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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법부 70주년 … 끝이 보이지 않는 재판 불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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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사법부 불신 시대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에 원치 않는 쪽으로 판결을 받은 이들은 권력이 재판에 개입했다며 재심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 재판에서 높은 형을 받았거나 패소한 이들은 김명수 대법원장의 ‘코드 사법’ 때문에 부당한 결과가 나왔다고 항변한다. 양쪽 모두 법률과 증거에 따른 정상적 재판이 아니었다고 믿는다. 요즘 송사에 얽힌 이들은 재판장이 우리법연구회나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인지부터 파악한다. 이에 따라 선임할 변호사를 고른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전 정부에서 검찰·법원 고위직에 있었던 변호사는 회피하는 현상도 생겼다. 법원의 저울이 평평하지 않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 법원과 판사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적은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서 “사법 농단과 재판 거래 의혹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며 “지금까지 사법부가 겪지 못했던 위기다”고 말했다. 온전한 진단이 아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부적절한 행태가 사법 신뢰를 훼손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뒤의 법관 ‘코드 인사’도 그에 못지않게 불신을 불렀다. 우리법연구회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출신이 아니면 대법관이나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재판에 이념이 개입한다고 보는 국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

불신 사태에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김명수 대법원장의 책임도 크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재판 거래 의혹 때문에 약 50명의 법관이 검찰에 불려가도 모르는 척하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지방법원 판사가 된 전직 대법관이 시위대에 봉변을 당해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둘 다 무책임의 극치다. 사법부의 통렬한 자기반성이 없으면 불신 시대는 계속될 수밖에 없고, 그만큼 법치주의는 더 흔들린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