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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열 2위 국회의장의 수난사···"바지의장" "X개 훈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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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철 의원을 이석기와 비교하는 게 말이 됩니까.”

27일 오전 국회의사당 3층. 문희상 국회의장을 만나고 나온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잔뜩 화가 난 듯 얼굴을 붉혔다.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가운데) 등이 27일 오전 국회에서 심 의원실 압수수색 등과 관련해 문희상 국회의장을 항의 방문 한 뒤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가운데) 등이 27일 오전 국회에서 심 의원실 압수수색 등과 관련해 문희상 국회의장을 항의 방문 한 뒤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같은 당 심재철 의원실에 대한 검찰의 압수 수색을 항의하기 위해 국회의장실을 방문했는데, 문 의장이 예로 든 게 하필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이었다.

한국당은 강하게 반발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항의방문 후 기자들에게 “문 의장이 망언을 했다. 국가를 전복하기 위한 음모 혐의로 압수 수색을 당한 것과 국정감사를 앞둔 의정활동의 일환을 같이 비교했다는 것은 큰 실수”라고 비판했다. “무능한 문희상 의장은 사퇴하라”는 구호도 나왔다.

앞서 검찰은 지난 21일 ‘비공개 예산정보 열람 및 유출’ 혐의로 심재철 의원실을 압수 수색을 했다. 이후 한국당은 “야당 탄압”이라고 반발하며, 이를 용인해 준 문 의장까지 싸잡아 비난해왔다.

이날 결국 문 의장은 입장문을 냈다. “심재철 의원실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영장 집행과 관련해 국회의장으로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히면서 한국당의 반발이 잠시나마 누그러졌다. 문 의장 입장에선 수난의 하루였던 셈이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국회 개원 70주년 단체 기념사진 촬영을 위해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앞을 지나 자리로 향하고 있다. [중앙포토]

문희상 국회의장이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국회 개원 70주년 단체 기념사진 촬영을 위해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앞을 지나 자리로 향하고 있다. [중앙포토]

직권상정 때마다 야당의 파상공세  

국회의장의 수난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국회를 이끄는 수장(임기 2년)이자 대통령 다음으로 의전 서열 2위지만, 때마다 공격의 대상이 되어왔다.

집권당(다수당)에서 국회의장을 자주 맡다 보니, 야당의 공격을 많이 받았다. 특히 쟁점 법안의 ‘본회의 직권상정’ 등 국회 의사일정 및 진행에 관한 것이 많았다.

2009년 야당이었던 민주당 의원들은 미디어법 강행처리와 관련해 김형오 의장(한나라당 출신)을 항의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헌법재판소가 미디어법 처리 과정에 절차적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하자, 면전에서 사퇴를 요구했다.

▶홍영표 민주당 의원=“절차상 위법이 있을 시 사퇴한다고 했는데, 해야겠습니다.”
▶김형오 국회의장=“제 신상에 관해 얘기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이강래 민주당 원내대표=“책임없이 있으려면 왜 합니까. 월급이 탐납니까.”
▶김 의장=“그런 식으로 국회의장에게 하면 안 됩니다.”

 의사봉을 두드리는 김형오 국회의장 [중앙포토]

의사봉을 두드리는 김형오 국회의장 [중앙포토]

“무슨 X개 훈련시키나” 거친 말 듣기도

때론 자신의 ‘친정’으로부터도 공격을 받았다. 대표적인 게 정의화 국회의장(새누리당 출신)이다. 2014년 9월 새누리당이 요구하는 핵심 법안들을 정 의장이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자 한솥밥을 먹었던 새누리당이 집단 반발했다. 당시 “법안을 처리한다고 왔는데 의장이 집에 가라고 한다. 지금 무슨 X개 훈련시키나”(김진태 의원 등)라는 거친 비난까지 받았다.

국회의장 ‘발언’이 정쟁의 불씨가 된 적도 있다. 직전 정세균 국회의장이 그런 경우였다. 정 의장이 2016년 본회의 연설에서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 사드 배치 등 민감한 이슈를 언급한 게 발단이 됐다. 그러자 새누리당은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 의무(※여당 출신이든 야당 출신이든 국회의장은 형식상 무소속임)’을 어겼다며 국회의장실을 점거 농성까지 했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2016년 5월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고 김영삼 전 대통령 묘비 제막식에 참석하고 있다. [중앙포토]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2016년 5월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고 김영삼 전 대통령 묘비 제막식에 참석하고 있다. [중앙포토]

국회의장 집무실엔 ‘참을 인(忍)’자 액자

해외 출장 건이 도마 위에 오른 적도 있다. 2011년 1월 박희태 국회의장이 해외 출장을 나서려고 하자, 당시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 등은 “구제역으로 나라가 비상 상태인데 외국에 나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사퇴하고 가라”고 항의했다.

특히 박희태 의장 때는 쟁점법안 처리에 대한 입장차가 첨예하게 갈려, 국회의장실 주변에서 “바지 의장”, “한나라당 원내대표 수하” 등 막말이 쏟아지기도 했다.

수난을 겪는 국회의장은 나름의 고충을 토로한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2016년 5월 퇴임사를 통해 “집무실에 ‘참을 인(忍)’자를 써서 걸어놓고, 어떻게든 합의를 끌어내고자 했다”며 그간의 심적 고통을 내비쳤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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