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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 실수로 돈 더 받았다가 돌려주지 않은 70대 '무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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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은행 직원의 실수로 돈을 더 받아갔다가 돌려주지 않은 경우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 "사기죄에 고의성 성립 하지 않아" #당시엔 40만원 더 받은 사실 몰랐기 때문

대구지법 제4형사부(부장판사 서영애)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A씨(74)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지난 21일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지난 1월 중순 1만원권 10장을 5만원권 2장으로 바꾸기 위해 경북 포항시 남구의 한 은행을 찾았다. 돈을 바꾸는 과정에서 은행 창구 직원이 실수로 A씨에게 5만원권 10장을 내줬다. A씨는 40만원을 돌려주지 않았고 은행 직원은 그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대구지법 포항지원에서는 지난 5월 A씨에게 벌금형 100만원을 선고했다. A씨는 "돈을 받을 때는 더 받은 줄 몰랐다"며 항소했다.

대구 수성구 대구지방법원 전경. 대구=김정석기자

대구 수성구 대구지방법원 전경. 대구=김정석기자

이날 원심을 파기한 재판부는 "피고인이 고령임을 고려하면 그가 은행 직원을 신뢰해 별다른 생각 없이 은행 직원이 내어주는 돈을 받았을 뿐, 초과 지급된 사실을 알면서 받은 것이 아니기에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A씨의 사기죄에 고의성이 성립하려면 은행 직원으로부터 돈을 받기 전이나 받는 순간에 초과 지급 사실을 인식하고 있어야 하는데, 돈을 받은 이후에 초과 지급 사실을 인식했기에 사기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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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재판부는 "직원이 준 돈을 그대로 받고 돌려주지 않은 점은 점유이탈물횡령죄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형법 360조에서는 타인의 물건을 주웠을 경우 돌려주지 않는 등 타인의 점유를 이탈한 재물을 횡령하는 범죄를 점유이탈물횡령죄로 규정한다.

또 재판부는 "사기 범행의 피해자가 정확히는 은행 직원이 아니라 돈의 실제 소유자인 은행이 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다만 무죄를 선고했기에 실제 피해자가 누구인지는 결론에 영향을 주지 않아 이를 문제 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대구지법 관계자는 "사기 혐의가 무죄라는 건 형사범죄로 처벌이 어렵다는 취지일 뿐"이라며 "민사상으로 부당이득반환청구는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부당이득반환청구 소송은 법률상 원인 없이 이득을 취한 것에 대한 반환을 청구하는 소송이다.

해당 은행 관계자는 "우리 지점에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몰랐다"며 "창구 직원들이 돈을 실수로 초과 지급한 경우에 인사고과 등의 불이익이 두려워 은행에 알리지 않고 자신의 돈으로 메꾸고 나중에 받으려 하는데,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대구=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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