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연봉협상서 회사가 터무니 없이 몸값을 깎는다면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류재언의 실전협상스쿨(25)

연봉 협상을 할 때 회사가 터무니 없는 연봉을 제시했을 경우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현명할까. [사진 pixabay]

연봉 협상을 할 때 회사가 터무니 없는 연봉을 제시했을 경우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현명할까. [사진 pixabay]

얼마 전 대학 후배인 B로부터 연락이 왔다. 대기업의 브랜드팀에서 근무하다가 IT기업 A사의 서비스 브랜드팀으로 이직하게 됐는데, 연봉협상이 생각만큼 쉽지 않아 조언을 구하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A사는 B를 오랫동안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A사는 우선 동종 IT업계의 10년 차 평균연봉이 7000만원 수준이라며  B의 업무 능력과 커리어 등을 고려해 업계 평균보다 500만원 정도 높은 7500만원 수준의 연봉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당사 사내 연봉 규정상 지급할 수 있는 최고 금액”이라며 더 이상의 협상의 여지를 주지 않으려고 했다. B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첫 번째 전략은 회사의 첫 제안 허물기 

첫째는 상대방의 제안을 허무는 것이다. 여기서 '배트나'의 유무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 배트나란 협상이 결렬됐을 경우 대안책을 말한다. 둘째는 상대의 제안을 수용하면서 부수적인 조건을 제한하는 것이다. 마지막은 '조파'인데 조파란 합의 가능 영역을 의미하는 단어로 나와 상대의 교집합 부분을 의미한다. [사진 pixabay]

첫째는 상대방의 제안을 허무는 것이다. 여기서 '배트나'의 유무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 배트나란 협상이 결렬됐을 경우 대안책을 말한다. 둘째는 상대의 제안을 수용하면서 부수적인 조건을 제한하는 것이다. 마지막은 '조파'인데 조파란 합의 가능 영역을 의미하는 단어로 나와 상대의 교집합 부분을 의미한다. [사진 pixabay]

첫째, 상대방의 첫 제안을 허무는 것이다. B는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받는 연봉이 7200만원이기 때문에 이보다 10% 이상 인상해주지 않는다면 굳이 이직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전달한다. 다른 기준점을 제시해 상대의 첫 제안을 허무는 전략이다.

A사와 B의 팽팽한 연봉협상에서 관전 포인트는 서로가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기준점을 제시해 상대를 압박하고 있는 부분이다. 현재 각자가 제시하고 있는 기준점 사이에는 500만원의 격차가 존재한다. 이 경우 서로가 한발씩 양보해 상대의 최저 기준점을 받아들인다면 합의점을 찾을 수 있지만, 만약 이것이 힘들다면 협상은 결렬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협상은 결국 ‘배트나(BATNA: 협상결렬 대안)’의 유무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A사는 7500만원 수준의 연봉으로 B보다 나은 인재(배트나)를 채용할 수 있는지, 반대로 B는 커리어·연봉·복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A사보다 나은 기업(배트나)을 찾을 수 있는지가 중요해진다. B의 입장에서 배트나가 확보된 상황이라면 A사와의 딜이 깨지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A사를 더 강하게 압박해 유리한 조건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B의 입장에선 기대한 만큼의 연봉 인상이 힘들더라도 커리어를 고려했을 때 A사로 이직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다면, 상대가 제시한 기준을 수용해 부수적인 조건을 얻어내는 방법을 고려해볼 수 있다.

둘째, 상대의 제안을 수용하면서 부수적인 조건을 제안하는 것이다. 이는 위와 같이 다른 기준을 제시해 상대의 첫 제안을 허물어보려고 노력했지만, 현실적으로 힘들 때 쓸 수 있는 대안이다. 부수적 조건이란 이직 시 원하는 포지션 보장, 내년 연봉 인상률 보장, 유리한 인센티브 산정 기준 적용, 스톡옵션 지급, 근무시간 조정 및 주 2회 재택근무, 기타 복지혜택 등이다.

