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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의 밀담] 죽어라 걷는 '알보병' 사라진다···육군의 또 다른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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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트는 새벽 꿈에, 고향을 본 후….”

육군 장병이 행군을 하는 모습. [사진 육군]

육군 장병이 행군을 하는 모습. [사진 육군]

군가 ‘행군의 아침’은 이렇게 시작한다. 6ㆍ25 전쟁 중이던 1952년 만들어진 이 군가는 전장으로 행군하는 병사의 모습을 그렸다. 육군 10대 군가로 불린다.

행군은 ‘단일 지휘관의 지휘통제 아래 동일한 도로를 사용해 단일 이동하는 일’을 뜻한다. 행군은 전 부대원이 편제와 전투력을 유지하면서 움직이는 군사작전이다. 그래서 대부분 완전군장(전투군장의 경우 무게 약 40㎏)을 한다. 또 이동 거리가 보통 수십㎞다. 목표 지점까지 일정 시간 안에 도착해야만 한다. 이 때문에 먼 길을 빨리 걸어야 한다. 도중 산을 타거나 강을 건너는 경우도 있다. 잠깐 쉬는 시간을 빼면 앞 사람 군화만 바라보고 터벅터벅 걷는 게 행군이다.

신세대 장병은 ‘헬(hell)군’이라고도 부를 정도로 행군을 싫어한다. 갈라진 발바닥, 진물과 피고름은 행군의 상징이다. 그래서 ‘차량이 있는 데 왜 굳이 행군을 해야만 하냐’는 볼멘 소리가 나온다.

육군 전체 병력의 65%가 ‘알보병’

하지만 지금까지 육군은 보병의 핵심은 행군이라고 강조했다. 전시 차량을 탈 수 없는 상황이나 차량이 통과할 수 없는 지형에 대비하기 위한 훈련이라면서다. ‘싸워 이기는 군대’를 앞세우며 천리행군을 되살린 적도 있다. 1000리(里)라면 392㎞가 넘는다.

지난 2016년 2월 육군 제20 기계화보병사단(양기사) 전투장비 기동훈련. 이날 훈련에는 K2전차, K21장갑차, K9 자주포,K30복합비호 등 총 300대가 동원됐다. 육군은 20사단처럼 기갑부대는 아니더라도 차량과 장갑차로 알보병을 기동화하는 부대로 전면개편할 예정이다. [중앙포토]

지난 2016년 2월 육군 제20 기계화보병사단(양기사) 전투장비 기동훈련. 이날 훈련에는 K2전차, K21장갑차, K9 자주포,K30복합비호 등 총 300대가 동원됐다. 육군은 20사단처럼 기갑부대는 아니더라도 차량과 장갑차로 알보병을 기동화하는 부대로 전면개편할 예정이다. [중앙포토]

육군에 입대하면 제대할 때까지 죽어라 행군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차량이 부족해서다. 차량을 사서 굴리는 데 예산이 든다. 보병을 태우는 차량보다는 전차와 자주포, 헬기가 더 급하다고 육군은 판단했다. 그래서 아직도 육군 전체 병력의 65%가 ‘알보병’인 게 현실이다.

그러던 육군이 변했다. 육군을 대표한다던 알보병을 버리겠다고도 한다. ‘행군의 시대’가 곧 저물 전망이다. 그렇다고 행군 훈련을 안 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전장의 환경이 알보병만으로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도록 바뀌었기 때문에 이에 따라 육군도 변하겠다는 것이다.

모든 보병을 차량과 장갑차에 태우겠다는 육군 

지난 13일 육군이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한국국가전략연구원과 함께 연 미래지상군발전 국제심포지엄에서 김용우 육군 참모총장은 ”지금 육군은 워리어 플랫폼, 드론봇 전투체계, 아미 타이거(Army Tiger) 4.0 등을 구현하며 최첨단 과학군으로 변혁해가고 있다“고 밝혔다. 워리어 플랫폼은 육군의 워리어(전투원)가 갖고 다니는 총기ㆍ군복ㆍ장비를 일컫는 플랫폼(체계)의 수준을 끌어 올리는 사업이다. 드론봇 전투체계는 드론과 로봇을 전투에서 이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해 육군이 시작한 실험들이다.

