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시대 철학가 세네카는 “시간은 진실을 드러낸다”고 했다. 그렇다. ‘트럼프의 진실’이 드러나는 데는 1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트럼프의 공포가 언론의 분노 불러 #이런 지도자에 운명 맡겨야 하다니
북핵 위협이 고조되던 시기 워싱턴에서 기사와 칼럼을 통해 ‘한반도 위기’를 전했다. “위기를 과장, 조장하는 거냐”란 말을 많이 들었다. 현 정부에 가까운 사람들이 특히 그랬다. 그러나 적어도 워싱턴포스트의 간판스타 밥 우드워드가 11일 펴낸 저서 『공포』를 보면 그렇지 않다. 당시 보도한 위기론은 오히려 부족했다. 저서에는 트럼프가 주한미군 가족 수천 명에게 한국을 떠나라는 소개령을 내리려 했다는 충격적 내용도 있다. 당시 워싱턴에는 연말연시를 맞아 귀국한 주한미군 가족들에게 한국에 돌아가지 말도록 권유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말이 돌았다. 워낙 예민한 사안이라 크게 기사화는 못하고 칼럼에 살짝 한 줄 썼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실상은 더 심각했다. 사실상 전쟁선언이 될 뻔했다. 익명의 고위 관리가 트럼프의 정신상태를 꼬집은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은 충격을 더한다.
대통령사(史)의 대가 마이클 베실로스는 “이런 상황은 미 역사상 닉슨 이후 최초”라고 했다. 역대 백악관 비서실장을 다룬 『게이트 키퍼스』의 저자 크리스 위플은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웨스트윙 복도에 걸려 있는 초상화와 중얼거리며 대화했다”고 회상한다. 심리적으로 정상이 아니었다. 슐레진저 국방장관은 합참의장에게 “내 허가가 없는 한 닉슨의 그 어떤 핵 발사 명령도 무시하라”고 지시했다. 키신저도 헤이그 백악관 비서실장에게 “당신이 국가를 지키고, 내가 세계를 지킨다. 무슨 말인지 알죠?”라고 했다. 하지만 베실로스의 결론은 이렇다. “닉슨 때 아무리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이(트럼프) 정도는 아니었다. 최악이다.”
트럼프는 NYT 기고자를 ‘반역자’라 불렀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나올 단어가 아니다. 거짓말 탐지기 동원 얘기까지 나온다. 표정 또한 살벌해졌다. 공포 정치가 따로 없다. 트럼프는 지지층을 결집하고 충성심을 재확인하는 효과를 거뒀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럴까.
공포는 분노를 낳는다. CNN 등의 언론은 연일 ‘분노의 보도’를 쏟아낸다. ‘권력 견제’의 범주를 넘어선 느낌이다. 우드워드 신간이나 NYT 기고는 별개로 보이지만, 상당수 언론은 트럼프의 ‘ㅌ’자만 나와도 경기를 일으킨다. 객관성이나 균형감각과 거리가 멀다. 일종의 ‘트럼프 착란 증후군’일 수 있다.
분노는 증오를 낳는다. 냉정함이나 자제력이라곤 1도 없는 트럼프가 가만있을 리 없다. 증오와 앙갚음을 촉구한다. 이에 트럼프 지지자들은 언론에 욕설과 폭력을 퍼붓는다. 언론은 기자 보호를 위해 보디가드까지 동원했다. 그리고 또다시 트럼프를 저격한다. 악순환이다. 권력과 언론만 그런 게 아니다. 보통 시민, 친구들 자리에서도 트럼프 이야기가 나오면 말싸움으로 비화한다.
증오는 고통을 낳는다. 서로 철저하게 미워하고, 처절하게 싸우는 이 막장 정치의 최대 피해자는 결국 미 사회, 미 국민 몫이다. 그리고 현 상황이 앞으로 2년, 어쩌면 6년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에겐 가장 큰 두려움, 가장 큰 고통일 수 있다.
하지만 비단 그들뿐일까. ‘트럼프-김정은 찰떡궁합’에 기대야 하는 게 우리네 신세고, 또 절호의 기회라고도 한다. 실제 트럼프는 국내에서 몰릴수록 북·미 관계에서 돌파구를 찾는다. 2차 북·미 정상회담 이야기를 꺼낸 시점이 절묘하다. 하지만 철학이나 비전은 찾아보기 힘든, 분노와 증오로 가득 찬 이 지도자에게 한반도 운명을 맡겨야 하는 우리 마음도 무척이나 고통스럽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