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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둥거리느니 바둑이나 두어라" 공자가 말한 뜻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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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오래] 정수현의 세상사 바둑 한판 (11)

사람은 기계처럼 일만 할 수는 없다. 특히 시니어에겐 여가를 즐겁게 보내는 것이 행복한 삶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사진 pixabay]

사람은 기계처럼 일만 할 수는 없다. 특히 시니어에겐 여가를 즐겁게 보내는 것이 행복한 삶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사진 pixabay]

잘 놀아야 성공한다. 어떤 놀이연구가가 한 말이다. 일자리나 경제를 생각하는 입장에서 보면 한가로운 소리로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은 기계처럼 일만 할 수는 없다. 적당히 놀면서 재충전을 해야 한다. 특히 시니어에겐 여가를 즐겁게 보내는 것이 행복한 삶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취미로 하는 놀이는 즐거움을 준다. 노동과는 달리 누구나 순수하게 놀이에 몰입할 수 있다. 일은 돈과 같은 외적 보상을 위해 하기 때문에 그 자체가 즐거움을 주지는 못한다. 물론 워크홀릭처럼 일에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외적인 보상이 없이 그냥 일하라고 한다면 그렇게 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놀이에서 얻는 몰입의 즐거움 

일에서 얻을 수 없는 순수한 즐거움을 우리는 놀이에서 얻는다. 등산이나 음악감상, 게임 등을 취미로 할 때 큰 행복감을 느낀다. 바둑팬은 바둑을 두는 시간이 그 어떤 때보다 즐거울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를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흐뭇해한다.

1895년 외국에 최초로 소개한 '한국의 놀이' 바둑. 조선말 풍속화가 김준근 그림. 옛 선비들은 바둑을 '난가'나 '오로삼매'라고 불렀다. 둘 다 바둑이 삼매경에 빠지게 할 만큼 재미있음을 암시한다. [중앙포토]

1895년 외국에 최초로 소개한 '한국의 놀이' 바둑. 조선말 풍속화가 김준근 그림. 옛 선비들은 바둑을 '난가'나 '오로삼매'라고 불렀다. 둘 다 바둑이 삼매경에 빠지게 할 만큼 재미있음을 암시한다. [중앙포토]

놀이의 즐거움은 바둑의 별칭에 잘 나타나 있다. 옛 선비들은 바둑을 ‘난가’나 ‘오로삼매’라고 불렀다. 난가(爛柯)는 썩은 도낏자루라는 뜻이다.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을 생각하면 바둑을 난가라고 부른 이유를 알 것이다. 오로삼매(烏鷺三昧)는 바둑판에서 벌이는 흑백의 싸움이 삼매경에 들게 한다는 뜻이다. 둘 다 바둑이 삼매경에 빠지게 할 만큼 재미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취미는 삼매경, 즉 몰입의 경지에 들도록 한다. 이 삼매경이 인생에서 중요한 경험이다. 『몰입의 즐거움』을 쓴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이 큰 행복감을 준다고 했다. 몰입은 마치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가는 느낌이나, 물이 흐르는 것처럼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행동이 나오는 상태를 말한다.

삼매경은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걱정거리를 잊어버리게 하니 당연히 행복할 것이다. 삶이 무미건조해지기 쉬운 시니어는 이런 무아지경을 종종 체험할 필요가 있다. 물론 어린 세대나 직장인도 이런 경험을 해야 한다.

취미 삼매경을 얘기했는데, 모든 취미가 긍정적인 효과를 주는 것은 아니다. 취미란 흔히 ‘건전한 취미’를 강조한다. 불건전한 취미를 가지면 행복감이나 재충전의 시간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빼앗아갈 수 있다. 이런 취미에 몰입할 때 우리는 ‘중독’이라고 한다.

삶이 무미건조해지기 쉬운 시니어에게 취미 삼매경은 스트레스를 날리고 걱정을 잊게 해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취미가 긍정적인 효과를 주는 것은 아니다. 불건전한 취미에 중독되면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중앙포토]

삶이 무미건조해지기 쉬운 시니어에게 취미 삼매경은 스트레스를 날리고 걱정을 잊게 해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취미가 긍정적인 효과를 주는 것은 아니다. 불건전한 취미에 중독되면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중앙포토]

불건전한 취미로는 예로부터 주색잡기를 꼽았다. 주색잡기란 술과 색, 도박을 가리킨다. 이런 취미에 탐닉하면 건강을 해치거나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많다. 알코올중독이나 도박중독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을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본다. 성적 일탈로 사회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것에 중독되면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이것은 누구나 아는 바지만, 많은 사람이 이런 취미에 빠져든다. 아마도 인간의 본능에 영합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유학의 비조인 공자는 ‘소인한거위불선’이라고 했다. 소인배는 한가하면 못된 짓을 한다는 뜻이다. 시간이 나면 여가를 선용하기보다 불건전한 취미에의 유혹을 느끼기 쉽다는 것이다. 공자는 빈둥빈둥 노는 무위도식도 부정적으로 보았던 것 같다. “밥만 먹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바둑이나 장기라도 두어라” 라는 어록을 남겼다. 이 말은 시니어들에게 의미심장한 조언으로 보인다.

바둑으로 인간관계를 돈독하게 

왼쪽부터 이창호, 이세돌, 박영훈, 황진형. 넷마블의 주장 박영훈이 웃음을 터뜨리며 신민준-이춘규의 대국을 검토하고 있다. 좋은 취미는 돈독한 인간관계를 형성해 주는 역할을 한다. 친구와 함께 건전하게 즐길 수 있는 취미를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사진제공=한국기원]

왼쪽부터 이창호, 이세돌, 박영훈, 황진형. 넷마블의 주장 박영훈이 웃음을 터뜨리며 신민준-이춘규의 대국을 검토하고 있다. 좋은 취미는 돈독한 인간관계를 형성해 주는 역할을 한다. 친구와 함께 건전하게 즐길 수 있는 취미를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사진제공=한국기원]

행복한 삶을 위해서 놀이의 즐거움을 종종 체험해 보자. 칙센트미하이의 주장처럼 몰입의 경지를 체험하는 것은 색다른 행복감을 가져다준다. 놀이의 즐거움에 도취해 무아지경을 경험한다면 그것만으로도 황홀하지 않은가.

또한 좋은 취미는 돈독한 인간관계를 형성해 주는 역할도 한다. 시니어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취미를 매개로 한 만남이 가장 끈끈하다. 같이 놀이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친구가 가장 정겹게 느껴지는 법이다.

건전하게 즐길 수 있는 취미를 최소한 두 가지는 갖도록 하자. 동료와 함께 삼매경에 푹 빠질 수 있는 취미라면 더욱더 좋을 것이다.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shjeong@m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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