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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1순위 김윤석 “이번엔 액션도, 욕설도 없어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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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영화 ‘암수살인’에서 형사 김형민(김윤석 분)은 살인범의 믿기 힘든 자백을 실마리 삼아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살인사건과 피해자들을 추적한다. 왼쪽은 함께 현장 검증에 나선 검사(문정희 분). [사진 쇼박스]

영화 ‘암수살인’에서 형사 김형민(김윤석 분)은 살인범의 믿기 힘든 자백을 실마리 삼아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살인사건과 피해자들을 추적한다. 왼쪽은 함께 현장 검증에 나선 검사(문정희 분). [사진 쇼박스]

대한민국에서 형사 역할 가장 잘하는 배우로 형사들은 누굴 꼽을까. “일선 형사들한테 여쭤보니 ‘그 있잖아, 김윤석’ 하시더군요.” 3일 개봉하는 스릴러 영화 ‘암수살인’을 만든 김태균 감독의 말이다. 실화가 바탕인 이 영화에서 김윤석(50)은 살인죄로 수감 중인 강태오(주지훈 분)가 일곱 명의 추가 살인을 했다고 주장하자 이를 집요하게 파헤치는 형사 김형민 역을 맡았다.

실화 소재 스릴러 ‘암수살인’ 주연 #살인범이 고백한 추가 범죄 수사 #진실과 거짓 사이, 팽팽한 심리전 #“서브와 리시브, 테니스 게임 같아” #“역대 형사 중 가장 마음에 들었다” #김태균 감독 “호랑이를 닮은 눈빛”

‘범죄의 재구성’ ‘추격자’ ‘거북이 달린다’ ‘극비수사’ 등 여러 영화에서 전·현직 형사를 연기했던 그는 “형사 이전에 공무원에 가까운, 형사란 직업을 가진 안쓰러운 가장 역할을 주로 했다”면서 “멋지게 총을 쏘고 조폭을 물리치는 하드보일드 수사물보다는 홀로 후줄근하게 발로 뛰는 형사의 인간적인 모습에 끌린다. ‘암수살인’의 김형민은 지금껏 했던 형사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캐릭터”라 말했다.

이번 영화에서 그가 찾아 나서는 건 실종신고도, 시체도, 수사도 없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른바 암수살인(暗數殺人)의 피해자들이다. 영화는 여느 스릴러처럼 잔인하고 자극적인 범죄 묘사로 이목을 끌려하지 않는다. 그 대신 아무도 모르게 죽어간 누군가의 유골을 바라보며 “누굽니까, 당신. 누군지 알아야 원한이라도 풀어주지 않겠느냐”며 한탄하는 형사의 진심 어린 눈빛에 바짝 다가선다. 김태균 감독은 김윤석을 “호랑이를 닮은 눈빛 속에 이 형사만의 따뜻함을 표현할 수 있는 배우”라 했다.

개봉 전 만난 김윤석은 “탄탄한 시나리오에 매료됐다”며 “실제 이런 식으로 형사에게 자기만 아는 사건이 있다고 구슬리며 (영치금 따위를 뜯어내) 패가망신시키는 케이스가 존재한다고 한다. 그러니 김형민 형사는 정말 차가운 이성으로 수사를 해나갈 수밖에 없다. 기분 나쁘게 만들면 강태오가 입을 닫아버리니까 원하는 걸 쥐여준다. 겨우 단서 하나 얻어 추적해보면 거짓말인 때도 있다. 흔들리는 믿음을 형사라는 직업 소신으로 붙들어야 한다. 굉장히 유니크한 캐릭터”라고 했다.

‘암수살인’은 두 배우의 호연도 볼거리다. 왼쪽은 형사 역의 김윤석, 오른쪽은 살인범 역의 주지훈.

‘암수살인’은 두 배우의 호연도 볼거리다. 왼쪽은 형사 역의 김윤석, 오른쪽은 살인범 역의 주지훈.

