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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땅 한 번 밟아봤으면…”속초 아바이마을 실향민들의 희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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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고향 집을 한 번이라도 볼 수 있었으면…”

북에 어머니와 큰형, 누나, 여동생을 두고 온 실향민 김건욱(85) 할아버지. 박진호 기자

북에 어머니와 큰형, 누나, 여동생을 두고 온 실향민 김건욱(85) 할아버지. 박진호 기자

18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이 3차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에 도착하자 실향민 마을인 강원도 속초시 청호동 아바이마을 주민은 한껏 기대에 부푼 모습이었다.

속초 아바이마을 실향민 1세대 100명 남아 #최북단 고성 명파리 주민도 금강산 관광 재개 기대

함경남도 북청군 양화면이 고향인 김진국(79) 할아버지는 “어릴 적 뛰어놀던 산천과 고향 초가집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생을 마감하기 전 고향에 한 번은 가보는 게 도리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남북 관계가 앞으로 더 좋아져 고향 땅을 꼭 한번 밟고 싶다”고 말했다.

6·25전쟁 때 가족과 함께 부산까지 피난을 갔던 김 할아버지는 고향에 가기 위해 북에서 가까운 속초 아바이마을에 정착했다. 하지만 1953년 정전협정으로 38선이 그어지면서 귀향의 꿈은 산산이 부서졌다.

이후 금강산 관광의 문이 열리면서 두 차례나 금강산을 방문했다. 그러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눈만 감아도 고향의 풍경이 더욱 또렷하게 떠올랐다. 김 할아버지는 “어린 시절 다니던 학교와 친구, 친척들이 너무나 보고 싶다”고 말했다.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 폐허가 된 동해안 최북단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 마을. 박진호 기자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 폐허가 된 동해안 최북단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 마을. 박진호 기자

함경남도 홍원군이 고향인 김건욱(85) 할아버지도 이번 정상회담에 거는 기대가 크다.

김 할아버지는 “요즘 같이 길이 좋으면 고향까지 차로 3시간이면 갈 수 있다”며 “지금처럼 좋은 분위기가 이어지면 언제가 고향에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 할아버지는 17살이던 1950년 12월 아버지, 작은형과 함께 남한으로 가는 목선에 오르면서 어머니와 헤어졌다. 청호동 아바이마을은 국내에서 유일한 실향민 집단정착촌이다. 현재 남아 있는 실향민 1세대는 100여 명이다.

동해안 최북단 마을인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 주민들도 이번 남북정상회담으로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길 기대하고 있다.

명파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경애(58·여)씨는 “남북 정상이 이렇게 자꾸 만나다 보면 언젠가는 (금강산 관광이) 다시 열릴 것”이라며 “관광객들이 북한을 오갈 수 있게 되면 고성지역도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 폐허가 된 동해안 최북단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 마을. 박진호 기자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 폐허가 된 동해안 최북단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 마을. 박진호 기자

고성 현내면 명파리 마을은 2003년 9월 금강산 육로 관광이 시작되면서 호황을 누렸다. 매년 20만명을 넘는 관광객이 금강산을 찾기 위해 명파리 마을을 찾았다.

하지만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당시 53·여·서울)씨가 북한 장전항 인근에서 북측 초병의 총격을 받아 숨지면서 금강산 관광이 전면 중단됐다. 이후 고성군 지역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다.

고성군에 따르면 2008년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 2012년까지 5년간 고성군 휴·폐업한 업소는 386곳에 달한다. 고성군의 파악한 경제적 손실만 3300억원이다.

이와 함께 경기도 파주시 민통선 안에 있는 마을 주민들도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민통선 내 해마루촌 조봉연 농촌체험마을추진위원장은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꼭 성공해 북한의 비핵화가 성사되는 확실한 계기가 마련됐으면 한다” 며 “경의선 철로와 남북 육로를 통한 남북 간 인적·물적 왕래가 활성화되면 민통선 마을도 발전의 전기를 맞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속초·파주=박진호·전익진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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