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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 투혼 이겨낸 성기라-황명세, 한국 주짓수의 희망 밝혔다

중앙일보

입력

성기라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주짓수 여자 62kg급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기뻐하고 있다. [뉴스1]

성기라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주짓수 여자 62kg급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기뻐하고 있다. [뉴스1]

"앞으로 다리를 못쓰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경기 뛰겠습니다." 코칭스태프의 만류도 그의 고집을 말릴 순 없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선수 최초로 금메달을 따낸 성기라(22) 이야기다.

성기라는 지난달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주짓수 여자 62㎏급 결승에서 싱가포르의 티안 엔 콘스탄스 리엔을 4-2로 제압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주짓수는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됐고, 성기라는 사상 첫 금메달을 따내며 대한민국 주짓수 역사에 영원히 이름을 남기게 됐다. 성기라는 1m67cm의 큰 키에다 힘이 좋아 그동안 각종 국제 대회에서 자신보다 체구가 큰 서양 선수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둬왔다.

그러나 이번 아시안게임에선 첫 경기부터 부상을 입는 불운을 겪었다. 1회전에서 필리핀의 애니 라미레즈를 상대로 21-0으로 승리했지만 무릎 외측 인대에 부상을 입었다. 수많은 대회장을 누빈 그였지만 토너먼트 첫 대진에서부터 부상을 입은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하지만 성기라는 8강, 4강을 모두 큰 점수를 벌이며 압도적인 실력을 과시했고 마침내 금메달까지 따냈다. 그는 "첫 경기에서 다쳐서 계획이 완전히 망가졌다. 부상은 당연하다고 여기고 끝까지 싸웠다"고 말했다.

꺾이지 않는 투지를 보여준 건 성기라 뿐이 아니었다. 남자 94㎏급 황명세(32)도 왼 무릎 부상을 이겨냈다. 황명세는 준결승까지 3연승을 거뒀고, 주짓수 수준이 높은 아랍에미리트(UAE)의 왕자인 파이살 알케트비와 만났다. 황명세는 0-0으로 맞섰으나 어드밴티지에서 앞선 알케트비 왕자에게 승리를 내줬다. 하지만 동메달결정전에서 카자흐스탄의 라마잔 쿠사이노프를 상대로 조르기에 의한 서브미션 승리를 거두고 값진 동메달을 따냈다.

황명세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주짓수 남자 94kg급 메달 세리머니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고 있다. [뉴스1]

황명세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주짓수 남자 94kg급 메달 세리머니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고 있다. [뉴스1]

황명세는 "상대의 영상을 봤는데 기습적으로 점프해서 암바를 쓰더라. 조심하려고 했고 마침 암바를 걸어 왔다. 방어하고 뒤를 잡아 조르기로 끝냈다"고 설명했다. 수술을 미루고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황명세는 "고민을 하다가 출전을 했고 결국 메달도 땄다. 막상 올라가니 긴장이 돼서 통증도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아쉽지만 최선을 다했다. 여러 경기를 치러야 해서 힘들었다. 체력이 더 좋았다면 적극적으로 했을 것 같다. 지나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주짓수는 실전격투 성향이 강한 종목으로 종합격투기 UFC 등에서 뛰는 선수들도 연마를 하는 격투기다. 이번 대회에서는 그라운드 기술 위주의 네와자 방식으로 남자 6체급, 여자 2체급 등 8개의 메달의 주인공을 가렸다. 성희용 선수단장은 "두 선수 모두 전력 노출이 심한다. 이미 수많은 국제 대회에서 뛰어난 성적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경기 스타일과 장단점이 파악된 상태였다. 우리나라가 급하게 출전하여 준비가 아예 없었던 것에 비해 많은 국가, 특히 싱가폴 등은 체급당 2명의 선수가 포진해 있었다. 두 개의 메달을 땄지만 개인적으로는 10개 이상의 값어치가 있는 성적이라 자평한다”고 말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는 무도 종목에 49개나 되는 많은 메달이 걸렸다. 국제화에 성공한 유도와 태권도에 이어 우슈, 삼보, 유럽의 유도라 일컬어지는 크라시(Kurash), 대회가 열리는 인도네시아의 전통 무술인 팬칵실랏(Pencak Silat), 그리고 주짓수(JUJITSU)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문제는 삼보, 팬칵실랏, 크라시였다. 국제대회 채택이 처음이라 그동안 체계적인 조직를 갖추지 못했고, 결국 대한체육회 가맹조건조차 갖추지 못했다. 그러나 4년 전부터 대한체육회 가맹을 목표로 꾸준히 활동하던 대한주짓수회는 6월 22일에 체육회에 가맹해 아시안게임에 출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협회가 만들어지자마자 15일 만에 최초의 국가대표 선발전이 치뤄졌고, 국가대표 16명이 선발되었다. 하지만 특정 선수가 곧바로 결승전에 오르는 파행적인 대진이 논란이 됐다. 해당 선수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가 인정하는 종목 대회에서 꾸준히 포인트를 쌓은 선수지만 체육회의 권고에 따라 최종 선발전이 열렸다.

국내 선발전이 끝난 뒤에도 험난한 과정이 이어졌다. 국제연맹을 통해 여러 국가가 연맹 규정을 문제 삼았다. 체육회에 가맹된지 1년이 경과되지 않아 아시안게임에 출전해서는 안 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성 이사는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뒤 UAE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브라질 지도자를 초빙하는 것은 물론, 체계적인 훈련으로 선수를 발굴했다. 생활체육 기반인 한국에 비해 많은 지원을 받았다. 게다가 한국 선수들은 이미 세계대회에 출전하고 있어 견제대상으로 꼽혔다"고 전했다.

아시안게임 첫 출전에서 2개의 금메달을 따냈지만 한국 주짓수의 국제 대회 도전은 이제부터 시작이래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 단장은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으나 한국 주짓수는 역시 갈 길이 멀다. 좋은 선수들을 발굴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다행히 유소년 선수들이 늘고 있고, 관련 산업의 성장도 가파르다"고 말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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