기존 수사물과의 차별점도 짚었다. 김윤석은 “흔히 상업영화에선 정의의 철퇴를 내리치는 통쾌한 모습의 형사가 대다수지만, 이 형사는 다르다. 욕도 거의 쓰지 않고 셔츠와 재킷의 예의 갖춘 차림으로 사람들을 찾아다닌다”면서 “이 사람이 생각하는 사건 종결이란 범인 체포가 아니라 사건에 연관된 모든 피해자의 존재를 다 확인하고 나서”라고 했다. 그는 “요즘은 ‘범인 잡았다. 형 확정’ 하고 돌아서면 다 잊어버리는 빠른 시대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어떤 비극이 재발하지 않으려면 원인과 결과를 명확히 인식해야 하는데도 비극의 정점에서 표면적인 요인이 제거되면 끝난 것처럼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진정한 사건 종결을 향해 느리더라도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김형민 형사가 제겐 그 어떤 힘세고 싸움 잘하는 형사보다 멋있었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김 형사가 파출소로 강등당하고, 자비로 강태오의 영치금을 충당하면서까지 수사를 이어갈 수 있는 밑바탕엔 그가 부유한 집안 출신이란 설정이 있다. 이에 김윤석은 “일종의 핸디캡이다. 부자니까 저렇게 버티며 수사하지. 이렇게 치부할 수도 있잖나. 그런데 이 핸디캡이 김태균 감독에겐 이 이야기를 출발한 소신인 것 같았다”고 했다. “김형민은 그런 편견을 넘어서 자신과 아무런 관계없는 피해자를 찾기 위해 애쓴다. 남녀 고하를 막론하고 우리는 주위에 얼마나 관심을 두고 있느냐가 이 영화의 중요한 메시지”라고 강조했다.

거짓과 진실이 교묘하게 뒤섞인 자백을 두고 강태오와 김 형사가 벌이는 심리전은 긴장이 팽팽하다. 여섯 차례에 달하는 이 교도소 접견실 공방전은 두 배우가 가장 치열하게 집중한 장면이기도 했다. ‘추격자’에서 사이코패스 지영민(하정우 분)과 싸움을 UFC에 비유한 김윤석은 강태오와의 이번 접전을 테니스에 빗댔다. “강력한 서브를 넣으면 또 막아내고. 정말 격렬했다”면서 “매 장면 촬영감독과 장면의 설계도를 계속 얘기하며 촬영했지만,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발생한 이상한 에너지도 있었다”고 했다. 접견실에 들어선 주지훈이 커피믹스 봉지를 입으로 찢어낸 애드리브가 일례다. 김윤석은 “이로 끊을 줄은 몰라서 진짜 웃겼다. 네가 준 영치금으로 내가 이렇게 귀족같이 살고 있단 거들먹거림이 확 와 닿았다”면서 “주 배우가 굉장히 매력적인 연기자더라. 앞으로 더 ‘핫하게’ 영화작업을 할 것 같다”고 귀띔했다.

잠시 생각을 고르던 그가 실제 모델이 된 형사가 촬영장에 다녀간 얘기를 꺼냈다. “두 번 정도 조용히 와서 인사만 하고 가셨다. 대화를 나눠보진 못했지만, 이런 형사가 판타지가 아니라 실제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이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 굉장히 큰 힘이 됐다”며 말을 이었다. “형사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사회를 위한 파수꾼이 돼야 이같은 비극이 없겠죠. 방송 출연 잘 안 하시는 (연극 연출가) 김민기 선생님이 얼마 전 JTBC 뉴스룸에 나왔어요. 어떤 모습으로 남고 싶으냐는 질문에 ‘저는 뭐 함께 살아가는 늙은이죠’ 라시더군요. 저도 세상 속에 살아가며 자기 자리에서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려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이 영화는 제작과정에서 실제 피해자 유족의 동의를 받지 않은 점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를 지적하며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던 유족은 이후 제작사의 사과를 받고 “암수살인 범죄의 경각심을 제고한다는 제작 취지에 공감”을 표하며 소송을 취하했다. 영화에 다뤄진 또 다른 살인사건의 유족은 이에 앞서 “누구도 눈길 주지 않은 사건에 주목해 결국 밝혀내신 형사님 같은 분이 세상에 알려지길 바란다”며 상영 지지를 밝히기도 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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