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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봐라, 찍히면 끝” 댓글보다 무서운 커뮤니티 민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서울 강서구에 지역구를 둔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매주 보좌진들과 지역 주민들이 가입한 온라인 카페 민심을 살핀다. 보좌진들이 카페에서 언급된 현안을 정리한 자료를 보고하면 사안에 따라 예산 확보 등 대응 방안도 마련한다. 금 의원실의 조현욱 보좌관은 “이렇게 체크해야 지역 현안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회원 최대 수십만명 영향력 막강 #공무원도 매일 방문해 동향 보고 #‘쌍둥이 1등’ 학원 커뮤니티서 촉발 #“사안 따라 실제 민심과 다를 수도”

일명 ‘커뮤니티 민심’에 이젠 상품을 파는 기업들뿐 아니라 정치권까지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적게는 수천 명부터 많게는 수십만 명까지 공통된 관심사를 지닌 회원들의 결집력이 상당하다. “커뮤니티에 한 번 찍히면 끝까지 간다”는 말도 나올 정도다.

6·13 지방선거에서 여당 소속으로 경기도지사 선거 운동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이재명 경기지사를 보라. 당선은 됐지만 대형 커뮤니티에 찍혀 곤욕을 치르지 않았나”며 “커뮤니티는 다른 소셜미디어와 달리 정치인의 메시지 관리가 불가능해 ‘인터넷 끝판왕’이라 불리기도 한다”고 전했다.

6월 지방선거 당시 맘카페인 ‘레몬테라스’와 인터넷 커뮤니티인 ‘82cook’ 회원들은 자체 모금을 벌여 이 지사를 공격하는 신문 광고를 냈다. 광고 비용을 며칠 만에 모금하는 ‘화력’도 과시했다. 정치싱크탱크인 더모아의 윤태곤 정치분석실장은 “최근 이런 커뮤니티에는 구매력이 있는 30~40대 여성 회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며 “오프라인의 영향력이 온라인에도 그대로 적용된 사례”라고 분석했다.

정치권뿐만이 아니다. 최근 논란이 된 숙명여고 문제지 유출 의혹은 강남 학원 정보 사이트인 디스쿨에서 촉발됐다. 숙명여고 학부모들이 관련 의혹을 커뮤니티에 제기했고 이 사실은 강남 학원가에 일파만파로 퍼졌다.

유출 의혹을 받았던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 A씨가 직접 장문의 해명 글을 디스쿨에 올렸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고 경찰 수사로 이어졌다.

대형 커뮤니티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언론의 해석을 거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민심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요즘 핫 이슈가 된 부동산 정책의 경우도 인터넷 커뮤니티는 공무원들에게 중요한 참고 대상이다. 정부 정책에 대한 ‘민간 고수’들의 평가가 실시간으로 올라오기 때문이다.

회원 수가 55만 명에 달하는 네이버 카페 ‘부동산 스터디’에는 김현미 국토부 장관을 언급하는 게시물이 적지 않다. 김 장관을 응원하는 글도 일부 눈에 띄지만 가파른 집값 상승에 따라 김 장관과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는 글이 늘고 있다. 심교언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국토부 공무원들도 매일 이 카페에 방문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전문가들도 이런 대형 부동산 카페의 운영진들과 만나 현장의 목소리를 듣곤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커뮤니티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과대평가해서도 안된다고 지적한다. 온라인의 민심이 실제 거리 민심과 다른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여론 연구 전문가인 아산정책연구원 김지윤 박사는 “아직 온라인 커뮤니티의 영향력을 정확히 수치화 시킨 객관적 자료가 부족한 상황”이라며 “커뮤니티가 여론을 지배한다기보다 논란이 될 사건을 촉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박사는 “이런 커뮤니티의 정치화는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이 발달한 국내 인터넷 시장의 특성으로 보인다”며 “온라인 여론을 면밀히 체크하더라도 사안에 따라 실제 거리 민심과 다를 가능성은 항상 열어둬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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