회의에서 ‘지역특구법’ ‘산업융합법’ ‘정보통신융합법’이 통과됐지만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시민단체의 반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특별법 역시 문재인 대통령이 19세기 영국의 자동차산업 발전을 가로막았던 ‘적기조례법’의 폐해를 빗대 읍소한 끝에야 국회를 통과할 수 있었다.

갈라파고스 규제의 끝판왕은 이달부터 암호화폐 거래소를 벤처 업종에서 제외하는 ‘벤처기업육성특별조치법’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거래소와 관련된 투기 과열과 유사수신, 해킹이나 자금세탁 등의 불법행위가 나타남에 따라 거래소를 벤처 업종에서 제외한다”고 밝혔다. 반면에 중기부는 5월부터 목욕탕·마사지업·노래방 등 18개 업종을 ‘벤처 제외 업종’에서 삭제했다. 목욕·마사지·노래방은 ‘신산업’이고, 암호화폐는 ‘도박’인 셈이다.

이는 전 세계가 블록체인 혁명에 휩싸였고 암호화폐가 그 중심에 있다는 점에서 벼룩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우겠다는 발상이다. 과잉 규제는 한국을 더 외진 갈라파고스로 만들 뿐이다.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