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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공동 번영의 길, 오래 참고 기다려야 풀릴 것들 있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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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3호 27면

빠른 삶, 느린 생각

[일러스트 강일구 ilgook@hanmail.net]

[일러스트 강일구 ilgook@hanmail.net]

올해 추석은 다른 어느 때보다 밝은 가을 날씨다. 밝은 햇빛, 맑은 하늘, 유달리 짙은 푸른색의 수목들, 참으로 좋은 가을날의 정수를 모아 놓은 듯하다. 이 느낌은 이제 막 지나간 여름이 유난히 덥고 견디기 어려운 날들이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나의 일들, 우리나라 그리고 세계에 일어나는 여러 일들에 사로잡혀 살다가 계절의 변화는 문득 나날의 삶의 회로애락보다 더 큰 환경 속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리하여 생각과 삶의 기본적인 방위를 새로 고쳐 생각하게 된다.

1년 전만해도 전운 감돌던 한반도 #문 대통령 방북으로 놀라운 변화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문화 교류 #쉽게 이루어낼 수 있는 화해 조치 #자유 민주주의, 시장 경제, 인권 … #체제적 이념 조율은 긴 시간 걸려 #대결 미루며 제3, 제4의 길 찾아야

그런데 계절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것을 더 말해보면, 계절도 반드시 사람을 완전히 초월하는 거대 현상은 아니다. 올 여름의 더위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것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그러니 계절의 변화도 반드시 사람의 세계를 넘어가는 큰 우주적 현상 또는 전(全)지구적 현상이라고 만은 할 수 없다. 지질학에서는 지구의 연대를 여러 가지로 나누어 구분한다. 그 구분에 따라 근년에 와서는 지금의 인류가 살고 있는 시대를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라고 부른다. 그것은 앞서 간 홍적세(洪積世)에 이어 현세 (現世, Holocene) 라고 하던 것을, 인간이 지구의 지질에 엄청나게 미친 영향을 생각하여, 인류세 또는 인간의 시대라고 바꾼 것이다. 이런 개념을 처음 쓴 것은 1938년 구 소련의 지질학자 블리디미르 베라나드스키였는데, 용어로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라고 한다. 소련에서 그런 착안이 나온 것은 혁명을 통하여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는 사상의 흐름에 관계되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2000년대에 그 말이 나온 것은 환경오염과 파괴가 엄청난 재난으로 다가올 것으로 보이기 시작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구의 지질학적 조건이나 기후가 인간이 하는 일에 관계된다고 하여도 그것이 인간의 현실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은 일단 전지구적인 조건으로 바뀐 다음이다.

남북관계 한 굽이 돌고 화해의 날 시작

이러한 이야기는 사실 여기에서 말하려는 것과는 별 관계가 없는 일이나, 쉽게 예측할 수 없었던 정치적 사건이 계절의 변화에 비슷한 듯한 느낌이 들어서 계절 이야기를 해 본 것이다. 그간에 벌어진 남북관계에 대하여서는 많은 논평들이 있어서 새삼스럽게 비전문가가 논의를 첨가할만한 일이 되지는 않지만, 다른 일을 생각하려해도 그것이 피하지 못하게 마음에 다가오기 때문에 여기에서 잠깐 논의해보려 할 뿐이다.

홀연 계절의 변화를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되듯이, 우리 나날의 삶을 넘어 있으면서도 그것을 지배하는 일들 가운데 최근에 일어난 일 하나는 말할 것도 없이 지난 18일에서 20일 사이에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 그리고 백두산 탐방이다. 그 방문도 놀라운 큰 사건이지만, 북에서 문 대통령에게 보여준 여러 환대의 표시도 당연하면서도 놀라운 일이 되어, 이제 바야흐로 남북 화해의 시대가 열린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그러면서 그것은 안으로 밖으로 여러 갈래로 흘러가는 시대의 흐름이 그런 굽이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게 한다. 작년 가을 만해도 전쟁의 위협이 우리의 머리 위를 맴돌았고, 그것을 불안해하지 않는 것은 아니면서도 눈에 띠게 크게 불안해하지 않는 한국인들에 대하여 외국에서 의아심을 가질 정도로 사정이 불안했다. 그런데 금년 초로부터 형세는 달라지는 것으로 보였지만, 이번의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계기로 사태는 단호하게 한 굽이를 돌고 화해의 날들이 시작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지금 찾아 온 계절 가을처럼 준비되고 있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는 것은 시대가 흐르면서 여러 사정들이 바뀌었고, 그러는 가운데에 사람들의 마음에 통일까지는 아니라도 남북 화해에 대한 그리고 평화로운 관계에 대한 소망이, 새로 생겨나면서도 깊이 자리 잡고 있던 소망이 나온 것이다. 그 소망에 물꼬를 트는 일이 없을 수가 없었다. 정치가 그것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현정부는 당초부터 이것을 겨냥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념, 사람의 힘이면서 사람의 현실 초월

남북 화해는 무엇을 언제 어떻게 한다는 것일까? 어떤 점에 있어서는 화해를 촉진하는데 해야 할 일은 그다지 어려운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어떤 일들은 곧 착수할 수 있는 일들이고, 북이나 남에서 큰 정치적 변화가 없이도 행해질 수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 정상 회동의 공동선언에 나오는 것으로 문화예술의 교환에 관계되는 사항이 있는데, 그것은 방해요인들이 금방 생기지 않는 한 쉽게 이루어낼 수 있는 일일 것이다. 구체적으로 제안된 일에는 이번 10월에 평양예술단이 남쪽으로 내려와 하게 될 공연이 있고, 또 조금 더 복잡하게는 2020년 겨울올림픽과 같은 행사를 함께 하는 일이 있다. 그 다음으로 그 전에 있던 시설을 복구하거나 그에 비슷한 시절을 세우겠다는 것도 너무 어렵지는 않은 일일 것이다. 개성공단을 복구하고 금강산 관광을 정상화한다는 것은 그 전의 일을 다시 하는 일이다. 서해안이나 동해안에 관광 특구를 건립하는 것, 동서 해안의 철도·도로 등을 건설하겠다는 것도 의지와 재원이 확실하면 비슷한 사업이 될 것이다. 이산가족 면회소를 상설하는 것, 그리고 적십자사를 통하여 이산가족들의 상호 소통의 편의를 증대할 수 있도록 하는 일도 그렇다.

