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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브렉시트 혼란 속 때이른 총선 경쟁…코빈 “대기업 매년 주식 1% 기금 내라"

중앙일보

입력

제러미 코빈 영국 노동당 대표 [EPA=연합뉴스]

제러미 코빈 영국 노동당 대표 [EPA=연합뉴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방안을 놓고 갈등에 휩싸인 영국의 여야가 때 이른 총선 경쟁을 벌이고 있다.

노동당 브렉시트 협상 실패시 내년 조기 총선 추진 #"대기업 기금으로 노동자 지원, 복지 재원 충당" # 좌파 본색에 메이 "외국인 주택 구매 세금 인상" # 법인세율 인하 등 보수당 친기업 정책으로 맞불 #

 야당인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는 테리사 메이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 정부가 브렉시트 협상에 차질을 빚을 경우 내년에 조기 총선을 실시하자며 좌파 색채가 뚜렷한 집권 청사진을 발표했다. 그러자 보수당에선 “코빈을 따라가선 코빈을 누를 수 없다"며 친기업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코빈 대표는 지난 26일(현지시간) 리버풀에서 열린 전당대회 연설에서 “메이 정부가 합리적인 브렉시트 협상을 해내지 못하거나 의회에서 협상안이 부결되면 2022년 실시 예정인 총선을 앞당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풍력과 태양열 발전 등 재생 에너지 분야에 투자해 40만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공약했다. 복지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집을 한 채 이상 소유한 이들에게 세금을 부과하겠다고도 밝혔다.

집권 보수당의 전당대회가 열린 버밍엄에서 브렉시트 반대 집회가 벌어졌다. [AP=연합뉴스]

집권 보수당의 전당대회가 열린 버밍엄에서 브렉시트 반대 집회가 벌어졌다. [AP=연합뉴스]

 좌파 성향이 뚜렷한 정책은 섀도 내각에서 재무장관을 맡은 존 맥도넬 의원이 선보였다. 그는 노동당이 집권하면 직원이 250명 이상인 기업은 의무적으로 주식의 1%를 매년 기금으로 적립하게 하겠다고 밝혔다. 전체 주식의 최대 10%까지 기금을 조성한 뒤 매년 근로자 일 인당 500파운드 상당의 주식에서 발생하는 이윤을 지급하고, 나머지는 공공 서비스와 복지 비용에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맥도넬 의원은 “영국 민간 근로 인력의 40%에 달하는 1170만명가량이 이 제도의 혜택을 볼 것"이라며 “노동당 집권 5년 동안 공공 서비스와 복지에 투입되는 재원만 연간 21억 파운드(약 3조429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동당은 근로자의 기업 이사회 참여도 보장하기로 했다.

 부동산 보유세와 기업이 내놓는 기금 등을 바탕으로 2~4세 아동에게 주당 30시간의 무료 보육 서비스를 약속했다. 이에 더해 추가 30시간 보육을 저소득층에게 무료로, 나머지 대상에게 시간당 4파운드 이내에서 제공하겠다고 했다. 민영화한 수도와 철도, 에너지 및 우편 산업을 국유화로 되돌리겠다고도 밝혔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AP=연합뉴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AP=연합뉴스]

 지난해 메이 총리가 주도해 실시한 조기 총선에서 코빈의 좌파 정책이 인기를 끌면서 과반 확보에 실패한 보수당은 노동당의 선전 포고에 긴장했다.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를 실행하는 것만으로는 다음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며 대응책을 공개했다. 메이는 30일 버밍엄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영국에서 세금을 내지 않는 외국인들이 주택을 구매할 경우 높은 세금을 부과해 망가진 주택 시장을 회복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영국에서 부동산을 구매할 때 일정 금액 이상이면 4%가 넘는 인지세를 납부하는 등 조건에 따라 세금을 내고 있다. 메이 총리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이 세율을 1~3% 인상해 고가 주택이 시장에 많이 나오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세율 인상으로 확보한 재원은 집이 없는 계층을 위한 주택 제공에 쓰겠다는 구상이다.

 선데이 익스프레스에 따르면 호주와 싱가포르 등이 이런 정책을 적용 중이다. 요크대의 조사 결과 2014~2016년 런던의 새집 10채 중 하나는 비거주자가 구매했다.

 메이 총리는 또 총선이 예정된 2020년에 ‘영국 축제’를 개최하겠다고 했다. 국가 차원의 축제를 1951년 이후 70년 만에 열어 수입억파운드 규모의 시장을 만들겠다는 포부다.

 메이 총리는 최근 미국 뉴욕을 방문한 자리에서 브렉시트 이후 현행 19%인 법인세율을 17%로 낮추겠다며 “영국을 전 세계에서 가장 기업 친화적인 경제로 만들겠다"고 소개했다. 더타임스는 영국이 싱가포르 같은 저세율 국가로 탈바꿈하겠다는 신호라고 풀이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에게 공개적으로 반기를 든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 [AP=연합뉴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에게 공개적으로 반기를 든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 [AP=연합뉴스]

 하지만 코빈에 대한 대응으로 부족하다는 지적이 당내에서 나왔다. 샘 기마 대학 담당 장관은 잡지 기고에서 “보수당이 영국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한 담론을 노동당에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며 “보수당은 기업을 비판하기 위해 노동당의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비쳐졌고, 오히려 기업에 더 심하게 대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코빈을 이기려면 코빈을따라 해선 안 된다"며 “자유 시장과 자본주의를 위한 정당이라는 점이 울려 퍼지게 하지 못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협상안에 대해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 등이 공개 비판에 나서는 등 보수당 내에선 차기 총리직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도 이미 불이 붙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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