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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수육과 와인, 몸에 좋은 둘이 만났을 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민국홍의 삼식이 레시피(6) 

돼지수육(좌)과 도토리묵(우). 타닌성분이 들어있는 도토리묵은 돼지수육과 잘 어울린다. [사진 민국홍]

돼지수육(좌)과 도토리묵(우). 타닌성분이 들어있는 도토리묵은 돼지수육과 잘 어울린다. [사진 민국홍]

내가 지난 6월부터 돼지 수육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집 근처 정형외과 원장과 나눈 대화에서 비롯됐다. 뻑뻑한 목 때문에 1주일에 한 번 정도 물리치료를 받다가 원장과 제법 친해졌다. 하루는 진찰을 받던 중 그와 음식에 대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단백질로 무엇을 먹느냐는 의사의 질문을 받았다. 쇠고기와 닭 가슴살, 생선 등을 먹고 있다고 대답하니 그가 대뜸 돼지 수육을 먹어보라고 권한다.

금방 그 의미를 백 퍼센트 알아들었다. 예전에 TV에서 오키나와에 관한 2편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돼지 수육이 건강에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한편은 오키나와가 왜 세계에서 알아주는 장수촌이 되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섬 노인들이 해산물과 삶은 돼지고기를 먹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른 한 편은 오키나와 사람들이 왜 성인병에 많이 걸리는지를 보여주는 정반대의 내용이다. 오키나와가 최근 들어 점차 도시화하고 패스트푸드가 들어오면서 삶은 돼지고기를 잘 먹지 않게 되었고 사람들이 각종 성인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아내의 생일, 가족들이 모여 돼지수육을 안주로 사시카이아 와인을 들었다. [사진 민국홍]

아내의 생일, 가족들이 모여 돼지수육을 안주로 사시카이아 와인을 들었다. [사진 민국홍]

돼지 수육은 이처럼 건강에 좋고 입에도 딱 달라붙을 정도로 맛있는 데다 단백질 공급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술안주로도 이만한 것을 찾기 힘들다. 나는 종종 지인들과 서울 중구 을지면옥에서 냉면을 먹기 전 돼지 편육에 소주를 곁들이곤 하는데 그 맛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또 가족들과 평창에서 휴가를 보내면 반드시 봉평읍 현대 막국수에 들려 막국수와 함께 돼지 편육 한 접시를 시켜 같이 먹는다.

2008년 6월 어느 날 동네 원 할머니 보쌈에서 딸과 함께 돼지 수육에다 술을 먹은 적이 있는데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딸이 대학 졸업 후 기업에 취직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한 저녁 자리였는데 음식도 맛있고 분위기가 고조되어 그만 딸과 소맥 배틀이 벌어졌고 그만 내가 지고 말았다. 참 부모는 자식들의 주량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는가 보다. 딸이 이미 고등학교 시절 소주를 꽤 먹었다니 말이다.

돼지 수육에 대한 추억이 이처럼 가득한데 의사 선생님이 몸에 꼭 필요한 단백질 공급원이라 하니 당장 해 먹기로 마음을 먹었다. 정육점에 들러 돼지고기 앞다릿살을 사 저녁 돼지 수육 조리에 나섰다.

준비물은 다음과 같다. 돼지고기 앞다릿살 600g, 양파 1개, 마늘 5쪽, 생강 약간, 대파 6개(흰 부분만), 월계수 잎 3~4장, 된장 1큰술, 간장 1큰술, 청주, 맛술 각 1큰술.

돼지고기 앞다릿살, 양파, 대파, 월계수잎을 준비한다. [사진 민국홍]

돼지고기 앞다릿살, 양파, 대파, 월계수잎을 준비한다. [사진 민국홍]

준비물을 냄비에 넣고 끓이다가 한소끔 끓으면 인스턴트 커피 2큰술을 넣어 준다. 돼지 잡냄새를 완전히 없애기 위함이다. 돼지 수육은 센 불에서 점차 약한 불로 양에 따라 40~50분 정도 끓여준다.

