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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철원·인제 비만율 1·2위 … 도시보다 더 뚱뚱한 농촌, 도대체 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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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2호 14면

전국 비만지도 분석해보니

건강을 위해 시골에서 살고 싶다면 생각을 바꾸는 게 좋겠다. ‘2017 비만백서’를 보면 농촌 지역의 비만율이 도시 지역을 압도한다. 왠지 건강할 것 같은 강원도가 광역시도별 비만율에서 1위(32.51%)를 차지했고, 고도비만과 초고도비만에선 제주도(고도비만 5.73%, 초고도비만 0.58%)가 최고였다. 시군구별로 봐도 강원도 철원군·인제군을 필두로 11위까지 군 지역이고, 도시는 12위 강원도 삼척시가 끼어있는 정도다.

농촌 비만 심각 #전국 비만율 ‘톱 10’ 모두 군 지역 #서해·호남 섬, 제주·울릉도도 높아 #생활·식습관 문제 #경운기·차로 이동, 옛날보다 덜 걸어 #떡 등 탄수화물 즐기고 술 자주 마셔 #성인병 증가 #대사증후군·관절질환 유병률 높아 #냉소적이고 화 잘 내 우울증 시달려 #정책 사각지대 #당국도 주민도 비만에 신경 안 써 #지역 특징에 맞는 최적 대책 세워야

그런데 농촌 지역의 비만을 대하는 정책당국의 태도는 묘하다. 보건복지부, 국민건강보험공단, 식품의약품안전처, 농림축산식품부, 농업진흥청 등 국민과 농민 건강을 관리하는 관계부처 담당자를 접촉했지만 ‘비만백서’를 제외하곤 실태·현황·원인·대책에 대한 기초자료조차 얻을 수 없었다. 비만율이 가장 높은 강원도 담당자 역시 아무 자료도 내놓지 못했다. 이 지역 몇 개 보건소들도 “체감하지 못한다”거나 “통계가 잘못된 것 아니냐”는 반응이었다. 한 보건소장은 "자료 제출 당시 실측이 아니라 물어서 키와 몸무게를 낸 터라 통계가 잘못됐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농촌 비만은 철저하게 무시와 무관심, 정책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정부, 실태 파악 기초 자료도 없어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실제로 ‘농촌 비만’은 정책당국이 무시해도 좋을 만큼 심각하지 않은 것일까. 이에 몇몇 의사와 연구자들이 ‘그렇지 않다’는 자료를 제시했다. 임수 분당서울대병원 교수는 경기도 안성·안산에서 도시와 농촌 지역 주민 5000명씩을 대상으로 2001년부터 대사증후군 유병률을 추적조사해 그 결과를 2006년에 발표했다. 대사증후군은 복부비만과 당뇨병, 고지혈증, 고혈압 등 각종 성인병이 한 개인에게 여러 개가 겹쳐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이 조사 결과, 농촌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비만과 성인병 유병률이 훨씬 높았다. 대사증후군 유병률은 농촌 지역이 29.3%로, 도시(22.3%) 주민보다 7%포인트 높았고, 복부비만(46.9%)과 고혈압(45.2%) 비율도 높았다. 임 교수는 “당시 농촌 지역 주민들이 복부비만도 높고 대상증후군에 훨씬 취약한 결과가 나온 걸 보고 놀랐었다”고 말했다. 이 연구 이후에 나온 농촌 주민들의 비만과 성인병 문제를 연구한 연구물들은 찾기 어렵다. 임 교수 역시 지금은 더 이상 조사하지 않는다고 했다. 개인 연구자가 실태를 파악하기엔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오상우 동국대 일산병원 교수는 그동안 나왔던 비만 통계를 기초로 2005년부터 5년 단위로 나눠 전국비만지도를 만들었다. 이 지도를 보면 2005년만 해도 강원도, 서해와 호남 도서 지역에 비만율이 조금 높았지만 전반적으로는 심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2015년에 이르면 전국적으로 비만율이 확 높아진다. 특히 강원도와 서해·호남 도서 지역과 울릉도·제주도 등 섬 지역 비만이 심각한 상태로 드러났다.

농촌 주민들의 비만 이유와 실태의 일단을 사례를 통해 알려준 사람은 이종선 청주대 산업디자학과 교수였다. 그는 공공의료서비스디자인 연구를 하면서 사용자 편의 디자인을 위해 소비자를 직접 만나 관찰하는 일을 주로 하던 중 지난해 오 교수팀과 함께 프로젝트를 시작해 비만도가 높은 강원도 철원군, 인천시 옹진군의 섬 지역을 돌며 60~70대 고령층의 농촌 비만을 관찰하고 면담했다. 이 교수의 관찰일기 속 사연은 다양했고, 섬과 내륙 지역의 생활패턴도 달랐지만 공통적인 내용이 있었다. 심심하다/ 운동을 하거나 외출을 하는 등의 움직임이 부족하고, 밖에 나갈 때는 승용차나 경운기를 탄다/ 집에 먹을 게 많다. 인스턴트 음식이나 과자, 떡과 같은 탄수화물 음식이 주류를 이룬다/ 저녁엔 이웃들과 혹은 혼자서 술을 늦게까지 마시고, 곧바로 잠자는 경우가 많다/ 자신은 건강식을 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살 찔 이유가 없는데 살이 찐다고 하소연한다/ 다양한 신체적 질환을 앓고 있다.