또 한가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조파(ZOPA: Zone of Possible Agreement)’다. 조파는 ‘합의 가능 영역’이라는 의미로 나와 상대방의 가격수용한계선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교집합 부분을 의미한다. 위 연봉협상을 예로 들어보자. A사의 가격수용한계선은 7500만 원이다. 즉, 상대방이 7500만원보다 높은 연봉을 요구할 경우 협상에 응하지 않겠다는 마지노선인 것이다.

나와 상대가 제시한 금액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조파는 도출되지 않는다. [출처 류재언]

나와 상대가 제시한 금액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조파는 도출되지 않는다. [출처 류재언]

반면 8000만원을 제시한 B는 상대방이 8000만원 이하의 금액을 고수한다면 합의할 마음이 전혀 없다. 이 경우 B의 가격수용한계선은 8000만 원이 되고, 조파는 도출되지 않는다. 이 경우 협상은 결렬될 가능성이 크다. 만약 조파가 도출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협상이 타결되었다면 이는 어느 한쪽이 자신의 가격수용한계선을 넘어 무리하게 합의를 한 것이고, 비정상적인 협상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상황에 변화를 줘보자. B는 협상 초기 전략적으로 8000만원을 제시했지만, 사실 기존에 받았던 7200만원만 보장해주면 장기적으로 커리어 상 도움이 될 수 있는 A사로 이직할 생각이었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B의 가격수용한계선은 7200만원으로 하향 조정된다. 이렇게 되면 비로소 합의 가능 영역인 조파가 도출되고, 양측은 협상을 통해 조파의 범위 내에서 합의점을 찾아 계약 체결의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나와 상대가 제시한 금액에서 겹치는 부분이 생겼을 경우에는 조파가 도출된다. 양쪽이 한발짝 서로 물러나게 되면 조파는 도출될 수 있다. [출처 류재언]

나와 상대가 제시한 금액에서 겹치는 부분이 생겼을 경우에는 조파가 도출된다. 양쪽이 한발짝 서로 물러나게 되면 조파는 도출될 수 있다. [출처 류재언]

협상 중 B가 C사로부터 8500만원의 연봉을 제시받았다면 어떻게 될까. 조파는 협상결렬 대안인 배트나가 제시한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만약 배트나인 C사가 B에게 8500만원의 연봉을 제시했다면 B의 가격수용한계선은 8500만원까지 높아지는데, 이 경우 양측의 가격수용한계선을 통해 도출할 수 있는 조파는 없어지게 된다.

그러나 제 3자가 등장해 나의 수용한계선을 높여 다른 대안(배트나)이 생기면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 경우 협상 결렬 시 대안(배트나)이 생긴 것이다. [출처 류재언]

그러나 제 3자가 등장해 나의 수용한계선을 높여 다른 대안(배트나)이 생기면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 경우 협상 결렬 시 대안(배트나)이 생긴 것이다. [출처 류재언]

가격협상 전 ‘조파’ 도출 여부 살펴야 

일반적으로 조파를 통해 합의한 최종 가격은 배트나가 제시한 가격보다 더 유리한 조건이어야 한다. 가격 이외의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함에도 최종 합의 가격이 배트나가 제시한 가격보다 불리한 조건이라면 문제가 있는 합의라 할 수 있다.

조파는 가격협상의 기본이다. 연봉협상뿐만 아니라 구매 협상, 세일즈협상, 부동산협상, M&A 협상 등 가격협상에 임하기 전 조파가 도출되는지, 된다면 어느 지점에서 조파가 형성되는지, 그리고 협상 테이블을 박차고 나와야 하는 가격수용한계선은 어느 지점인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이를 확인하지 않고 가격협상에 임하게 되면 자칫 조파 범위에서 벗어난 지점에서 최종 합의를 하게 되고, 이는 치명적인 손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협상연구소장 류재언 변호사 yoolbonlaw@gmail.com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