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민의 77%가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북ㆍ미 수교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반인 54%는 주한미군의 일부 철수를 지지한다고 응답했다. 미국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CCGA, 시카고 카운슬)가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원을 받아 실시한 ‘연례 미국인 외교정책 여론조사’ 결과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만 "김정은과 사랑에 빠졌다"고 하는 게 아니라 미국인의 대북 인식이 지난해에 비해 크게 바뀐 것이다.
시카고 카운슬-KF 연례 여론조사 #77% '비핵화땐 미ㆍ북 수교' 지지, #북핵 중대 위협 75%→59% 급락 #거부땐 경제제재 더 조여야 77%, #북 공습 37%, 정권교체 25% 찬성
시카고 카운슬이 1일(현지시간)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합의를 할 경우 북·미 간 공식 외교관계 수립에 관한 질문에 77%가 지지한다, 18%는 반대한다고 답했다. 지지한다는 의견은 공화당 지지자가 82%로 민주당 지지자(75%)보다 많았다. 북한 핵 포기 시 미국이 경제ㆍ인도적 지원을 제공하는 방안에도 미국인의 54%는 지지한다고 밝혔고, 41%는 반대였다. 경제ㆍ인도적 지원엔 민주당 지지자에서 57%로 공화당 지지자(52%)보다 지지가 많았다.
같은 조건에서 주한미군의 일부 철수에 대한 질문에 과반인 54%가 지지, 41%가 반대했다. 공화ㆍ민주 양당 지지자는 일부 철수에 대한 지지가 53%로 같았고, 무당파(58%)에서 다소 높게 나타났다. 대신 주한미군 전면 철수엔 미국인 77%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화당 지지자는 81%, 민주당 지지자 77%가 반대했다. 대비태세에 영향을 미치는 한ㆍ미 연합훈련 취소 방안에 대해서도 반대가 51%로 찬성(44%)보다 우세했다.
미국인 과반이 북한의 비핵화에 합의할 경우 주한미군의 부분적 철수를 지지한다는 결과는 주한미군 부분 철수를 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어 주목된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입장을 여러 차례 공개 언급한 것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6월 12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싱가포르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회담 의제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일정 시점에선 주한미군 장병들을 집으로 데려올 수 있길 바란다”고 한 바 있다. 북ㆍ미 비핵화 외교 성과에 대한 기대도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올해 조사에서 북핵을 미국에 대한 중대 위협(critical threat)으로 인식하는 미국인 2017년 75%에서→59%로 16%포인트 적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북핵이 중대 위협이란 인식은 2015년 55%→2016년 60%→북한의 6차 핵실험과 대륙간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가 성공했던 지난해 75%까지 가파르게 상승했었다. 시카고 카운슬은 “6ㆍ12 싱가포르 합의 이후 북·미 간 긴장 완화가 미 여론에 반영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북핵은 여전히 국제테러리즘(66%)에 이어 미국에 대한 잠재적인 위협 2위를 기록했다.
북한이 비핵화를 거부할 경우엔 미국인은 대북 군사옵션보다 강력한 경제제재를 실행 가능한 방안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77%가 북한이 비핵화하지 않을 경우 더 가혹한 경제제재를 부과해야 한다고 답했지만 북한 핵 시설에 대한 공습에 찬성하는 의견은 37%에 그쳤다. 공습 찬성 의견은 공화당 지지자가 55%로 민주당(29%), 무당파(34%)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 북한 김정은 정권을 전복하기 위한 미군 투입을 지지하는 의견도 25%에 불과했다.
대신 북한이 더는 핵무기를 생산하지 않는 조건으로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수용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미국인 29%만이 지지했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ㆍ생산을 모두 인정하자는 미국인은 13%로 극소수였다.
미군 장기 주둔에 대한 지지도는 일본(65%), 독일(60%) 등 미국의 주요 동맹국 가운데 주한미군이 74%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70%)보다 4%포인트 올라간 역대 최고치다. 24%만 반대했다. 정치 성향별로는 공화당 지지자가 79%, 민주당(73%), 무소속(71%)보다 다소 높았다.
북한이 한국을 침공할 경우 64%가 미군을 활용해 도와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 같은 응답률은 일본이 공격받을 때와 같았다. 만약 태평양지역의 미군 기지를 공격할 경우엔 84%가 미군의 직접 대응에 찬성했다.
올해 시카고 카운슬 여론조사는 GfK 커스텀 리서치(GfK Custom Research)에 의뢰해 7월 12일부터 7월 31일까지 미 50개주 18세 이상 성인 2046명을 대상으로 온라인으로 실시했으며, 오차범위는 ±2.37%포인트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