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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美 중간선거 흔드는 ‘핑크 웨이브’…3명 중 1명 女주지사 시대 열릴까

중앙일보

입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집권 1기를 중간평가하는 성격의 중간선거가 두 달이 채 안 남은 가운데 ‘핑크 웨이브(pink wave·여성 후보들의 돌풍)’에 언론이 주목하고 있다. 연방 상·하원의원, 주지사 등에 출마할 최종 후보자로 낙점된 여성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것이다.

상·하원, 주지사 최종 후보로 낙점된 여성 사상 최대…제 2의 ‘여성의 해’ 기대 #스토리텔링 방식 영상으로 홍보, 자녀 앞세우기도…“민주당에 유리” 전망도

25일 CNN 등에 따르면 연방 상하원 예비선거에서 승리해 본선행을 확정한 여성은 모두 256명에 달한다. 민주당에서 197명, 공화당에서 59명으로 민주당에서의 여성 약진이 두드러진다. 상원과 하원으로 나눠보면 각각 22명, 234명인데 이전 신기록인 18명(2012년), 167명(2016년)을 각각 깬 것이다.

여성 진출이 더뎠던 주지사 선거에서도 16명의 여성이 최종 후보직을 꿰차면서 1994년(10명)의 기록을 다시 세웠다.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 준비가 돼 있다”(블룸버그통신), “역사를 다시 쓸 것”(타임지) 등의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례적 ‘여풍(女風)’의 배경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반여성적 행보와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 등의 영향이 작용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올해는 ‘여성의 해’라 불린 지난 1992년을 능가할 만큼 기록적인 여성 정치인을 탄생시킬 것으로 언론들은 내다보고 있다. 당시 성희롱 전력에도 클레어런스 토마스 대법관 후보자가 인준되는 사태를 보면서 많은 여성이 분노했고, 이를 계기로 선거를 통해 정치에 입문하는 여성이 대거 늘었다.

무슬림부터 트렌스젠더, 소말리아 출신까지…이변의 바람

민주당 버몬트 주지사 후보인 크리스틴 홀퀴스트. [AFP=연합뉴스]

민주당 버몬트 주지사 후보인 크리스틴 홀퀴스트. [AFP=연합뉴스]

여성 후보들이 약진하면서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게 될 인물들도 연일 화제다. 버몬트 주지사 민주당 경선에서는 2015년 성전환 수술을 마친 크리스틴 홀퀴스트가 후보로 선출되면서 본선 티켓을 쥐었다. 주요 정당에서 트렌스젠더 주지사 후보가 나온 것은 최초다. 텍사스의 민주당 주지사 후보로는 루페 발데스 전 댈러스 카운티 경찰국장이 당선됐는데 그는 히스패닉이자 여성 동성애자(레즈비언)다. 스테이시 에이브럼스는 백인 공화당 지지자들이 많아 인종 차별이 심하고 보수적인 조지아주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 여성으로서 주지사 후보에 올랐다.

캔자스주 하원의원 민주당 후보로 지명된 샤리스 데이비스가 당선되면 최초의 레즈비언 의원이자 아메리칸 원주민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미시간주와 미네소타주에서는 이민자 가정 출신들이 주 하원 입성에 이어 연방 하원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팔레스타인 이민자 2세인 라시다 틀레입과 소말리아계 일한 오마르다.

민주당 뉴욕주 하원의원 경선에서 승리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테즈 후보. [로이터=연합뉴스]

민주당 뉴욕주 하원의원 경선에서 승리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테즈 후보. [로이터=연합뉴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테즈는 현역의원이자 민주당 내 서열 4위의 10선 의원 조지프 크롤리를 상대로 승기를 거머쥐며 미 정계에 충격을 안긴 인물이다. 그는 여성, 유색인종, 노동계급 출신이라는 조건을 견디며 일약 스타로 부상했다. 당선되면 지역구 최초 여성 유색인종 의원이자 최연소 하원의원이란 기록을 세우게 된다. 오티스 존스는 최초의 필리핀계 미국인이자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한 후보다. 민주당 약세 지역인 텍사스주에서 선전했다.

