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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열병식서 핵·ICBM 빠진건 '가진 자'의 여유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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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인사이드 

지난 9일 북한에서는 정권수립 70주년 기념 열병식이 있었다. 미국과 한국의 얼굴을 찡그리게 하는 이변은 없었다. 미국을 사정권으로 하는 ICBM과 한국 및 일본을 겨냥할 수 있는 노동이나  스커드 계열 미사일이 자취를 감춰서다. 지난 2ㆍ8 건군절 퍼레이드에서는 ICBM급인 화성-14형과 화성-15형을 비롯한 각종 미사일들을 선보인 것과는 딴판이다. 일단 이번 북한의 9ㆍ9 절 행사는 군사적으로 어느 정도 절제된 행사로 평가된다.

ICBM 빼면서 비핵화 의지 드러내 #이미 '핵무력 완성'…'핵 강국' 여유 #김정은 '경제재건'에 초점 둔 전략 #비핵화 없는 '경제재건' 가능할까

북한 조선중앙TV가 10일 오전 방영한 전날 정권수립 70주년 열병식 모습. [사진 연합뉴스]

북한 조선중앙TV가 10일 오전 방영한 전날 정권수립 70주년 열병식 모습. [사진 연합뉴스]

김정은 정권이 미국과 한국을 의식한 결과이며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좋은 징조로 받아들여지고 있기도 하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트위트터에서 “북한의 크고 매우 긍정적인 움직임”이라며, “김정은 위원장 고맙다”고 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긍정적 평가는 지극히 ‘정치적’이거나, 아니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과정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의 결핍에 따른 것일 수 있다. 이번에도 비핵화 관련 북한 당국의 어떠한 언급이나 움직임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희망적인 평가들이 나오고 있어 일말의 우려가 앞선다.

북한 당국이 ICBM을 비롯한 각종 미사일 퍼레이드를 뺀 것은 비핵화 의지라기보다 그들 스스로 부르짖고 있는 ‘핵 강국’으로서의 여유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김정은 정권은 그들에게 필요한 수준의 핵 무력을 완성하고 난 후 ‘도발적’ 핵 국가가 아닌 ‘평화를 지향’하는 핵 국가로서의 면모를 구축해나가고자 한다. 이를 위해 그들은 나름대로 체계적인 과정을 밟아 오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지난 2월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건군절' 열병식을 행사 다음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신문에 게재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의 열병식 등장 모습. [사진 연합뉴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지난 2월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건군절' 열병식을 행사 다음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신문에 게재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의 열병식 등장 모습. [사진 연합뉴스]

김정은 정권은 작년 말까지 군사적 제재 가능성조차도 감내하면서 6차례의 핵실험과 ICBM을 포함한 각종 미사일 시험발사를 마치고 ‘핵 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이어 2ㆍ8 건군절에서 ‘핵무력 완성’ 선언을 실체적으로 증명해 주는 형태의 군사 퍼레이드를 펼쳤다. 핵미사일 퍼레이드로 대내외 만방에 핵무력을 강하게 인식시키고자 하였을 것이다.

지난 4월, 3차 노동당 전원회의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핵무기 병기화’ 완결이 검증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핵 시험과 중ㆍ장거리, 대륙간탄도로케트시험발사’를 포기한다는 일종의 핵감축 조치 결정을 내렸다. 북한 당국은 이를 두고 ‘핵강국’의 일원으로서 행하는 자발적인 핵군축 조치라 선전한다. 실제로 4월 전원회의에서 그들의 핵실험 중지를 ‘세계적인 핵군축을 위한 중요한 과정’이며, ‘핵위협이나 핵도발이 없는 한 핵무기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 하여 핵 국가로서의 지위를 고착하고자 하는 계획을 밝혔다.

북한은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 70주년을 맞아 경축 열병식및 평양시군중시위가 성대히 거행했다며 노동신문이 사진과 함께 10일 보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주석단에서 열병식을 바라보며 손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노동신문]

북한은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 70주년을 맞아 경축 열병식및 평양시군중시위가 성대히 거행했다며 노동신문이 사진과 함께 10일 보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주석단에서 열병식을 바라보며 손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노동신문]

이번 9ㆍ9절에도 북한이 핵미사일 시위를 생략한 것은 비핵화 가능성을 보인 것이라기보다 핵위협이나 도발을 하지 않는 평화 지향적 핵 국가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 핵군축이나 핵 공격 자제와 같은 구호로 평화적 핵 국가 추구를 ‘완전한 비핵화’로 등치시키면서 미국과의 핵협상을 북한식으로 이끌어 가고자 하는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의 군사적 위협이 없다면 북한도 비핵화할 수 있다는 논리를 전개하면서 평화 이미지 확산으로 대북제재 분위기를 완화하고자 한다. 북한의 ‘선 평화선언’ 요구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북한은 9ㆍ9절의 초점을 군사보다 경제에다 둔 것도 상당히 계획적이다. 그들은 ‘핵 국가’가 된 이상 여기에 기초해서 이젠 경제에 매진한다는 논리를 전개하면서 ‘경제재건’에 중점을 두었다. 김정은 정권의 병진노선은 ‘선 핵개발, 후 경제재건’이라는 순차적 형식을 띠게 되는 셈이다. ‘경제재건’ 강조는 일차적으로 인민생활 향상이라는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다. 동시에 ‘경제재건’ 때문에 비핵화할 수 있다는 착각을 갖도록 하여 미ㆍ북 대화의 필요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북한은 미ㆍ북 대화가 지속하는 한 미국의 제재나 적대적 군사활동을 효율적으로 회피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경제재건’의 중점이 핵을 포기한 대가로 경제문제를 풀어나간다는 논리로 비약해서는 곤란하다. 향후 북한의 실질적인 ‘완전한 비핵화’를 전제한 미ㆍ북 협상은 원점을 맴돌 가능성이 더 클 것이라는 데 유의해야 할 것이다.

정영태 동양대 통일군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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