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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 힘 빼고 ‘잽을 날린다’는 맘으로 창업, 너무 재지 말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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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3호 14면

스타트업 육성 권도균·권오상 대표

지난달 30일, 차량 공유 서비스 1위 업체인 우버는 일본 도쿄에서 하늘을 나는 택시 ‘우버 에어’를 선보였다. 이걸 이용하면 나리타에서 하네다 공항까지 17분이면 간단다. 차로 1시간 50분 걸리는 거리다. 2023년 상용화가 목표다.

사업 어려운 한국 #미국 창업가들은 자유롭게 활동 #한국은 공무원들이 쥐고 흔들어 #정부 지나친 규제 #법·제도 장벽에 유니콘 기업 없어 #동등한 조건 되게 심판을 잘 봐야 #효과 없는 지원책 #자금 지원 잘 하나 그 외 전부 잘못 #스타트업 정책이 되레 해가 될 때도 #두려워 말고 창업 #20세기엔 고시를 통해 계층 이동 #21세기엔 창업하는 게 유일한 통로

사흘 전인 지난달 27일, 택시 4단체는 제1차 비상대책위원회를 열었다. 9월 국회에서 승차공유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데 총력을 다하기로 결의했다. 법안 통과가 무산되면 10월 대규모 집회를 열겠다고 압박했다.

한국판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 스타트업)’ 탄생을 돕기 위해 벤처 1세대 권도균 대표(오른쪽)와 금융감독원 출신의 권오상 대표가 뭉쳐 프라이머사제파트너스를 만들었다. [신인섭 기자]

한국판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 스타트업)’ 탄생을 돕기 위해 벤처 1세대 권도균 대표(오른쪽)와 금융감독원 출신의 권오상 대표가 뭉쳐 프라이머사제파트너스를 만들었다. [신인섭 기자]

우버는 자율주행, 플라잉 택시 등으로까지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반면, 국내 업체들은 되레 뒷걸음질 치고 있다. 작년 220억원의 투자를 받았던 차량 공유 업체 풀러스는 경영난으로 지난 6월 사실상 사업을 접었다. 2015년 말 버스 공유 사업을 시작했던 콜버스는 공유 사업을 포기하고 업태를 전환했다.

규제 때문에 한국에서 스타트업하기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그런데 이들을 향해 “(불평만 할 거면) 경영이 아니라 정치를 해라”고 일갈하는 이가 있다. 국내 최초 엑셀러레이터인 프라이머의 권도균 대표다. 그는 이니시스 등을 창업하고 2008년 회사를 성공적으로 매각한 뒤 2010년 프라이머를 설립했다.

지난 7월 권 대표의 프라이머와 미국 실리콘밸리의 벤처 캐피탈(VC)인 사제파트너스가 뭉쳤다. 프라이머사제파트너스는 한국의 유망한 스타트업이 글로벌 시장에 도전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 목표다. 이달 중으로 5000만 달러 규모의 펀드 조성을 마치고 본격 투자에 돌입한다.

프라이머사제파트너스는 4명의 파트너로 이뤄졌다. 권 대표를 비롯해 사제파트너스의 이기하·김경록 대표, 그리고 금융감독원 국장 출신의 권오상 대표가 새로 합류했다. 지난 20일 이들 가운데 국내에 있는 두 명의 권 대표를 서울 강남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프라이머사제파트너스’ 세워 지원 나서

한국에서 스타트업 하기가 어려운가.
(권도균, 이하 도)“창업을 독려하고 투자하는 사람으로서는 하기 어려운 말이다. 하지만 해야 겠다. 한국은 새로운 사업을 하기 참 어려운 나라다. 거대한 두 개의 장벽 때문이다.”
두 개의 장벽?
(도)“하나는 독점적으로 산업을 지배하는 대기업이라는 장벽이다. 다른 하나는 그것을 뒤에서 받치는 정치·제도의 장벽이다. 장벽 안에서 작은 장사를 하는 것까지는 괜찮다. 장벽을 넘으려는 순간 고난이 닥친다. 국내 유니콘 기업(스타트업으로 시작해 단기간에 기업가치 10억 달러를 넘긴 기업)이 없는 이유다. 프라이머사제파트너스를 만든 이유이기도 하고.”
정부 입장에서는 규제가 정부의 역할 아닐까.
(권오상, 이하 오)“분명히 규제가 필요한 영역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금융감독원은 금융회사가 아니라 소비자를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다. 핀테크 업체들 입장에선 답답하겠지만 산업 진흥이 아니라 소비자 보호가 금감원의 역할이다.”

(도)“모든 영역에서 합리적인 규제는 꼭 필요하다. 예를 들어 거대 기업이 시장을 독점할 수 없게 만드는 규제는 있어야 한다. 스타트업들은 무조건적인 규제 철폐를 말하는데, 규제가 사라지면 국내 업체가 득볼까. 아니다. 아마 우버 같은 해외 업체가 시장 다 먹을 거다. 난 규제 철폐에 대해선 좀 보수적이다.  정부의 진짜 역할은 심판을 잘 보는 것이다.”

