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공동선을 위해 선행할 일-사회적 갈등 꼭 극복돼야 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우리 사회가 걸머진 89년의 과제는 지난해에 못다 한 과거의 청산과 마무리를 통해 민주화를 더욱 심화, 고착화하는 것 외에 우리의 공동체를 진정 인간답게 가꾸고 공동선을 향해 다같이 노력하는 일이다.
우리가 그토록 염원해온 민주화나 경제성장도 따지고 보면 우리가 몸담은 삶의 마당을 보다 인간다운 것으로 만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라고 볼 때 갈등과 마찰을 제거하고 삶의 기회와 조건들을 향상시키는 인간화야말로 궁극의 목표가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지향하는 민주화나 자유화도 결국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이고 사회정의나 배분의 정의를 실현시키자는 것이나 안정을 바라는 것도 인간다운 생활, 즉 인간화와 귀결된다.
그러나 우리의 사회가 인간다운생활을 누리기에는 환경이 너무나 조악하고 정신문화는 극도로 피폐하고 가치관은 전도되어 있다.
대기와 수질, 중금속의 공해는 위험수위에 육박하거나 넘어선지 오래고 범죄의 공포와 부정부패는 극에 이른것 같고 교육은 아직도 낙후성을 못 면하고 있다. 교통사고와 산재피해는 갈수록 늘어나 산재사망과 교통사고율이 세계 제일이란 수치스러운 기록과 함께 1년에도 수십 만명의 희생자를 내고있다.
그뿐 아니라 전통윤리와 도덕대신기회주의와 한탕주의, 치부영달과 찰나주의 등 부정적 가치들이 만연하고 소외계층의 상대적 빈곤감이나 노사갈등은 사회불안의 외기로까지 치닫고 있다.
사치와 향락, 퇴폐와 배금, 물질만능의 사고와 풍조는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목표지상주의와 인간경시를 부채질하고 성실과 정직, 근면과 공정·정의감과 같은 보편적 가치들을 매몰시키고 사회의 이질성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환경과 비인간적 풍토에서는 오늘날 우리사회에 요구되는 협동과 신뢰를 바탕으로하는 공동체의식이나 민주사회의 공리는 형성되기 어렵고 감등과 분쟁은 해소할수 없다. 지난해에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반문명적 인신매매 성행과 학생이 교수의 머리를 삭발한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다.
또 지난해의 잇단 학생소요와 노사분규는 제쳐놓고서라도 올들어 연초부터 풍산금속 안강공장을 필두로한 노사문제가 벌써 심상찮은 조짐을 보이고 있으며 안정과 질서를 바라는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이같은 우리사회의 병리나 구조적 병폐와 악순환, 그리고 계층간·지역간의 감등과 모순은 오랜 세월이 나라를 파행적으로 지배해온 권위주의 정치와 성장일변도의 산업화 과정에서 파생된 부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갈등과 모순, 분쟁과 마찰을 극복하고 황폐화된 정신문화를 바로잡는 길은 과거의 완전청산과 정리에서 출발해야하고 그래야만 민주화와 인간화도 뿌리내릴 수 있다. 광주문제나 5공비리·악법개폐 등 지난해에 매듭짓지 못한 문제들을 조속히 해결하고 정상화시키지 않으면 굴절된 정신유산도, 썩은 침전물이나 찌꺼기도 청소하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첫째 정부는 5공비리 수사 등 과거의 잘못을 파헤치고 뿌리뽑는데 가일층 박차를 가해야한다. 수사에 미흡한 구석이나 한점의 의혹도 남기지 말아야하며 모든 것을 있는대로 밝혀 준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또 김근태씨 고문사건 등의 사법적 응징도 서둘러야 하고 다시는 인권유린행위가 안 일어나도록 만전을 기해야할 것이다.
둘째는 법과 공권력의 신뢰회복이다. 법과 공권력이 강한 자에게 약하거나 약한 자에게 가혹하다면 법의 권위와 존엄성은 회복할 수 없다. 더구나 그러한 법이 헌법에 위배되거나 과거 법을 만든 동기나 의도가 정권유지에 있었다든가 입법과정과 절차에 적법성이 결여된 흠많은 법이라면 법의 위신만 떨어뜨릴 뿐이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집시법·사회안전법· 사회보호법 등의 개폐에 조금도 주저하거나 유예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러한 법을 갖고서는 시위나 질서를 바로잡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고 오히려 법 경시와 저항의식만 자극하고 무질서와 혼란을 가중시킬 따름이다.
세째는 공해나 범죄·교통·산재 등 환경문제해결에 정치가 앞장서야 한다.
정치의 근본목적이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다 행복하게 살수있는 토양을 조성해주는데 있는데도 정치의 관심이 정치권 내부문제에만 쏠리고 정권유지나 획득에만 혈안이 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교통사고 사망자만도 연간 1만명이 넘고 작년의 산재사고가 자그마치 14만건이 넘어 1천7백여명이 숨지고 2만여명이 불구자가 되었다.
지금도 수많은 근로자들이 조악한 작업환경에서 난치의 직업병에 걸려 시름하고 있다. 그런데도 각 정당과 정치인은 규탄대회나 시외현장에는 자주 나타나면서 그 흔한 조사단 파견이나 근본해결을 의한 정책대안 마련에 소홀하고 무신경한 것은 누구를 위하고 무엇을 하자는 정치인지 알수 없는 노릇이다.
살인과 강도와 인신매매가 횡행하고 국민이 공포에 떠는데도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어느 특정정당이 교통이나 치안대책을 위한 공청회라도 열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네째는 사회 성원 모두를 함께 위하는 일이 바로 자신을 위하는 것과 일치한다는 공동체의식을 국민개개인이 자각하는 일이다.
법과 질서도 정부만이 아니라 사회성원이 보조를 맞추어야 지켜질 수 있고 민주화도 달성된다는 평범한 사실을 익혔으면 한다.
더구나 오늘의 시대상황은 과거권위→복종→동원의 강압정치와 관의 시대를 마감하고 국민이 기초가 되는 민의 시대이자 자율화시대로 옮겨가고 있는데 자유와 민주의 목소리만 높이고 책임과 의무와 질서를 등한시해서는 폭력과 무질서와 불안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사회구성원 각자가 협동하고 자제하는 노력과, 특히 사회지도층이 앞장서 분수와 규범을 지키는 솔선수범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런 점에서 자신이 속한 지역의 발전과 계층의 이해를 스스로 해결하고 참여하면서 자율의 능력을 키우는 제도적 강치인 지방자치제전면 실시도 앞당겨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