다만, 이러한 사업들은 북한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체 조처가 풀린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비핵화, 국제적인 검증이 가능한 비핵화가 선행하여야 한다. 그런데 선언문에 나와 있는 것으로는, 비핵화에 단계가 있고 그것에 대한 미국의 대응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지만, 적어도 그에 필요한 조치를 할 용의가 있다는 것을 북은 밝히고 있다.

이러한 구체적인 사업에 관한 언급 외에 선언문은 전체를 관통하는 목적과 의도를 천명한다. 거기에 따르면, 두 정상 회동의 목적은 남북간의 대화, 다방면의 인적 교류를 활발하게 실현해 나가고, 더 중요한 것으로는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조치들을 취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은 궁극적으로 ‘민족적 화해와 공동 번영’을 목적으로 한다.

화해와 공동 번영, 이것을 말하는 것은 오늘에 할 수 있는 일들을 넘어 남북이 함께 할 미래를 말하는 일이다. 그것은 두 정부의 통치지역에서 정치 지향의 변화 또는 이데올로기적 지향의 변화를 요구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체제의 이념적 기초에 문제가 생기게 하는 일일 수 있다. 가령 체제 내에서의 정치적 의견의 차이나 정치적 목적의 단체 조직을 강제력으로 억제하는 것은 자유 민주주의적 입장에서는 허용할 수 없는 일이다. 북의 입장에서는 자기들의 이념이 그러한 통제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인권의 문제는 남북 정상 회동과 관련된 해외 언론에서도 거론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인권의 문제, 모든 인간이 가져서 마땅한 권리의 문제이면서 체제의 자기이해(自己理解)에 관계되는 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북에서 이것을 논의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남에서도 간단하지는 않는 문제라 할 수 있다.

폭염 지나 가을 오듯 남북 밝은 미래 기대

북의 입장에 대하여 너그러운 태도를 취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유 민주주의 이념의 손상을 의미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것은 받아드릴 수 없는 일로 간주될 수 있다. 말할 것도 없이, 남북의 두 체제가 화해와 공동 번영을 추구한다고 할 때, 다른 여러 점에서도 근본적 차이에 대한 새로운 조종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가령, 시장 경제가 번영의 조건이 되어있는 오늘의 세계에서 체제의 어디에서 어디까지에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도 쉽게 풀릴 수 없는 과제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체제의 이념의 새로운 조종이 필요할 것이다. 또는 시장 경제와 사회적 일체성 간에 생겨나는 갈등을 어떻게 조율하느냐 하는 것도 생각하여야 할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하나의 방법은 두 체제의 근본에서 나올 수 있는 대결을 미루면서 오랜 시간에 걸쳐 저절로 문제가 풀리게 하는 것이다. 천후(天候)가 알맞은 것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체제에 대한 논쟁에 제3의 길이라는 말이 널리 쓰인 일이 있었다. 제3이 아니라 제4, 제5의 길도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는 쉬운 사고의 방법이면서, 인간의 삶의 현실에 쉽게 맞아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이번 남북 정상 회동에서 주로 이야기된 것이, 위에 말한바와 같이 뜻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들인 것은 매우 잘 된 일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언론에서 또 해외 언론에서 두 정상의 여러 표정이나 움직임, 악수하고, 포옹하고, 손가락으로 요즘 유행한다는 마음 심(心)자 신호를 보내고 하는 일들이 주목을 받았다. 그러한 작은 연출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는 논평도 없지 않지만, 그러한 작은 선의의 교환도 보다 큰 소통을 앞질러 중요할 수 있는 것이 인간관계이고, 또 정치 권력자들의 관계가 되는 것도 틀림이 없다.

짧은 지금의 현장(現場)이 긴 미래가 되는 것, 작은 일이 큰일이 되고 큰 일이 작은 일이 되는 것이 인간사이다. 『제 3의 길』의 저자 앤토니 기든스 교수가 말한 바와 같이 좌우의 이데올로기적 사고에 피로해진 것이 오늘이다. 이념은 그 나름으로서의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은 사람의 힘이면서 사람의 현실을 지나쳐 간다. 추석의 청명한 날씨는 그 다음에도 계속되고, 날씨에 따라 사람들은 맑은 마음과 힘을 얻는다. 그 날씨는 나의 마음에 관계되고, 다른 한편으로 먼 우주적 질서의 일부를 이룬다. 남북의 화해와 공동 번영에 대한 소망이 기초가 되어 더욱 밝은 삶의 미래, 오래 참고 기다리는 가운데 밝은 미래가 오기를 기대해 본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고려대 명예교수. 서울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미국문명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년 첫 저서 『궁핍한 시대의 시인』 이후 『지상의 척도』 『심미적 이성의 탐구』 『자유와 인간적인 삶』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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