돼지 수육의 생명은 무엇보다 잡냄새를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고 촉촉한 식감을 끌어내는 것은 다음 문제이다. 끝으로 취향에 따라 된장만 넣을지 아니면 간장을 섞어 넣을지를 정하면 된다.

방금 냄비에서 꺼낸 돼지 수육 첫 작품을 칼로 잘게 썬 다음 채소 쌈을 기본으로 하고 도토리묵을 곁들여 저녁을 했다. 잡내가 전혀 없었고 육즙이 참으로 고소했다. 수육에 와인을 곁들여 먹다가 지난 2008년 8월 이탈리아 토스카나지방의 어촌 싼번천초의 감베르로소라는 레스토랑의 일이 떠올랐다. 이날도 돼지고기에다 사시카이아(일명 이건희 와인)를 먹었다.

여자프로골프협회 전무 시절 당시 홍석규 회장을 모시고 브리티시 여자오픈을 참관하러 영국을 방문했다가 귀국하는 길에 2박 3일로 이탈리아에 들러 와이너리 순례를 하던 참이었다.

미슐랭 별표 하나를 받은 이 음식점은 새우요리가 유명한데 메인요리의 하나로 돼지 수육 같은 것을 내놓았다. 구운 것도 삶은 것도 아니고 그 중간이었던 것 같은데 먹어보니 삼겹살 맛도 나 이런 게 과연 유명 셰프가 만드는 음식인가 싶었다.

한창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는 외손녀가 할머니를 위한 축하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 민국홍]

한창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는 외손녀가 할머니를 위한 축하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 민국홍]

그런데 사시카이아 와인 한 모금과 곁들이니 고기 맛도 살아났고 와인도 이루 말할 수 없는 강렬한 풍미를 선사했다. 워낙 유명한 와인인데다 와인에 함유되어있는 타닌이 기름진 맛을 잡아 음식의 완성도를 높였던 것 같다.

다음날 회사에서 홍 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과거 추억을 말해드리고 돼지 수육을 직접 시도해 보았다고 이야기를 했다. 또 와인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회장이 선뜻 사시카이아 1병을 선물로 주는 게 아닌가. 뜻밖의 횡재다.

지난 7월 아내 생일날. 직접 만든 돼지 수육에다 회장한테서 받은 사시카이아로 와인 파티를 했다. 돼지 수육에 와인은 참으로 환상적인 조합이다. 외손녀가 한창 배우고 있는 바이올린으로 축하를 해주어 한없이 행복했다.

돼지 수육은 누구도 할 수 있는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음식이지만 이 요리만큼 여러 사람을 한자리로 부를 만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이날 자식들을 불러 수육을 안주로 와인을 하면서 서로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웠다. 매일 이런 자리가 계속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추서: 지난해 번역을 하느라 모니터에 매달려 있다가 일자 목 현상이 악화하였다가 지금은 물리치료에다 꾸준한 스트레칭으로 많이 좋아졌다. 더욱이 건강한 식단으로 음식을 해 먹고 있어 몸이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정리] 돼지 수육 만드는 법

[재료]
돼지고기 앞다릿살 600g, 양파 1개, 마늘 5쪽, 생강 약간, 대파 6개(흰 부분만), 월계수 잎 3~4장, 된장 1큰술, 간장 1큰술, 청주 1큰술, 맛술 1큰술, 인스턴트 커피 2큰술

[조리순서]
1. 재료를 냄비에 넣고 끓인다.
2. 한소끔 끓으면 인스턴트 커피 2큰술을 넣는다.
3. 센 불에서 점차 약한 불로 양에 따라 40~50분 정도 끓여준다.
4. 취향에 따라 된장만 넣거나 간장을 섞어 넣는다.

민국홍 KPGA 경기위원 minklpg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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