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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김중업 “고구려의 힘찬 선 재현하고 싶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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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중업은 건축을 매개로 한 총체적 예술을 꿈꿨다. 1956년 설계한 건국대 도서관의 공사 현장 모습.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김중업은 건축을 매개로 한 총체적 예술을 꿈꿨다. 1956년 설계한 건국대 도서관의 공사 현장 모습.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을지로 7가에 눈에 띄는 오래된 건물이 있다. 과거 ‘서산부인과 병원’(현 아리움 사옥)으로 불린 곳이다. 4층 규모의 건물은 여기저기 페인트가 벗겨져 있고 세월의 흔적이 덕지덕지 붙어있지만, 곡면이 돋보이는 발코니와 기둥 등이 범상치 않다. 지나는 사람마다 누가 설계했을까 궁금해하고, 건축과 학생이라면 한 번은 찾아가 본다는 이 건물, 한국 현대건축의 ‘1세대 건축가’ 김중업(1922~1988)이 1965년 설계해 2년 뒤 준공된 것이다.

현대건축 개척자 30주기 특별전 #‘한국적 건축은 뭘까’ 평생 매달려 #프랑스대사관·삼일빌딩 등 남겨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도 대표작 #군사정권 비판하다 외국 생활도 #소장품·사진 등 3000여 점 나와

그의 사후 30주기를 맞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대규모 특별전 ‘김중업 다이얼로그’가 열리고 있다. 우리가 사는 도시 곳곳에 치열한 삶의 흔적을 남긴 김중업의 주요 작품과 생애를 살펴볼 기회다. 건축전은 일반 관람객에게 어렵고 재미없기 십상이지만, 이번 전시는 다양한 자료로 폭넓은 소통을 시도한 노력이 돋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 아카이브를 비롯해 김중업건축박물관의 소장품과 사진, 영상 등 3000여 점이 나왔다. 71년 김중업이 파리에서 프랑스 영화감독과 함께 자신의 대표작인 주한 프랑스 대사관, 삼일빌딩, 도큐호텔 등을 배경으로 만든 건축영화 ‘건축가 김중업’도 상영한다.

건축가 김중업

건축가 김중업

◆겁 없는 30대의 도전=김중업은 1922년 평양에서 태어나 요코하마 고등공업학교를 졸업하고 48년 서울대 공과대 조교수로 임용됐다. 52년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린 세계예술가회의는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됐다. 한국전쟁 때 부산에 머물며 화가 이중섭, 시인 오상순 등 많은 예술가와 교류했던 그는 세계예술가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했다가 현대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1887~1965)를 만났다. 그에게 “함께 일하고 싶다”고 밝혔고, 52년 10월부터 55년 12월까지 프랑스의 르 코르뷔지에 설계사무소에서 일했다. 당시 르 코르뷔지에는 김중업의 저돌적 요청에 처음엔 어이없어했다는 얘기가 있다.

『시적 울림의 세계: 김중업건축론』을 쓴 정인하 한양대 건축학과 교수는 “김중업이 르 코르뷔지에 사무소에서 일한 기간은 한국 현대 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며 “한국건축이 본격적으로 세계 근대건축의 흐름에 뛰어든 출발점”이라고 했다. 그는 “김중업은 르 코르뷔지에 특유의 조형 감각뿐만 아니라 인생관, 직업정신 등에서 총체적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김중업에게 영향을 끼친 또 다른 인물은 가우디(1852~1926). 벽과 천장의 곡선을 자유롭게 구사하고 섬세한 장식과 극적인 색채로 아름다움을 구현한 스페인 천재 건축가다. 전시장엔 김중업이 남긴 이런 메모가 있다. “근대건축계 있어서는 르 코르뷔지에의 롱샹 교회와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만이 나를 꽉 붙잡고 영락없이 사로잡았다. 작품을 빚는다는 엄청난 짓이 여간 두렵지 않다. 근대에도 이러한 벅찬 작품들이 있기에 세계는 아직도 희망을 걸 만도 하지 않는가.”

유엔기념공원 정문 기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유엔기념공원 정문 기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한국적 모더니즘 추구=김중업은 “고구려의 힘찬 선을 건축으로 재현해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한국에 돌아와 김중업건축연구소를 차린 그에게 남겨진 과제가 바로 현대 건축을 어떻게 ‘한국적으로’ 풀 것인가였다. 정다영 학예연구사는 “김중업의 작업엔 세계성과 지역성이라는 두 개의 가치가 공존한다”며 “그는 자신만의 건축 언어를 찾기 위해 노력하며 한국의 모던건축을 실천한 건축가였다”고 평가했다.

주한 프랑스 대사관(1960)이 한 예다. 경사진 부지에 조화롭게 배치된 이 건축은 지붕을 비롯한 옛 기와 조각과 자기를 부수어 제작한 관저 외벽 장식 모자이크까지 곳곳에 한국적인 조형성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69년에 설계해 70년에 준공한 삼일빌딩도 의미가 크다. 기본 설계부터 완공까지 한국 건축가에 의해 지어진 초고층 건물이라는 점에서다. 이밖에 서강대 본관(1958)은 엄격한 비례, 면 분할, 지형과의 조화 면에서 형태구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부산대 본관(현 인문관)은 금정산 지형에 따른 형태와 파노라마 경관 등 공간 구성에 다양한 시도를 한 흔적을 돋보인다. 건국대 도서관(현 언어교육원, 1956)도 있다.

1956년 설계한 부산대 본관 내부.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1956년 설계한 부산대 본관 내부.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8년간의 해외 추방=한국 건축사에서 김중업과 김수근(1931~1986)의 이름은 나란히 거론된다. 그러나 정치적으론 판이했다. “군사정권과 밀착해 정부로부터 많은 국가 프로젝트를 의뢰받았던 김수근과 대조적으로 그는 60년대 이후 역사의식을 갖고 군사정권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거침없이 쏟아냈다.”(정인하 교수).

김중업은 81년 광주대단지 필화사건으로 8년간 한국을 떠나 프랑스에 머물러야 했다. 경기도 광주 대단지 주민 5만여 명이 정부의 무계획적인 도시 정책과 졸속 행정에 반발한 사건으로, 김중업은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가 반강제로 한국을 떠났다.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 입구에 자리한 올림픽 세계평화의 문은 김중업의 유작이다. 86년 설계한 이 문은 88년 9월에 완성됐는데, 김중업은 준공을 보지 못하고 그해 5월 세상을 떠났다.

서울 문래동 '태양의 집'. 1979년 설계작이다. 김태동 촬영(2018).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문래동 '태양의 집'. 1979년 설계작이다. 김태동 촬영(2018).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정다영 학예연구사는 “지은 지 대부분 30년이 된 김중업의 건축은 도시재생, 문화유산의 보존과 제도 등 건축을 둘러싼 여러 논의의 출발점이 된다. 이번 전시가 다양한 논의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11월 3일 한국건축역사학회와 공동 학술 심포지엄을 여는 한편, 김중업의 주요 건축물을 살펴보는 답사 프로그램도 열 계획이다. 전시는 12월 1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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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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