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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벨트, 무엇을 위한 보루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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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이현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실장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그린벨트와 개발은 서로 반대쪽에 있는 단어다. 하지만 서울의 개발과 그린벨트 사이에는 묘한 동반자적 관계가 있다. 1960년대 말 박정희 대통령은 영동지구(현재 강남구 일대) 토지구획정리 사업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수용한 체비지(사업 재원 마련을 위해 확보해 두는 땅)를 팔아 고속도로 건설 등 강남 개발에 쓸 계획이었다. 하지만 허허벌판인 땅에 관심을 쏟는 돈은 없었다. 물꼬를 튼 것이 그린벨트 지정이었다. 외곽이 묶이자 민간 자본이 영동 체비지 쪽으로 몰렸다(임동근,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서민·청년층 주거 불안 외면하고 #무조건 보존 옳은지 고민해 봐야

그린벨트는 환경론자에겐 성역이다. 박정희의 개발독재를 비판하면서도 그린벨트만은 치적으로 인정해 준다. 그런데 그린벨트가 꼭 긍정적인 면만 있을까. 토지 소유주의 재산권 침해 문제는 ‘토지 공개념’이라는 대의에 양보한다 치자. 환경 보존과 무분별한 도시 확산 방지라는 목적은 과연 이뤘는가.

‘J노믹스의 조력자’라는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그린벨트는 이 나라에 녹지를 한 평도 더 보존하는 효과가 없었다”고 단언한다. 그린벨트를 넘어가 집을 짓고 공장을 지었는데, 그 땅도 농지나 임야 같은 녹지였다. 훼손되는 녹지 위치만 달라졌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린벨트 너머에는 무질서한 확대가 펼쳐진다. 이른바 ‘스프롤(sprawl) 현상’이다. 수도권 그린벨트 너머 사람들의 생활권은 대부분 서울이다. 서울은 여전히 복잡한데, 그린벨트를 넘나드는 도로만 길어졌다.

그린벨트의 확실한 효과는 있다. 안쪽 지역의 땅값 상승이다. 캐나다 제1의 도시 토론토는 2005년 세계에서 가장 넓은 7200㎢의 그린벨트를 지정했다. 서울시 면적의 12배다. 그 뒤 도시의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캐나다 넓은 땅에서는 잘 보기 힘든 고층 아파트(콘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지역 언론에는 “토론토의 비싼 집값이 젊은이들의 내 집 마련 꿈을 앗아가고 있다”는 기사도 등장한다.

9·21 공급대책의 핵심은 서울 바로 옆에 미니 신도시 4~5곳을 조성하는 방안이다. 당연히 그린벨트에 손댈 수밖에 없다. 이명박(보금자리), 박근혜(뉴스테이) 정부의 주택정책에 대해 ‘그린벨트 훼손’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던 현 집권 세력이 사정이 급해지자 입장을 바꿨다. ‘내로남불’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수요 억제 일변도에서 방향을 튼 것은 평가할 만하다. 문제는 서울시의 반대다.

정부 주택정책이 경기도 그린벨트는 건드리고 서울은 못 건드린다면 ‘서울 사람 환경만 중요하냐’는 원성이 나올 수밖에 없다. 감정 문제를 떠나 정책 효과도 의문이다. 시내 유휴부지와 자투리땅을 활용하겠다는 서울시 대책은 코끼리 앞 비스킷 격이다. 재개발·재건축 활성화가 대안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도심 집값은 서민이나 청년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올라버렸다.

그린벨트는 지킬 수 있으면 최선이다. 그러나 권위주의 시절 강압적으로 묶어 놓은 사유지 개발 욕구를 무조건 틀어막기는 불가능하다. 이미 음식점, 비닐하우스, 창고, 단독주택 등으로 어지러운 곳이 많다. ‘그린’(녹지)은 없고 ‘벨트’(개발제한)만 남은 셈이다. 47년 전 서울 인구 500만 명 시절에 그어놓은 선이 통합 수도권 시대인 지금까지 유효할 리 없다. 이참에 대대적인 정비를 통해 보존할 만한 지역은 확실히 보존하고, 심하게 훼손된 지역은 가치 있게 활용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다.

서울 주택시장 특성상 서민과 청년층 주거 불안은 상시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린벨트를 두고 ‘후손을 위한 보루’라고 한다. 혹시 지금이 그 보루를 가장 값지게 쓸 때가 아닌지 따져볼 일이다. 그린벨트가 서울 집값을 지키는 보루라는 소리만은 나오지 않아야 한다.

이현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