특히 자녀를 앞세워 ‘엄마’ 유세를 하는 인물도 눈길을 끈다. 네 아이의 엄마이자 뉴저지 하원 민주당 후보인 미키 셰릴이 대표적이다. 전통적으로 미 사회에서 유권자들은 어린 자녀를 둔 여성 후보자를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여성들이 정치를 하더라도 늦은 나이에 입문하는 경향이 컸던 이유다. 뉴욕타임스(NYT)는 그러나 올해에는 ‘엄마’라는 점이 이들을 더 자격 있게 만든다고 전했다. “유권자들은 잊힌 숙제 더미, 놓친 버스 등 많은 일하는 부모 가정의 아침 풍경을 이해할 수 있는 후보자들과 연결되길 원한다”는 것이다.

뉴저지 하원 민주당 후보인 미키 셰릴. [뉴욕타임스 캡처]

뉴저지 하원 민주당 후보인 미키 셰릴. [뉴욕타임스 캡처]

캠페인에도 파격 또 파격 

여성 정치 신예들은 캠페인에서도 파격적인 행보를 보인다. 부친의 폭력적인 기질이라든지 친오빠의 범죄 전력이라든지 사적인 얘기를 거침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어릴 적 성폭력 경험을 스스럼없이 말한 이도 있다. 스테이시 에이브럼스는 20만 달러(2억 2328만원)의 빚을 지고 있다는 점과 마약을 한 혐의로 수감 생활을 한 이력이 있는 오빠의 이야기를 빼놓지 않고 한다.

교사 출신 자하나 헤이스 코네티컷주 민주당 후보.[뉴욕타임스 캡처]

교사 출신 자하나 헤이스 코네티컷주 민주당 후보.[뉴욕타임스 캡처]

특히 이를 다큐멘터리 형식의 수 분짜리 비디오로 제작, 소셜미디어 등에 올리면서 홍보에 나선다. 30초짜리 TV 광고에 돈을 쏟아붓는 전통적 캠페인에서 벗어난 것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돈을 들여 수백만 명의 사람에게 도달하는 효과라고 NYT는 전했다. 미국 올해의 교사상에 선정된 바 있는 교사 출신의 자하나 헤이스는 코네티컷주에서 민주당 후보로 승리했는데 2만 달러가 채 안 되는 비디오를 제작해 30만 달러의 후원금을 끌어모았다. 그는 홍보 영상에 어머니가 약물 중독과 싸우는 동안 자신은 할머니의 손에 길러졌고, 17세 때 임신한 사실 등을 전했다.

NYT는 “여성, 소수자, 아웃사이더 후보자가 일으킨 돌풍은 문화적 장벽을 깨는 것뿐 아니라 캠페인에서도 오랜 규범을 젖혀두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간선거 변수 될까

여성 돌풍은 중간선거에 어떤 요인으로 작용할까. 블룸버그는 의회를 장악하고자 하는 민주당에 유리한 요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코노미스트도 “전통적으로 여성 유권자들은 여성 후보자를 특별한 선호하지 않았지만 점차 바뀌고 있다”며 “특히 18~34세 젊은 층 가운데 3분의 1은 여성 후보자에 투표하길 원한다는 보고가 있다”고 전했다. 여성 후보 중 상당수가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한 만큼 젊은 여성의 투표율에 따라 민주당이 강세를 보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이튿날인 지난해 1월21일 워싱턴 DC를 중심으로 진행된 여성 행진.[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이튿날인 지난해 1월21일 워싱턴 DC를 중심으로 진행된 여성 행진.[AFP=연합뉴스]

여성 후보자 뿐 아니라 목소리를 적극 내는 여성 유권자도 큰 변수로 꼽힌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민주당은 오랫동안 여성 유권자 사이에서 공화당 보다 우위를 점해왔다. 2016년 대선 당시에도 여성 유권자 중 트럼프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는 41%로, 남성(52%)보다 크게 낮았다. 최근 미국 여론조사기관 갤럽에 따르면 여성 10명 중 3명 가량(35%)이 트럼프의 정책 수행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는데 이는 남성(49%)과 비교해 14% 포인트 낮은 수치로 임기 이래 가장 큰 격차라고 매체는 밝혔다. 여성의 절반은 현재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 남성보단 여성들에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며 이 같은 젠더 갭(성별 분리 현상)은 버락 오바마, 조지 W 부시,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때와 비교해 두 배 정도 높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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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여성 후보자들이 실제 의회 입성에 성공할 경우 역사상 최초로 상하원 내 여성의 비중이 25% 수준까지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현재 연방 의회에서 여성 의원의 수는 점차 늘면서 107명(상원 23명, 하원 84명)을 기록하고 있다. 역대 의회와 비교하면 많아진 것이지만 여전히 20% 수준에 그친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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