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평양 정상회담(18~20일)이 6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부의 회담 준비팀이 비상 태세에 돌입했다. 남북은 당초 이번 주 초에 판문점에서 실무회담을 열어 의전과 경호, 통신 등을 협의키로 했다. 문 대통령의 방북 루트와 평양에서의 일정, 방북 인원 규모 등도 협의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12일까지 남북 간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회담 관계자들은 긴장하는 분위기다.
빠듯한 일정, 당국자들 정상회담 준비에 분주 #남북 이번주초 실무협의 무산돼 시간 더욱 촉박 #2000년 DJ 이산가족 문제 제기하자 "이걸거면 가시라" #2007년엔 "하루 더 머물고 가시라"며 고무줄 일정 제안 #노 전 대통령 아리랑 공연 관람 놓고 한 때 고심 #남측 국민 방문 금지한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요구할 수도 #양 정상 관계나, 회담 진전위해 무리한 요구 없을 것이란 전망도
문 대통령의 취임 후 첫 방북은 전용기를 이용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김 위원장은 지난 4월 27일 정상회담 때 “(판문점으로) 내려오면서 보니 도로 상태가 좋지 않다. 비행기로 오시면 편안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항공기로 서해 직항로를 열었고,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휴전선을 걸어서 넘은 뒤 승용차로 평양까지 이동했다. 평양에서 열렸던 이전 두 차례의 정상회담은 남측 대통령이 숙소로 사용했던 백화원 초대소에서 진행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숙소는 북측의 영빈관인 백화원 초대소를 이용하더라도, 회담은 김 위원장의 집무실이 있는 노동당 본청이 될 전망이다. 정부 당국자는 “초청자인 북측이 최종 결정을 할 것”이라며 “문 대통령의 특사가 두 차례 평양을 방문했을 때를 포함해 최근 노동당 본청에서 많은 행사를 하고 있어 이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고지도자의 동선(動線) 노출에 극도로 민감해하는 북한의 속성상 장소와 일정은 수시로 변경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당국자들이 신경을 쓰는 건 정상회담 일정 협의에서 ‘뇌관’이 등장할 수 있어서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정상회담은 이번이 세 번째지만, 평양에서는 처음이어서 청와대의 의도와 상관없이 일정이나 내용을 놓고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당장 북한은 정상회담 대표단들에 지난 9일 개막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 관람을 권유할 가능성이 있다.
2007년 노 전 대통령 방북 때는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 공연 관람을 제안했고, 회담 이틀째인 10월 3일 노 전 대통령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함께 관람했다. 전직 정부 당국자는 “당시 인민군이 국군 군복을 입은 군인을 공격하는 장면이 담겨 있어 관람에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있었다”며 “북측이 이 장면을 제외하고 공연하면서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당시 청와대 측은 사전에 공연 영상과 사진을 사전에 입수해 철저한 검토를 거쳤다고 한다. 이를 본 노 전 대통령도 관람을 직접 결정했다고 한다. 북한은 정권 수립 70주년을 맞아 대집단체조·예술공연에 드론(무인기)을 동원하고, 각종 레이저쇼를 포함시키는 과거에 비해 더욱 화려해진 공연을 했다. 통일 관련 내용도 다수 포함했다고 한다. 단 북한은 이번 공연의 제목을 ‘빛나는 조국’으로 정했는데, 북한 주민들은 ‘조국’을 북한을 뜻하는 고유명사로 사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제목에 대해 국내 일부에서 불편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북한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옛 금수산기념궁전)의 참배를 요구할 수도 있다. 익명을 원한 고위 탈북자는 “북한은 해외에서 외빈이 올 경우 금수산태양궁전 참배를 필수 코스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국민의 금수산태양궁전 참배를 금하고 있다. 북한체제 우상화에 활용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북한은 2000년 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참배를 요구해 한때 난항을 겪었다. 그러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예외’로 하라는 지시에 따라 넘어갔다.
그러나 2006년 북한이 1차 핵실험을 앞두고 김 전 대통령이 북한 설득을 위해 방북을 추진했을 당시엔 북한이 이를 다시 요구하며 방북이 무산됐다. 전직 정부 고위당국자는 “남측 고위 인사가 참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북한이 잘 알고 있어 김 전 대통령이 방북하지 말라는 메시지였다”며 “최근 북한이 상당히 유연해진 모습이고, 김 위원장이 형식보다는 내용을 중시하고 있어 무리한 요구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이 협상 우위를 점하기 위한 평양 현지에서 대통령의 일정을 줄이거나, 늘리는 식의 ‘조정’을 시도할 수 있는 게 당국의 숨은 고민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첫 남북 정상회담 때는 김 전 대통령이 이산가족 문제를 꺼내자 “이럴 거면 돌아가시라”고 하고, 두번째 정상회담에선 노 전 대통령에게 “하루 더 머물다 가시라”고 해 난처한 상황이 야기된 적이 있다. 이번엔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미국과의 협상을 놓고 우리 정부에 기대는 부분이 있는 만큼 문 대통령을 곤혹스럽게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