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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것만으로도… ” 아픈 아이 둔 부모의 슬픈 감사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장연진의 싱글맘 인생 레시피(8)

케렌시아란 투우사와 마지막 결전을 앞둔 소가 휴식을 취하는 곳인데, 최근에 현대인이 잠시 하던 일을 떠나 휴식을 취하는 안식처로 뜻이 확대돼 쓰이고 있다. [사진 freepik]

케렌시아란 투우사와 마지막 결전을 앞둔 소가 휴식을 취하는 곳인데, 최근에 현대인이 잠시 하던 일을 떠나 휴식을 취하는 안식처로 뜻이 확대돼 쓰이고 있다. [사진 freepik]

투우사와 마지막 결전을 앞둔 소가 잠시 가쁜 숨을 고르며 휴식을 취하는 곳, 케렌시아. 최근에는 경쟁으로 지친 바쁜 현대인이 잠시 하던 일을 떠나 휴식을 취하는 나만의 안식처로 뜻이 확대돼 쓰이고 있다.

16년 전, 그때는 미처 몰랐는데 이혼과 둘째의 갑작스러운 발병으로 만신창이가 됐던 내가, 아니 우리가 잠시 아픈 아이들로부터 벗어나 숨을 돌리는 곳이 있었다. 바로 선천성 또는 후천성 운동 기능 지체·발달 장애 등을 앓던 아이들과 그 부모님이 드나들던 언어치료실이다.

둘째가 다녔던 그 언어치료실은 압구정역 근처 단독주택가에 있었다(당시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서인지 둘째가 뇌수술을 받은 대학병원엔 언어치료실이 따로 없었다). 2층 주택 쪽문으로 난 계단을 올라가면 가정집처럼 편안하게 꾸민 치료실이 나왔다. 현관으로 들어서면 소파와 탁자가 놓인, 대기실 역할을 하는 거실이 나오는데 그 양쪽으로 세 개의 치료실이 있었다.

뇌졸중이나 뇌경색 등을 앓는 중년과 노년의 환자가 많이 찾는 대학병원 재활치료실과 달리, 언어치료실은 유아기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엄마와 함께 주로 드나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아이는 민호(가명)와 혜원(가명)이다.

민호는 베란다에서 놀다가 떨어져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는데 그 후유증으로 발달 장애 등을 앓고 있었다. 기저귀를 뗄 나이가 훨씬 지났는데 늘 차고 다녔다. 부모님이 일임했는지 담당 선생님이 아침에 아이를 집에서 직접 치료실로 데려와 점심까지 먹이며 언어뿐만 아니라 음악과 미술 치료까지 병행했다. 그런데 한 번도 얼굴을 본 적 없는 민호 부모님이 그랬다고 한다. 아이가 살아서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한지 모른다고.

그 말을 듣는데 두 달 전 수술실 앞에서 평생 아이 뒷바라지만 하고 살아도 좋으니 제발 살려만 달라고 기도하던 내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뻐근해졌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따로 없었을 텐데 최악의 상황을 피한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해 하며 사는 모습에서 같이 아픈 아이를 둔 부모로서 ‘겸허’한 삶의 자세를 배웠다.

뇌성마비 어린이, 발달 및 지체 장애아들이 발음을 교정받는 대학병원 언어치료실. 당시 둘째가 뇌수술을 받은 병원에는 언어치료실이 없었다. [사진 장연진]

뇌성마비 어린이, 발달 및 지체 장애아들이 발음을 교정받는 대학병원 언어치료실. 당시 둘째가 뇌수술을 받은 병원에는 언어치료실이 없었다. [사진 장연진]

반면 지체 장애를 앓던 혜원인 오전에 어린이집에서 특수교육을 먼저 받고 오후에 언어치료를 받으러 엄마랑 같이 왔다. 둘째랑 치료 시간이 자주 겹쳐서 아이들이 방으로 들어가면 엄마끼리 대기실 소파에 앉아 자연스레 동병상련의 감정을 나누곤 했다. 양쪽 치료실에서 흘러나오는 참 잘했다고 한 옥타브 높게 칭찬하는 선생님들의 목소리와 그에 고무돼 씩씩하게 발음을 따라 하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모처럼 홀가분한 마음으로 서로의 고통과 아픔과 위로를 건넸다.

오전에 아이들을 데리고 각각 재활치료실과 특수학교를 다녀온 뒤라 ‘30분’의 그 짧디짧은 시간은 우리가 하루 중 아이들로부터 놓여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마치 케렌시아에서 잠시 한숨을 돌리는 투우장의 소처럼. 사실 혜원 엄마도 나도 아이를 앞세울 뻔한 트라우마가 클 때여서 잠자는 시간조차 자유롭지 않았다. 아이가 자다가 끙 소리만 내도 등줄기가 서늘해지면서 가슴이 철렁철렁 내려앉곤 했다.

혜원 엄마는 아이가 경기를 심하게 해 몇 분간 숨이 멎은 적이 있는데 죽을 때까지 그 충격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래도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아이들의 엄마보다 자신의 처지가 더 낫다고 자위 아닌 자위를 하며 민호 부모님과 비슷한 말을 했다. “언제 떠날지 몰라 불안과 공포에 떠는 것보다 좀 부족하지만 늘 옆에 있으니까 외려 마음이 편해요.” 혼자 혜원일 감당하기 벅차 둘째를 가질 엄두를 내지 못하는데 친척과 친구들이 자꾸 참견해서 다 멀어졌다고 할 땐 의지가지없는 외로움이 느껴져서 마음이 더욱 아렸다.

분노를 밖으로 표출할 줄 몰라서 혜원이 자기 뺨을 철썩철썩 때릴 때면 차마 그 엄마를 쳐다볼 수 없었다. 반면 혜원이 혼자 소파에서 일어나 화장실 앞을 기웃거리며 대변을 가렸을 땐 내 일처럼 기뻤다. 특수교육(30분)을 받더니 그래도 조금씩 인지능력이 생긴다며 뛸 듯이 좋아하던 혜원 엄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유대인 속담에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고 했던가. 혜원 엄마를 비롯해 다른 장애아 엄마들의 눈물겨운 희생과 헌신을 이 격언으로 일반화하기엔 그들의 노고와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신이 매시간 한 사람 곁에만 머물 수 없기에 그들 엄마를 내려보내 주었다”로 바꾸면 좀 대변이 될까(당시엔 장애인 주간 보호 서비스 제도조차 없었다).

이렇게 내 삶에서 가장 어두운 한 시기를 돌아보다가 내가 놓친 것이 또 하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바로 우리의 아이와 엄마들이 치료실을 스스럼없이 드나들 수 있도록 배려해 준 집주인과 그 이웃에 대한 감사함 말이다. 업어 달라, 안아 달라 몸이 불편한 아이를 데리고 잠깐 외출했다가 돌아와도 녹초가 되곤 했다. 그런데 그들의 숨은 배려가 없었다면 우린 그런 아이들을 데리고 외곽 어디로 밀려나 더 힘들게 떠돌았을까. 더 늦기 전에 그분들에게 깊이 감사의 말을 올린다.

장연진 프리랜서 작가 novljy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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