앉는 자리가 식사자리이자 잠자리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생활패턴은 대략 이렇다. 철원에 사는 70대 A씨는 아침 4시30분쯤 일어나 밭을 돌보거나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들어와 7시에 아침식사를 하고, 다시 잠을 잔다. 점심에 일어나 떡과 과일, 커피(믹스커피)를 3봉지 정도 사발로 마신다. 저녁은 격일로 동네 사람들과 모여 술을 곁들여 이야기하며 늦게까지 모여 먹고 마신 뒤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잔다. 집에서 저녁을 먹는 날도 역시 술을 곁들여 식사를 한다.

옹진군의 한 섬에 사는 60대 여성 B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텃밭을 돌보고, 저녁엔 너무 피곤해 밥만 먹고 곧바로 잠자리에 든다. 비만과 당뇨를 앓고 있으며, 면사무소에서 하는 요가 프로그램에도 다녀봤지만 지금은 프로그램 시간이 맞지 않아 운동을 하지 않는다. 섬 안에선 이동거리가 멀어 주민센터에 가려면 남편이 태워주는 차를 타야 하기 때문에 가기 힘들다. 이웃과 함께 어울리기보다 집안에 머무는 일이 많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일하는데 살이 찌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이 교수는 “농촌 주민들은 살찔 수밖에 없는 생활환경 속에서 사는 것으로 보였다”고 했다. 먼저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일상적 식습관과 살찌는 음식에 대한 지식이 낮다는 것. 농민들은 새벽 일찍 일어나 일한 후 배불리 밥 먹고 소화할 겨를도 없이 아침잠을 자고, 일어나서 반주를 곁들여 점심을 먹고, 저녁에는 이웃들과 술상을 벌이는 일상이 반복된다. 떡, 과일, 과자, 인스턴트 음식이 집에 너무 많이 쌓여 있다. 특히 떡과 과일은 살이 안 찌는 건강식이라고 주장한다.

고령층 운동 못해 비만·성인병 악화

시골생활의 심심함도 비만의 원인으로 꼽는다. 내륙 농촌의 경우 이웃들과 거의 매일 술자리를 갖고 소화도 되기 전에 곧바로 잠자리에 든다. 섬 지역은 이웃과의 어울림보다 혼자 TV를 보며 과자나 떡 등을 계속 먹는 습관이 있다. 농촌에선 배만 볼록 나온 복부비만이 많은데, 이 같은 여가 활용 방식이 문제일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복부비만의 경우 “배만 나왔을 뿐 뚱뚱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아 비만에 대한 이해도도 낮은 편이다.

또 공간의 구별이 없어 ‘앉는 자리가 식사자리, 눕는 곳이 잠자리’라는 것도 문제다. 식탁엔 주로 음식 부자재를 쌓아놓아 식탁 기능을 하지 못한다. 안방에서 잠자고, 먹고, TV 보는 등 집안 공간 구성 자체가 한자리에서 먹고 자는 데 최적화돼 있었다.

비만은 농촌 주민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일단 많은 농촌 고령층의 경우 기본적으로 고지혈증, 당뇨, 고혈압 등 성인병 3종 세트 약을 복용하고 있고, 농부병이라는 관절질환을 앓는데 여기에 몸무게 부하로 관절 상태가 악화돼 걷는 게 부자연스럽다. 이 때문에 운동을 못해 비만과 성인병은 악화된다. 이 교수가 특히 심각한 문제로 지적한 것은 이로 인한 우울성향이었다. 상담을 했던 농촌 주민들은 반응이 냉소적이고, 쉽게 화를 냈다. 이로 인해 부부 갈등이 깊고, 가족관계가 나빠지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지역별 주민센터와 보건소에 교육과 운동프로그램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교통편이 좋지 않은 농촌에서 너무 먼 거리에서 이루어지는 프로그램은 그림의 떡이고, 섬 지역은 배가 들고나는 시간 때문에 주민이 이용하기 어려운 시간에 프로그램이 몰려 있어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농촌은 지역마다 생활환경과 문화가 각각 다르고, 대사증후군뿐 아니라 근골격계 관절질환 등 연관된 질병도 도시와 달라 획일화된 프로그램으로 대처하기 어렵다”며 “지역별로 조사를 통해 지역에 맞는 최적화된 비만대책을 각각 마련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양선희 선임기자 sun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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