심판을 잘 본다는 게 무슨 의미냐.
(도)“스타트업을 진짜 힘들게 하는 것은 법·제도 같은 형식적 규제가 아니다. 정부가 기존의 질서, 즉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에만 충실하다는 사실이다. 심판은 선수들이 동등한 조건에서 싸울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럼, 정부의 스타트업 지원 정책이 효과가 없나.
(도)“아니다. 한국 정부가 자금 지원은 잘 한다. 못 하는 건 자금지원 외 전부다(웃음). 교육, 플랫폼, 특정 산업 활성화 프로젝트 등. 스타트업 지원 정책인데 공무원들 승진 정책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되레 스타트업에 해가 될 때도 있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국내 문화도 스타트업 하기에 어려운 이유 아닐까.
(도)“스타트업 실패했다고 해서 재기가 힘드나. 그렇지 않다. 젊은 시절 2~3년 취업이 늦어질 뿐이다. 예전에야 사업하면서 빚을 져서 사업 실패하면 인생이 망가졌다. 스타트업은 빚으로 하는 게 아니다.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면서 사업하는 것은 투자가 아니라 투기다.”

(오)“학부나 석사 시절엔 창업에 대한 얘기를 전혀 듣지 못했다. 마흔이 다 되 갈 때 박사 과정을 미국 버클리대학으로 갔는데 다들 창업 얘기만 했다. 조금만 일찍 알았어도…. 아쉬웠다. 창업 했다 잘 안되면 남들보다 조금 늦게 회사 들어가면 된다. 잘 되면 인생역전이고. 창업이란 하방은 막혀 있고 상방은 뚫려 있는 기회다. 안 할 이유가 없다.”

(도)“20세기에는 고시를 통해 계층 이동을 했다면, 21세기는 창업이 계층사다리를 오를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중국, 스타트업을 옭아매는 규제 없어

창업가들에게 지금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도)“선배 창업가들의 경영 노하우 전수다. 지금지원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건 연료를 공급한다는 의미다. 엔진이 부실한데 연료만 많다고 빨리 달릴 수는 없다. 우리는 창업자 혼자서 큰 회사를 일군다고 생각하지만 미국은 이사회 중심 운영체제에서 이사들이 실질적인 지배권과 결정권을 가지고 최고경영자(CEO)를 돕는다.”
스타트업의 대표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인가.
(오)“뜬금없는 얘기 같지만 ‘선한 기운’이다. 성과나 숫자, 이익에 집착하는 게 아니라 하려는 일을 스스로 미션(소명)이라고 생각하고 임해야 한다.”

(도)“겸손이다. 사업은 불확실성의 세계에 뛰어드는 것이다. 내가 틀릴 지 모른다는 걸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내가 아닌 남이 좋아할 만한 것을 해야 한다. 가끔 스타트업 하겠다는 친구들 가운데 예술가가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한다. 경영자는 예술가가 아니다. 구도자다. 내가 아닌 고객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꾸준히 그 길을 가는 것이다.”

다른 나라는 정부가 지원을 잘 하고 있나.
(오)“중국은 공산당이 지배하는 사회주의 국가인데도 스타트업을 옭아매는 규제가 별로 없다.”

(도)“미국이다. 미국은 정부가 무대 위로 올라가지 않는다. 창업가들이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둔다. 한국은 공무원이나 관변 단체 인사들이 무대를 장악한다. 정작 창업가들은 들러리로 전락하고.”

스타트업을 하고 싶은 젊은이들에게 한 마디.
(도)“바로 시작해라. 너무 재지말고, 완벽하게 준비하겠다고 하지 말아라. 어깨에 힘을 빼고 ‘잽을 날린다’는 마음으로 시작해라. 진짜 좋은 사업은 많은 경우, 그럴 듯한 것이 아니라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것에서 시작됐다.”
펀드에는 주로 어떤 투자자들이 참여했나.
(오)“기업 및 재단, 글로벌 투자자 등 다양하다. 특히 사제파트너스와 프라이머가 투자했던 스타트업 중 성공적으로 엑시트한 회사의 창업자가 펀드에 투자했다. 선배 창업가가 후배 창업가를 돕고 육성하는 창업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우리의 비전에 공감한 결과다. 앞으로 더 많은 사례가 나올 것이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권오상(51) 기계공학 박사 출신으로 경영대학원(MBA)를 졸업, 금융 분야의 경력을 쌓았다. 바클레이스·도이치방크 등에서 일했고, CHA의과대학 교수 등을 역임했다. 2014년 금융감독원의 조직개편 때 복합금융감독국장으로 임명됐다. 17권의 책을 펴냈다. ‘한국의 말콤 글래드웰(『아웃라이어』 저자)’보다는 ‘한국의 막심 탈레브( 『블랙 스완』 저자)’로 불리길 원한다.

권도균(55) 1997년과 98년 설립한 이니텍·이니시스를 2008년 3300억원에 매각해, 1000억원 이상의 자산가가 됐다. 2010년 후배 창업가를 돕자는 취지로 국내 최초 엑셀러레이터 프라이머를 만들었다. 패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스타일쉐어, 자유여행 플랫폼 마이리얼트립, 부동산 중개업체 호갱노노 등이 프라이머의 투자와 지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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