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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타고 내릴 때, 일기예보 할 때 나오는 그 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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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스티브 바라캇은 ’곡을 만들 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 편“이라며 ’새만금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본 꿈과 희망이 곡을 만들 때 중요한 모티브가 됐다“고 밝혔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스티브 바라캇은 ’곡을 만들 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 편“이라며 ’새만금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본 꿈과 희망이 곡을 만들 때 중요한 모티브가 됐다“고 밝혔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캐나다 출신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스티브 바라캇(45)은 한국과 무척 가깝다. 1995년 처음 방한한 이후 매년 한 두 차례씩 한국을 찾을 정도다. 한국인들도 그의 음악에 퍽 친숙하다. 그의 공연을 가본 적 없다고 해도, 그의 음악인 줄 몰랐다고 해도 일기예보의 배경음악이나 결혼식 신랑·신부 입장곡 등으로 널리 쓰여왔기 때문이다.

캐나다 작곡가·피아니스트 바라캇 #새만금 주제 신곡 서울에서 초연 #오케스트라와 대금 선율 곁들여 #“세상은 정치로만 바뀌지 않아 #평양에서도 꼭 연주하고 싶어요”

그가 이번에는 한국을 주제로 한 신곡을 완성해 서울에서 처음 공개했다. 8일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코리안팝스 오케스트라와 피아노·대금의 협연으로 들려준 ‘새만금 그리고 또 하나의 꿈(One More Heart, One More Dream)’이 그것이다. 피아노는 그가, 대금은 이아람이 맡았다. 공연 이틀 뒤 만난 바라캇은 “대금은 여러 악기 사이에서도 귀를 붙잡는 매력이 있다. 한국을 음악뿐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알아가는 행복한 여정이었다”며 “이 곡을 통해 전 세계의 많은 사람이 새만금을 알게 되고 찾을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와 새만금의 인연은 2015년 11월로 거슬러 간다. 공연을 위해 방한한 그를 새만금위원회 오종남 민간위원장이 새만금에 데려갔다. 두 사람은 유니세프 활동을 통해 2009년 처음 만났던 사이. 유니세프 캐나다위원회 친선대사인 바라캇은 유엔아동권리협약 20주년을 기념해 헌정곡 ‘자장가(Lullaby)’를 만들기도 했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을 지낸 오 위원장은 새만금에 대해서도 그처럼 뜻깊은 곡이 탄생할 수 있길 바랐다.

무엇이 새만금을 위한 곡을 쓰게 했나.
“처음엔 사이즈에 압도됐다. 뉴욕 맨해튼의 5배에 달하는 크기다. 사진으로 보고 ‘우와 넓다’ 할 수 있지만 직접 보는 건 전혀 다른 경험이었다. 무엇보다 미래의 허브를 꿈꾸는 사람들의 열망이 느껴졌다. 산업·농업·관광·문화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연결하는 노래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기 위해 노래 제목에도 ‘꿈’을 넣었다.”
이번 초연까지 약 3년이 걸렸는데.
“곡을 만드는 건 사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국 전통악기를 하나 넣고 싶어서 여러 조합을 거쳤다. 장구나 단소도 무척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오케스트라는 대부분 유럽 악기라서 함께 연주했을 때 조합이 중요했다. 너무 튀거나 묻히면 안 되므로. 그런 면에서 대금은 정말 놀라운 악기였다. 대나무 안에 아무것도 없는데 그런 소리가 나다니, 신기했다. 더불어 이 곡의 제작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데 추가 시간이 소요돼 다큐와 음악의 공개 일정을 맞춘 것도 있다.”
2016년 유니세프 ‘이매진 프로젝트’에서 함께 공연한 스티브 바라캇과 엑소의 첸. [사진 페이스북]

2016년 유니세프 ‘이매진 프로젝트’에서 함께 공연한 스티브 바라캇과 엑소의 첸. [사진 페이스북]

장소가 그의 창작에 자극이 된 건 처음이 아니다. 고향 퀘벡의 역사나 아름다움을 담은 ‘퀘벡 1608’이나 ‘퀘벡의 가을’도 있고, 2011년에는 한반도 평화를 사랑에 비유한 곡 ‘서울 남자, 평양 여자(He is from Seoul, She is from Pyongyang)’ 만들기도 했다. 이번 공연에서도 지휘자로 나서 이 곡을 들려준 그는 “7년 전만 해도 남북관계가 오늘 같은 급진전을 맞을 거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며 “지금 서울에서 이 곡을 함께 나눌 수 있어 행복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서울 남자, 평양 여자’는 어떻게 탄생했나.
“당시 사람들은 갈등에 관해서만 이야기했다. 갈등이 계속되면 전쟁이 되지 않나.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이것이 돌고 돌면 평화가 생겨날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했다. 이제 대화가 시작됐으니 더 많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상상한다는 것은 평화가 이미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음악만큼이나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물론이다. 세상은 정치만으로 바뀌지 않는다. 어느 한 분야만으로는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치·경제뿐 아니라 문화·스포츠도 함께 가야 가능하다. 그래서 세계 각국 사람들이 모여 올림픽을 하며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나. 음악은 만국공통어라서 더 힘이 세다. 나는 언젠가 평양에 가서 이 곡을 연주할 거라 확신한다. 언제가 될지 아직 모를 뿐이다.”

그의 어조는 부드러우면서도 분명했다. 음악가로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일상생활에 스며든 음악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순간”을 꼽았다. “영화나 드라마, 올림픽·월드컵 같은 큰 행사에서도 제 음악이 나오는 걸 종종 듣습니다. 하지만 휴대폰 벨소리로 ‘레인보우 브리지(Rainbow Bridge)’가 나오고, KTX를 타고 내릴 때마다 ‘캘리포니아 바이브(California Vibes)’가 나오는 게 더 신기하고 행복해요. 연출된 이야기가 아닌 진짜 삶 속에서 즐기고 있는 거잖아요.”

한국에서 이번에 새로 발견한 것을 묻자 “한국은 올 때마다 새롭다. 이번엔 가족들과 함께 왔는데 삼청동에 가보니 예전보다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아진 것 같다”며 “한국 전통 문화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은 긍정적인 변화”라고 답했다.

그는 최근 색소포니스트 조엘 티볼트와 협업해 앨범 ‘뉴 리얼리티(New Reality)’를 발매하고 어반뮤직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K팝과의 협업에도 기대감도 드러냈다. 이미 엑소 첸과 함께 ‘이매진’ 무대를 연출하고, SM스테이션을 통해 ‘너의 목소리’를 발표하는 등 K팝과 여러 차례 호흡을 맞춰온 그는 “K팝을 관현악 버전으로 편곡해 공연을 올리고 싶다. K팝 팬에게는 클래식을, 클래식 애호가에는 K팝을 즐길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라고 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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