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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과잉 의전 금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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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김남중 기자 중앙일보
김남중 논설위원

김남중 논설위원

1992년 아버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로스앤젤레스(LA) 한인 방송사 라디오코리아를 방문했다. 흑인 폭동이 한인사회를 휩쓴 직후였다. 사태 와중에 24시간 방송으로 주민 상황실 역할을 해준 데 감사를 표하는 자리였다. 당시 라디오코리아 사장이 1970년대 통기타 시대를 풍미한 가수 이장희씨였다. 방문 며칠 전 백악관 경호실 관계자로 보이는 두세 명이 다녀갔을 뿐 이씨가 한 ‘의전’ 준비는 아무것도 없었다. 30분간 부시를 독대한 이씨는 그에게 자신의 자리를 권했다. 그때 부시의 대답은 이랬다. “You are the president here!(여기선 당신이 사장입니다)” 그러고는 손님 자리에 앉았다.

한국 사회의 ‘황제 의전’ ‘과잉 의전’ 세태를 빗대어 꼬집을 때 인용되는 일화다. 과잉 의전 논란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오늘 해외연수를 떠나는 몇몇 시·도의회 의원들의 행태도 입방아에 올랐다. 전북도의회와 울산시의회 일부 상임위가 의원보다 많은 공무원을 동행시키는 바람에 과잉 의전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의회 측 명분은 “연수 내용 정책화를 위한 의원과 공무원의 연계와 의견 공유”다. 하지만 전북공무원노조 측 주장은 다르다. “관행적으로 의원들 의전을 위해 인원이 편성됐다”는 거다. 과거 행적이 근거라니 의원들로선 억울해도 스스로를 탓해야 할 처지다.

의전은 원래 외교 의례(Protocol)다. 특히 정상 외교의 꽃은 의전이다. 국가 간 관계를 위한 역할이 막중하다.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북측의 파격적인 의전에 관심이 집중된 것도 그래서다. 의전은 한마디로 ‘품격 있는 예우’다. 문제는 한국에선 종종 이런 예우가 ‘갑질’ 혹은 ‘반대급부’와 경계가 모호한 용도로 변질된다는 점이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엊그제 과잉 의전에 철퇴를 들었다. 통상적인 관행을 벗어나는 예우나 대우를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공무원행동강령 개정안 입법예고를 통해서다. 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과잉 의전은 문책 대상 행위”라고 지적한 지 한 달도 안 돼서다. ‘윗사람 잘 모시기’와 ‘거래’로 변질된 의전이 법령의 규제를 받기에 이른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우아함과 근사함으로 포장돼 마약같이 사람을 길들이지만, 본질을 압도하거나 가리는 의전은 나라를 병들게 한다’(『의전의 민낯』, 허의도)는 점에서 과잉 의전은 해체돼야 마땅하다. 힘 있는 사람들이 앞설 일이다. 품격은 과잉 의전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김남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