 2017년 7월 강원도 철원군 지포리 훈련장에서 수도기계화보병사단 소속 K21 보병전투차에서 보병들이 하차 전투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

2017년 7월 강원도 철원군 지포리 훈련장에서 수도기계화보병사단 소속 K21 보병전투차에서 보병들이 하차 전투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

여기에 더 해 아미 타이거는 육군을 의미하는 아미(Army)와 4차 산업혁명기술로 강화된 지상군의 혁신적 변화(Transformative Innovation of Ground forces Enhanced by the 4th industrial Revolution technology)의 앞글자를 딴 합성어다. 4.0은 4차 산업혁명을 의미한다. 육군의 캐릭터인 호국이는 백두산범이다. ‘아미 타이거’엔 이런 의미도 숨어 있다.

육군을 상징하는 캐릭터 호국이. 백두산범을 친근하게 그린 것이다.

육군을 상징하는 캐릭터 호국이. 백두산범을 친근하게 그린 것이다.

육군은 참고 자료를 통해 아미 타이거 4.0이 ‘도보 위주의 보병을 기동화ㆍ네트워크화하고 4차 산업혁명의 AI+ICBM 기술을 접목, 생존성과 전투 효율성을 극대화시켜 미래 다양한 불특정 위협에 더 빠르고 치명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전투체계’라고 설명했다.

차륜형 장갑차와 소형 전술차량이 핵심

쉽게 풀자면 모든 보병(산악여단이나 공수부대, 특수부대는 제외)이 차량과 장갑차를 타고 다니는 것이다. 차량은 방탄으로 보호된다.

아미 타이거 4.0의 핵심은 기동력이다. 육군의 핵심 관계자는 “그동안 기동화에 너무 신경을 안 쓴 게 사실”이라며 “워리어 플랫폼이 보급되면 한 명의 장병이 갖춰야 하는 장구의 무게가 늘고, 야시장비 등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충전해야 한다. 이를 해결하려면 보병이 차량과 함께 다니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걸어 다니던 알보병을 차량과 장갑차로 기동화하면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으며, 방호력과 생존성을 높여 줄 수도 있다.

육군이 보급하고 있는 소형 전술차량. 용도에 따라 다양한 파생형이 있다. 사진은 기갑 수색차량. 육군은 보병의 기동화를 위해 이 같은 소형 전술차량을 더 늘리려 한다. 이철재 기자

육군이 보급하고 있는 소형 전술차량. 용도에 따라 다양한 파생형이 있다. 사진은 기갑 수색차량. 육군은 보병의 기동화를 위해 이 같은 소형 전술차량을 더 늘리려 한다. 이철재 기자

군사 전문 자유 기고가인 최현호씨는 “한국 육군은 다른 나라와 비교하며 기동화에서 많이 뒤졌다”며 “아미 타이거 4.0은 기동화를 단숨에 따라 잡으려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육군 핵심 관계자도 “세계 대부분 나라의 보병은 이미 기동화가 완성됐고, 알보병은 후진국에만 있다. 선진국은 산악전투 목적의 부대만 알보병으로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육군은 얼마전 전력화하기 시작한 차륜형 장갑차와 소형 전술차량을 대량으로 보급할 예정이다. 소형 전술차량의 크기를 1개 분대가 탈 수 있도록 키우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또 기계화 부대를 개편하면서 K200 장갑차가 상당수 남게 되는데 이를 개량한 뒤 보병 부대에 넘겨줄 예정이다.

