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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퍼레이드 대신 싸이 공연…국군의날 70주년 '이브닝 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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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현장에서] 

공군 곡예비행팀 블랙이글스가 지난달 27일 서울 상공에서 ‘제70주년 국군의 날’ 행사 사전훈련을 하고 있다. 행사 당일인 오늘(1일) 비행은 오후 6시20분부터 약 20분간 진행될 예정이다. [뉴시스]

공군 곡예비행팀 블랙이글스가 지난달 27일 서울 상공에서 ‘제70주년 국군의 날’ 행사 사전훈련을 하고 있다. 행사 당일인 오늘(1일) 비행은 오후 6시20분부터 약 20분간 진행될 예정이다. [뉴시스]

국방부가 1일 70주년을 맞는 올해 국군의 날 기념식 축하공연에 가수 싸이와 걸그룹을 부른다. 국방부는 “국군의 날 기념식 본행사에서 연예인 축하공연이 있는 건 올해가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또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서울 도심에서 야간 에어쇼를 처음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군을 축하하는 70주년 잔치치고는 너무 소극적이지 않냐는 말들이 군 안팎에서 나온다. 국군의 날 하이라이트인 시가행진이 이번에 빠졌기 때문이다. 2013년 국군의 날 행사단장을 지낸 권태오 전 수도군단장은 “70주년이면 군으로선 의미가 있는 해인데, 공연과 볼거리 위주로 기념식을 기획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국방부 “장병들이 고생 많이 해” #5년에 한 번씩 열리던 행진 없애 #프랑스·영국은 매년 군 시가행진 #“남북관계 고려 행사 축소” 지적도

군은 5년에 한 번씩 남대문·광화문 또는 테헤란로에서 병력과 탱크 등 장비를 동원해 국군의 날에 시가행진을 하고 있다. 가장 최근 시가행진은 2013년에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 때인 2003년에도 남대문에서 광화문을 거쳐 서대문, 동대문에 이르는 도심에서 국산 전차와 미사일이 줄을 맞춰 행진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국군의 날 행사 때마다 장병들이 시가행진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는데, 올해는 장병들이 주인공으로 축하받는 행사로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가행진은 장병들을 고되게 하지만 동시에 국민이 군을 직접 사열하면서 군에 무한 신뢰를 보낸다는 의미 역시 있다. 군의 가치와 문화를 연구한 김진형 전 합참 전략부장은 “군사 퍼레이드는 군이 국민에게 직접 나라를 지키는 준비 태세를 보여주면서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직접 느끼는 자리”라며 “다만 매년 시가행진을 치르는 게 번잡하고 예산도 들기 때문에 5년에 한 번 정도씩 하는 걸로 정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도심 시가행진은 군국주의나 독재의 잔재가 아니다. 민주주의 역사가 오랜 나라에서도 흔히 하는 행사다. 매년 7월 14일 바스티유 데이(프랑스 혁명기념일) 때 프랑스 수도 파리에선 대대적인 군사 퍼레이드가 열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퍼레이드를 직접 보고 감명을 받았는지 “우리도 워싱턴DC에서 저런 걸(시가행진) 하자”고 나섰다가 무산된 적이 있다. 벨기에군도 올해 7월 21일 국경일 때 수도 브뤼셀에서 기갑장비를 선보이는 시가행진을 했다. 핀란드는 6월 4일 핀란드 국군의 날에, 스웨덴은 6월 6일 국경일에 각각 수도 헬싱키와 스톡홀름에서 군대의 행진을 볼 수 있다. 매년 6월 마지막 토요일은 영국판 국군의 날이다. 이날 현역과 예비역들이 런던에서 행진하며, 관광객들이 이를 보러 몰려든다.

미국 헤리티지 파운데이션의 제임스 캐러패노 연구원은 “민주국가에선 시민이 군대와 자유를 수호하는 군대의 임무에 대해 자랑스러워하기 때문에 시가행진을 한다”고 설명했다. 공산권 국가나 권위주의 국가의 열병식과는 성격이 다른 점을 분명히 짚은 대목이다.

국방부는 올해 국군의 날 행사를 적극 설명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일부 오해가 있지만 올해 행사는 내용상으로 충실하다”며 “기념식에 앞서 해외에서 돌아온 국군 유해 64구의 봉환식과 현역 장병과 참전용사들과의 오찬 등 국군의 날 의미를 되살리는 행사가 예정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엔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완화 국면에서 정부가 남북관계를 염두에 두고 국군의 날 행사를 줄인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다. 김 전 부장은 “국방부가 올해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연예인을 동원한 흥겨운 잔치라는 점 말고 어떤 메시지를 보여주려는 것인지 솔직히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이철재·이근평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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