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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평양의 모감주나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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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남중 기자 중앙일보
김남중 논설위원

김남중 논설위원

6월 하순 지나 장마 소식이 들리는 무렵이다. 태안 안면도나 완도 대문리 바닷가에 가면 색다른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모감주나무 군락이 꽃을 피워서다. 꽃이 황금색인 까닭에 마치 하늘에서 황금비가 내리듯이 보인다. 영문명이 ‘Goldenrain Tree’인 것도 그래서다. 꽃과 열매가 아름다워 보기에 좋으나 희귀 수종이다. 이 두 곳의 모감주나무 군락이 천연기념물(제138호, 제428호)인 이유다.

모감주나무만큼 사람의 마음과 몸에 두루 이롭게 여겨지는 나무도 드물다. 『동의보감』에 무환자피(無患子皮)를 ‘모관쥬나모겁질’이라 한글 토를 달고 약효를 설명한 대목이 있다. ‘씨 속 알맹이를 태워 냄새를 피우면 악귀를 물리칠 수 있다’는 거다. 실제로 간염·요도염·소화불량·장염 등에 치료제로 쓰인다. 그보다는 광택이 나는 흑빛 씨앗으로 염주를 만드니 ‘우환을 없애 주는 나무’로 알맞다. 별칭이 ‘염주나무’다. 해안선에 숲을 이뤄 바닷바람을 막아주니 방풍림이요, 물고기 떼를 끌어들이니 어부림이다.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방북한 문재인 대통령이 그제 평양 백화원 앞 정원에 심은 나무가 남한에서 가져간 모감주나무다. 나무말이 ‘번영’이다. 황금색 꽃이 피는 데다 열매가 많이 달리니 그럴 만하다. 기념식수는 ‘상징’을 남기는 행위다. 그래서 번영을 상징하는 이 나무가 노거수(老巨樹)가 되길 바라는 건 당연하다. 문 대통령이 북측 인사들에게 건넨 “한 번씩 와서 점검해 주기 바란다”는 말에 그 마음이 담겼을 터다.

모감주나무는 주로 ‘황해도·강원도 이남’의 ‘바닷가’에서 ‘군락’을 이뤄 자생한다. 이런 생태적 특성을 가진 나무에 ‘평양’은 낯선 입지 환경이다. 그러나 그리 염려할 일은 아니지 싶다. 내륙 한복판에 형성된 제천 복평리 모감주나무 군락(시·도기념물 제155호)이나 홀로 서서 300년 풍상을 받아낸 안동 송천동 모감주나무(제50호)를 보면 말이다. 게다가 지구온난화로 식물 서식지가 북으로 확장 중이다.

훗날 통일된 나라에 여름 장마 북상 소식이 들리거든 백화원에 한번 놀러 갈 일이다. 그때쯤 모감주나무가 군락을 이뤄 한창 황금비를 내리고 있을 터다. 남쪽 나무가 평양에 자리하게 된 연유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말이다. 모감주나무의 꽃말이 ‘자유로운 마음’이란다. 염주를 낳는 나무이니 ‘염원’이란 의미도 품었을 게다. 그럴진대 평양에 심어진 모감주나무를 빌려 ‘번영된 통일 한반도’를 자유로운 마음으로 염원하는 걸 허물할 일은 아닐 듯싶다.

김남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