아미 타이거 4.0은 알보병을 단순히 차량에 태우는 게 아니다. 차량과 장갑차마다 센서(sensor)와 슈터(shooter)가 달려 있다. 센서는 적을 찾아대는 장비고, 슈터는 적을 공격하는 장비다. 센서와 슈터 기능을 함께 하는 장비로 원격사격체계(RCWS)가 있다. 육군 관계자는 “모든 차량과 장갑차에 RCWS를 장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격사격체계로 차량 안에서도 정찰과 사격을

RCWS는 차량과 장갑차 안에서 모니터를 통해 밖의 표적을 발견한 뒤 리모컨으로 기관총과 같은 외부 공용화기를 발사하는 무기체계다. 이라크와 같은 중동 지역에서 게릴라들이 ‘히트 앤드 런’ 방식의 시가전을 벌이면서 차량과 장갑차 사수의 피해가 늘자 이에 대한 대안으로 나온 게 RCWS다. 그동안 RCWS는 직접 밖에서 바라보는 시계와 차이가 있고, 차량과 장갑차가 이동하면 영상이 흐려지는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 기술의 발전으로 이 같은 문제점은 많이 개선됐다.

한화 지상방산이 DX 코리아 2018에서 선 보인 RCWS. 육군은 모든 기동차량에 RCWS를 달려고 한다. [사진 한화지상방산]

한화 지상방산이 DX 코리아 2018에서 선 보인 RCWS. 육군은 모든 기동차량에 RCWS를 달려고 한다. [사진 한화지상방산]

육군은 RCWS에 각종 전자광학 장비(EO)와 적외선 탐지장비(IR)를 달아 정찰 수단으로도 활용할 계획이다. 모든 차량과 장갑차량이 RCWS를 통해 정찰병 역할을 하는 셈이다. 또 RCWS의 무기로 기관총과 유탄발사기를 택해 화력을 높인다.

차량과 장갑차, 그리고 앞으로 육군의 보병 부대가 갖고 다닐 도론봇(드론+로봇)의 센서에서 나온 정보는 통합 네트워크 체계를 통해 서로 공유한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다른 차량과 장갑차의 센서로 적을 볼 수 있게 된다. 또 내 차량 또는 장갑차에서 적을 발견했는데 발각될까 걱정된다면 후방의 미사일이나 자주포와 같이 펀치가 긴 무기를 불러 타격한다.

네트워크로 공유하고 인공지능으로 거르고

모든 차량과 장갑차가 서로 연결되면 엄청난 정보가 오갈 수밖에 없으며 트래픽이 많아진다. 그러면 한정된 주파수에 이 모든 정보를 다 실을 수 없게 된다.

이때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짧지만, 핵심이 들어간 정보만 엄선해서 주고받는 게 아미 타이거 4.0이다. 육군 관계자는 ”센서로 탐지한 적의 영상을 그대로 보내지 않고 인공지능이 적의 위치ㆍ종류ㆍ규모 등 필요 정보만을 단문 메시지로 줄여 보내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또 인공지능은 지휘관에게 가장 가까운 아군의 무기를 알려주고, 어떤 무기로 공격하는 게 좋은지 추천한다.

육군이 DX 코리아 2018에서 선 보연 차량형 장갑차. 바퀴가 3쌍(6개)인 K806과 4쌍(8개)인 K808이 있다. 차륜형 장갑차도 보병의 기동화의 핵심 장비다. 이철재 기자

육군이 DX 코리아 2018에서 선 보연 차량형 장갑차. 바퀴가 3쌍(6개)인 K806과 4쌍(8개)인 K808이 있다. 차륜형 장갑차도 보병의 기동화의 핵심 장비다. 이철재 기자

육군은 내년부터 아미 타이거 4.0을 도입하려고 한다. 2025년까지 3개 사단을 아미 타이거 4.0로 무장하는 게 1차 목표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WMD대응센터장은 “아미 타이거 4.0과 같은 전투체계는 그동안 한국 육군이 신경을 덜 쓴 분야”라며 “개념은 좋은데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할지 조금 우려가 든다”고 말했다. 육군 관계자도 “아미 타이거 4.0은 아직 개념이 다 잡힌 상태는 아니다”면서 “개문발차(開門發車)처럼 일단 시작하고 계속 보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육군은 더 나아가 분대를 보병전투차(IFV) 1대와 하차 보병 4명으로 줄이는 대신 각종 드론과 로봇을 다량으로 운용하는 미래 보병도 구상하고 있다. 각 보병이 근력을 로봇처럼 높여주는 강화외골격을 입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이쯤 되면 영화 ‘아이언맨’ 속 아이언맨과 다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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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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