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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에 공 넘긴 김정은식 비핵화 이벤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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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9일 두 번째 정상회담을 마친 뒤 9월 평양공동선언에 합의했다.

평양공동선언 합의문에 담긴 동창리

두 정상은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평양공동선언문 내용을 발표했다. 그 중 특히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비핵화와 관련한 내용이다.

문재인 대통령 평양 방문 이틀째인 19일 오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남북정상회담 메인프레스센터 대형모니터에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9월 평양공동선언문 서명식을 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모습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 평양 방문 이틀째인 19일 오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남북정상회담 메인프레스센터 대형모니터에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9월 평양공동선언문 서명식을 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모습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합의문 다섯 번째 항은 ‘남과 북은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진전을 조속히 이루어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였다’고 명시했다.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북측은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하에 우선 영구적으로 폐기하기로 하였다
② 북측은 미국이 6.12 북미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 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하였다
③남과 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해나가는 과정에서 함께 긴밀히 협력해나가기로 하였다.

이같은 내용은 6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이후 교착 상태에 빠진 북·미관계의 중재자 역할을 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합의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과 미국이 각각 상대에 요구하는 바를 일부 양보하도록 하는 타협안이기 때문이다.

미국 북한 전문매체 38노스가 지난 3일 촬영된 위성사진 판독 결과, 북한의 탄도미사일 엔진시험장이 있는 평안북도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 해체작업이 진척을 보인다고 전했다.   사진은 38노스가 행정안전본부시설 앞 건설차량 등으로 설명한 위성사진. [연합뉴스]

미국 북한 전문매체 38노스가 지난 3일 촬영된 위성사진 판독 결과, 북한의 탄도미사일 엔진시험장이 있는 평안북도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 해체작업이 진척을 보인다고 전했다. 사진은 38노스가 행정안전본부시설 앞 건설차량 등으로 설명한 위성사진. [연합뉴스]

지난 7월 북한 전문매체 38노스는 위성촬영 사진 분석 결과를 토대로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해체작업이 시작됐다”고 전했다. 이어진 후속 분석에서도 탄도미사일과 우주발사체를 개발하기 위해 엔진시험을 하던 수직 엔진시험대 해체 작업이 진행 중이고 연료와 산화제 탱크를 제거하는 작업도 식별되었다고 한다. 발사대 또한 상당 부분 해체가 진행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북·미 대화 이후 북한이 구체적으로 약속 이행에 나선 셈이다. 당시 CNN은 소식통을 인용 “북한의 이번 조치는 미국의 ‘화답’을 기대하는 것”이라며 “향후 미·북 협상은 미국이 ‘과감한 조치’, 그리고 (북한이 원하는) 평화협정에 동의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북미 협상의 주역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우리는 엔진시험장을 해체할 때 현장에 감독관(inspector)을 있게 해달라고 요구해 왔다”는 것이다.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도 “분명 ‘검증’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something paramount)”며 “적법한 그룹들이 참여하는, 그리고 적법한 국가들에 의해 이뤄지는 검증이 미국 정부가 추구하는바”라고 덧붙였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에 이어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까지 해체했음에도 미국은 충분한 진전으로 평가하지 않은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모두 발언 후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리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모두 발언 후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리고 있다. [AP=연합뉴스]

반면 북한은 검증 요구에 답하지 않은 채 ‘풍계리·동창리’를 통해 상응하는 조치를 얻고자 했다. ‘상응하는 조치가 이뤄진다면 비핵화를 위한 보다 적극적인 조치들을 계속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풍계리 폭파와 동창리 미사일 실험장 해체를 국제사회가 잘 알아주지 않는다고 섭섭함을 표하기도 했다.

타협이나 중재 없이는 교착이 이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이번 평양공동선언 합의문에서 그 타협안이 제시됐다.

먼저 북한은 미국이 요구한 전문가 검증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합의문은 ‘북측은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하에 우선 영구적으로 폐기하기로 하였다’고 명확히 적시했다.

이어 미국이 상응 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가겠다는 북한의 의지를 다시 강조했다.

지난 북·미 정상회담 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한 약속을 지키겠다고 천명하면서, 미국으로 공을 넘겨 압박하는 모양새다.

결과는 다음주 미국 뉴욕에서 열릴 예정인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어떻게 설득하느냐에 달려있다.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이 전문가 참관 요구를 받아들이도록 한 것처럼, 미국의 ‘상응 조치’를 얻어낼 수 있을지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평양=공동취재단,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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