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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의 '2등 전략'이 8위 추락을 만들었나

중앙일보

입력

스포츠에서 가정법은 부질없는 상상일 뿐이지만, 그래도 궁금하다. 올해 LG가 두산을 만나지 않았다면?

LG는 지난 30일 잠실 두산전에서 1-7로 대패했다. 올 시즌 두산을 만나 15전 15패, 지난해 기록까지 더하면 17연패다. 일찌감치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한 두산이 전력을 다해 싸우지 않았음에도 LG는 29·30일 두 경기를 처참하게 졌다. 경기가 끝난 뒤 고개를 숙인 채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는 LG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팬들도 거의 없었다.

프로야구 LG 선수들이 30일 두산전에서 패한 뒤 더그아웃으로 돌아가고 있다. 잠실=양광삼 기자

프로야구 LG 선수들이 30일 두산전에서 패한 뒤 더그아웃으로 돌아가고 있다. 잠실=양광삼 기자

이날 패배로 LG는 8위(65승1무74패)로 떨어졌다. 올해 LG 성적에서 두산과의 전적을 뺀다면 65승1무59패(0.524)가 된다. 넥센(0.525)와 4위 싸움을 벌일 수 있는 승률이다. 2017년 LG는 두산과 6승1무9패를 기록했다. 올해처럼 연전연패한 적은 없었다.

지난 2016년 LG 구단은 "과감한 세대교체를 통해 리빌딩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비공식적으로는 "두산처럼 (국내에서 가장 넓은) 잠실구장에 최적화한 야구를 하겠다"고 말했다. 당시 양상문 감독(현 LG 단장)은 철저하게 구단 방침을 따랐다. 라인업에 젊은 선수들을 대거 포함했고, '뛰는 야구'를 독려했다. 우승팀 두산의 장점을 흡수해 일단 상위권에 안착하려는, 이른바 '2등 전략'이다.

2017년에는 도루가 LG의 큰 화두였다. LG는 2017년 팀 도루 5위(77개)를 기록했다. 대신 도루 증가에 따른 손실이 너무 컸다. 10개 구단 중 LG는 최다 도루 실패(56개)를 기록했고, 도루 성공률은 9위(57.9%)였다. 마운드는 여전히 안정적이었으나 팀 득점은 9위(699점)에 그쳤다. LG가 균형을 잡지 못하는 사이 두산은 더 강해졌다. 타고투저 시대에 맞춰 두산의 도루는 감소 추세다. 두산의 수비는 10개 구단 중 가장 탄탄하고, 김재환·오재일이 이끄는 타선의 장타력도 상승했다. 1등이 되면 강점을 유지하면서 약점을 보완하는 전략을 쓰는데 두산이 이를 잘 이행했다.

지난 겨울 LG는 류중일 감독을 영입하고, 양상문 감독은 단장이 됐다. 프런트와 현장 모두에서 큰 폭의 변화가 있었지만, 기존 전략이 바뀌는 인사라고 볼 순 없다. 올해 LG는 도루가 다시 감소(70개·9위)했을 뿐 선수 기용이나 득점 방식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FA 김현수(4년 115억원)가 이끄는 타선이 시즌 초 힘을 내다 김현수가 부상으로 빠지나 무게감이 확 떨어졌다. 부상 선수들이 늘어나자 선수층이 얇은 LG는 속수무책이다. 그런 상황에서 'LG가 닮고자 했던' 두산을 만나면 약점이 더욱 두드러져 보인 것이다. 연패가 길어지면서 LG 선수단이 심리적으로 위축된 면도 크게 작용했다.

지난해 말 LG 사령탑이 된 류중일 감독(오른쪽)과 감독에서 물러난 양상문 단장. [중앙포토]

지난해 말 LG 사령탑이 된 류중일 감독(오른쪽)과 감독에서 물러난 양상문 단장. [중앙포토]

LG와 두산은 같은 연고지(서울), 같은 홈 구장(잠실구장)을 쓴다. 투자 의지는 LG가 더 높다. 우수 자원을 확보·육성할 수 있는 여건을 갖췄지만 수년째 실패하고 있다. 트레이드와 FA 영입, 신인 육성에서 단장과 감독의 역량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많은 베테랑들과 불화를 겪었다. '2등 전략'마저 실패에 가까워지고 있다. 두산의 진짜 강점은 '뛰는 야구'가 아니라 팀 내에서 협력과 경쟁이 치열하게 이뤄진다는 점이다. 양팀의 확연한 차이가 거기에 있다. 그 차이가 극단적으로 나타난 결과가 15전 15패라는 기록이다.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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